기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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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맛있는 테크
초미세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
전자현미경 ㈜엠크래프츠 전정범 대표

 

전자현미경은 현대 과학의 가장 큰 무기 가운데 하나다. 광학현미경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노 스케일의 미시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현미경 없이는 반도체 회로의 미세화도, 가전제품의 슬림화도, 나노 신소재의 개발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중요한 기술인 만큼 기술구현이 만만치 않다. 물리, 화학, 전자, 기계, 재료,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기술이 융합되어야만 비로소 한 대의 전자현미경이 완성된다. 누군가에게는 높은 장벽처럼 느껴질 전자현미경이 ㈜엠크래프츠의 전정범 대표에게는 ‘맛있는’ 도전 과제가 그득한 밥상과도 같다. 그의 맛있는 도전은 초미세 세계를 연구하는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보니 전자현미경의 크기가 상당한데요.
겉보기만으로도 광학현미경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나마 우리 제품은 타사 제품에 비해 크기와 무게가 절반 수준입니다. 예전 아날로그 시대에는 벽의 한 면을 차지할 정도로 컸죠. 빛을 광원으로 하는 광학현미경과 달리 전자현미경은 전자빔을 사용합니다. 전자빔이 시료 위를 주사(scanning)해 전자빔과 시료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신호를 통해서 시료 표면의 정보를 얻는 것이죠. 시료 표면에서 나오는 여러 신호 중 2차 전자들을 포집해 확대된 상을 만들어내고, 특성 X선이라는 물체 고유의 신호를 통해 시료의 성분까지도 분석해냅니다. 전자가 전자렌즈라 불리는 장치 속을 지나면서 마치 볼록렌즈에 의해 빛이 굴절되듯이 집속되어 표본을 투과하거나 반사하여 확대된 상을 보여줍니다. 전자빔의 파장은 광학현미경에서 이용하는 가시광선의 파장보다 수십~수백만분의 1로 짧습니다. 파장이 짧을수록 광원의 해상력이 확대됩니다. 광학현미경으로는 마이크로 스케일까지밖에 볼 수 없지만, 전자현미경으로는 나노 스케일까지 확대가 가능합니다.
 

나노 스케일을 볼 수 있는 현미경에는 어떤 종류가 있나요?

전자현미경 외에도 원자 구조까지 확인할 수 있는 원자현미경이 개발되어 첨단 분야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전자현미경 가운데 주사전자현미경(Scanning Electron Microscope, SEM)이 가장 범용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높은 분해능에 사용이 편리하기 때문에 반도체, 물리학, 재료과학, 생물학, 의학 등 응용 분야가 다양합니다. 투과전자현미경(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 TEM)도 있지만, 주사전자현미경에 비해서는 용도가 한정적입니다. 투과전자현미경은 전자빔이 시료를 투과하기 때문에 높은 분해능으로 원자 구조까지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빔을 투과시키기 위해 시료를 얇게 만들어야 하는 전처리 과정이 복잡해 누구나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전자현미경의 크기가 이렇게 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빛을 시료에 직접 쏘는 광학현미경과 달리 전자현미경에는 진공 챔버가 필요합니다. 전자빔을 쏘려면 시료가 진공 상태에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백열전구가 진공 상태인 것과 같은 원리죠. 진공 상태를 만들기 위해 배관에 밸브도 달아야 합니다. 이 진공 챔버가 현미경 크기의 30%를 차지합니다.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만 시료를 관찰할 때마다 조작이 번거롭기도 한데요. 매번 시료를 올려놓고 진공펌프로 진공 상태를 만들어 일정한 진공도에 다다라야만 전자빔을 쏠 수 있습니다. 이 시간만 10분 이상 걸렸죠. 우리가 개발한 주사전자현미경 ‘제네시스-1000’은 이 시간을 3분으로 줄였습니다. 밸브와 배관을 일체화한 특허 기술로 타사 제품보다 크기와 무게를 절반으로 줄였죠. 크기가 줄어든 만큼 당연히 가격도 대폭 낮아졌습니다.
 

전자현미경 연구개발에서 소형화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전자현미경을 구성하는 기술적 요소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고배율과 고분해능의 방향으로 진화해온 것은 분명하지만, 20년 전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한 번의 큰 변화를 겪은 정도입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전자현미경을 만드는 업체는 소수입니다. 다양한 기술이 융합되어야 하기 때문에 기술 장벽이 매우 높죠. 그동안 국내에서는 외산 제품을 카피하는 수준에 머물거나, 자체개발을 한다고 해도 엔트리 제품이나 중급 제품 등의 틈새시장을 노려온 정도였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소형화에서 차별화 요인을 찾은 것이죠. 그래서 소형화는 한국 업체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소형화와 함께 사용편의성 측면에서도 한국업체들이 강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용 편의성이라고 하면 소프트웨어의 진화가 필요할 텐데요. 어떤 기술들이 있나요?

전자현미경의 기술 변화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등장하면서 얘기가 달라졌어요. 아이패드의 직관적인 UI를 전자현미경에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이 부분 역시 한국 업체들이 시작했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저도 아이폰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당사자인데요. 실제로 코셈에서 기술연구소장으로 있을 당시 세계에서 처음으로 마우스의 휠로 줌인과 줌아웃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기존에는 일일이 슬라이드 바를 조작해야 했어요. 마우스로 간단히 조작할 수 있으니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아도 몇 번만 조작해보면 초보자도 사용이 가능할 정도입니다. 제네시스를 사용해본 외국 유저로부터 “그동안 사용해본 제품 중 UI가 가장 편하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IT 강국의 힘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죠.
 

저렴한 데다 소형화에 사용편의성까지 갖추었다면, 그동안
전자현미경을 살 엄두를 못 냈던 중소기업에게 큰 이점이 될 것 같은데요.

실제로 제네시스-1000의 첫 고객이 바로 중소기업이었습니다. 반도체 장비를 개발하는 기업인데, 전자현미경을 계속 빌려 쓰다가 처음 구매한 케이스였어요. 사실, 중소기업 입장에서 고가인 전자현미경을 선뜻 구매하기가 쉽지는 않죠. 하지만 빌려쓰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실험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며칠씩 걸리기도 합니다. 분초를 다투는 글로벌 경쟁에서 시간이 결국 성패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가격을 대폭 낮춘 국산 제품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죠.
 

그런데도 여전히 하이엔드 분야는 국내 기업들의 불모지인데요.
어떤 부분에서 한계가 있는 건가요?

한계는 명확합니다. 국내 기업의 경우 처음에 일본 제품을 모방해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원천기술이 없었던 것이죠. 지금도 거기에서 별로 진보하지 못했습니다. 국내 기술로 하이엔드는 무조건 안 된다는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오랜기간 IT업계에서 일했습니다. 그 업계에선 안 되는 것이 없었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도전정신이 전자현미경을 만드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자현미경을 처음부터 개발해보니 기술자로서 부딪히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전자과 출신인 제가 기계적인 문제까지도 해결해야 했으니까요.
 

올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베리타스에 대한 기사가 벌써 언론에
공개되었습니다. 하이엔드 제품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많이 가는데요. 어떤 제품인가요?

이제 창업한 지 5년째인데, 창업 초기부터 하이엔드 전자현미경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전체 전자현미경 시장에서 하이엔드 시장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합니다. 제품 금액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어 부가가치가 높죠. 하이엔드 제품은 일단 시료의 크기에서 차이가 납니다. 범용 제품의 경우 볼 수 있는 시료의 최대 크기가 100㎜ 정도인데, 하이엔드 제품은 200㎜입니다. 이 크기라면 웨이퍼처럼 큰 크기의 시료를 작게 만들지 않고 한번에 볼 수 있는 것이죠. 시료가 커지면 당연히 진공 챔버도 커져야 하고, 그에 따라 더 진보된 진공 제어 기술도 필요하죠.
 

개발자로서 도전하고 싶은 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전자현미경에 도전한 이상 궁극적으로는 반도체용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우선 초미세 시료를 관찰할 수 있는 전계 방사형(Field Emission electron gun, FE) 전자현미경을 개발해야 합니다. 빔의 양이 많아 열방사형(Thermionic electron gun)에 비해 훨씬 고분해능을 실현할 수 있거든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올해부터 주사이온현미경 개발을 시작합니다. 주사전자현미경의 전자빔 대신 이온을 쏘는 방식인데, 주로 금속 이온인 갈륨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자빔에 비해 에너지가 커서 시료를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시료를 확대해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빔을 쏴서 시료에 구멍을 내거나 절단을 하는 등의 나노 가공도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2년 후 완료를 목표로 개발 중입니다. 현미경 기술은 알면 알수록 어렵지만, 그만큼 재미도 있습니다. 제품을 개발하다 보면 해결해야 할 과제들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지만, 도전의식을 경험하기에는 현미경만 한 게 없습니다.
 

㈜엠크래프츠는?
전자현미경 연구개발 기업인 ㈜엠크래프츠의 경쟁 상대는 6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현미경의 명가들이다. 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다른 국내 기업들과는 가는 길이 다르다. 창업 당시부터 고성능 제품을 타깃으로 삼는 정공법을 택했다. 이미 코셈에서 연구소장으로 재직할 당시 최초의 국산 주사전자현미경을 기획, 개발한 바 있는 전정범 대표는 2010년 회사를 설립하고 연구에 매진한 지 2년 만인 지난 2012년, 동급 제품 중 크기가 가장 작은 ‘제네시스(Genesis) 시리즈’ 개발에 성공했다. 크기와 무게를 탁상형과 견줄 정도로 소형화시켰음에도 가격은 외산 제품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제품이다. 제네시스 시리즈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전 대표는 하이엔드 SEM ‘베리타스(Veritas)-3000’을 개발 중이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3곳에서만 갖고 있는 기술인 주사이온현미경 개발에도 나섰다.

임숙경 전문기자 사진 김성헌 객원사진기자​

조회수 : 2,223기사작성일 : 201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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