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상식과 장그래
아부에 대한 생각의 프레임을 바꿔라

 

직장인들에게 아부란 분명 뜨거운 감자임에 틀림없다. 아예 안 하자니 내심 자신의 존재감이 불안하고, 대놓고 하자니 민망해질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은 자신의 프레임대로 해석될 뿐이다. 일단 우리가 아부를 ‘딸랑이’나 ‘살살거리기’ 정도로 바라보면 계속해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부하직원들이 생각하는 아부와 윗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부의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당신에게는 ‘아부’라고 여겨지는 것이 상사 입장에서 볼 때는 ‘배려와 존중’ 또는 ‘교감’이나 ‘소통’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부가 제일 쉬웠어요?
25년 동안 큰 문제 없이 직장생활을 해온 한 임원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는 아부를 못하는 사람을 보면 이해가 안 됩니다. 제가 25년간 직장생활을 해본 결과, 제일 쉬운 것이 아부예요. 말만 잘하면 되고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하죠? 어려운 게 없잖아요.”
그렇다고 이 임원이 오로지 아부의 힘으로만 직장생활을 해왔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그는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뛰어난 성과 덕분에 거의 실패 없이 승진 코스를 밟아왔다. 정년이 다 되었을 때에는 회사에서 계열사 사장 자리까지 제안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아부라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편견을 버리고 우선 ‘아부’라는 말 자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함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아부는 사전적인 의미로 타인의 환심이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순수하지 못한 말을 하는 것, 혹은 이를 위해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과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를 회사가 아닌 생활 전반의 영역으로 확장시킨다면, 아부는 늘 우리의 일상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약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든 후 내심 자녀의 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어머니는 우리 집 셰프예요”라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이거 좀 아닌 거 같은데요”라고 말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머니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도 전자의 답을 택할 것이다.
심지어 『삼국지』의 천재적인 전략가 제갈공명도 이런 일을 겪었다. 임종을 앞둔 유비가 제갈공명을 불러 후계자에 대해 논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만일 유선이 보좌할 만한 사람이면 보좌를 하고, 재능이 없다고 생각되면 당신이 후계 자리를 취하시오.”
제갈공명은 자신의 신념과 생각대로만 대답하지는 않았다.
“신은 온 힘을 다해 충정의 절개를 바치며 죽을 때까지 이어가겠습니다.”
타인과 정신적 교감을 하고 그것에 주파수를 맞추어주는 것, 비록 사실은 아닐지언정 함께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 ‘아부’라면, 우리는 회사를 벗어나서도 일상의 아주 많은 시간들을 아부와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고사성어 중에 최고납후(摧枯拉朽)라는 말이 있다. ‘마른 나무와 썩은 가지를 부러뜨리듯 쉬운 일’이라는 의미다. 아부도 이와 마찬가지다. 어렵게 생각하면 어려운 것이지만, 타인과 주파수를 맞추려고 한다면 그저 쉬운 일일 뿐이다.

상사에 대한 예의를 지키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한 직장인의 아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는 회의를 하던 중에 목격한 장면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회의시간에 사장님이 뭔가 좀 생소한 단어를 이야기하면 참석자들이 저마다 스마트폰으로 그 단어를 검색하더라고요. 도대체 왜들 저러나 싶었어요. 꼭 말로 해야만 아부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모르는 걸 사장님이 알고 계시구나. 대단해요, 사장님!’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거죠. 물론 사장님은 흡족한 표정을 짓고 말이죠. 참 별의별 아부가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몇 해가 지나 회사에서 중간관리자급으로 일하고 있는 직장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비슷한 상황에 대한 전혀 다른 반응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 말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왜 검색도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세상이 좀 좋습니까? 그냥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 단어 몇 개만 입력하면 되지 않습니까. 최소한 그 정도는 알아야 회의가 진행될 것이고, 또 그게 상사에 대한 예의 아닌가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앞의 두 가지 말을 했던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는 점이다. ‘아부’ 운운하던 그 직장인은 세월이 흘러 이제는 중간관리자급으로 승진해 회의를 주재할 위치에 올랐다. 그러고 나자 비슷한 상황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아부에 대해서도 그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예전에는 아부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을 지금은 최소한의 성의와 기본적인 태도로 보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했던 말을 뒤바꾸는 이중적인 사람일까? 사실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역지사지라고 한다. 아부도 똑같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아부가 아니라 존중과 배려인 것이다.

아부는 투자다
아부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비열하고 나쁘고 천한 것만은 아니다. 아부의 이면에는 교감, 소통, 그리고 존중의 가치가 함께 존재한다. 다만 그것들 중에서 가장 부정적인 면만이 패키지되어 ‘아부’라는 용어로 설명될 뿐이라는 이야기다. ‘아부 유용론’을 주장하는 한 직장인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아부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어느 정도 이상의 높은 곳까지는 올라갈 수 없어요. 물론 자신의 업무 능력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가겠죠. 그런데 마지막으로 비슷한 능력의 두 사람을 승진시킬 때 누굴 선택할까요? 이건 거의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거예요. 당연히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을 승진시키는 거죠.”
실제 아부라 불리는 능력은 인간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져 있다. 동굴에서 생활하던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면 그것이 나중에 자신에게도 이롭게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특정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했던 사람이 결국 생존력이 강하고 많은 번식을 할 수 있었기에, 그때부터 이러한 행동들이 유전자화되어 인간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사실은 실력이 있을수록 더욱 아부를 해야만 한다. 기만하거나 악의적으로 속이는 부류가 아니라면 ‘아부’라고 불리는 교감과 소통, 그리고 존중의 능력은 분명 당신의 실력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천만매린(千萬買隣)이라는 고사성어는 ‘백만금으로 집을 사고, 천만금으로 이웃을 산다’는 뜻으로, 사람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아부는 타인에 대한 투자이고, 그것이 결국은 서로를 이롭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남훈 전문기자​

조회수 : 1,400기사작성일 : 2015-09-30
기사 만족도 평가
별 개수를 클릭하여 기사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이 기사의 별점
평균 5점 / 2
  • 매우 불만족
  • 불만족
  • 보통
  • 만족
  • 매우 만족
별 5개 / 매우 만족

의견글 작성
  • (삭제 시 필요)
* 불건전한 내용이나 기사와 관련 없는 의견은 관리자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메뉴 열기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