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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독일
전기차를 반기지 못하는 이유

테슬라의 혜성 같은 등장으로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 같지만 아직 독일인의 마음은 활짝 열리지 못한 것 같다. 긴 역사를 가진 그들의 자동차 문화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 구매는 아직 ‘신중’

독일에서 자동차산업은 GDP의 14%, 80만 명 고용창출이라는 큼직한 지표를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의미와 자부심을 갖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후중립, 환경보전이라는 가치와 맞물려 지난 몇 년 사이 전기차에 대한 관심과 정부 차원의 지원 그리고 완성차 기업들의 연이은 내연기관 개발 중단 선언까지. 독일 자동차 업계는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22개국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막상 전기차를 구매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절반 이상의 독일인은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58%는 다음번에 구입할 자동차도 전기차가 아닐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다음 자동차를 반드시 전기자동차로 선택하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18%,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4%로 나타나 아직은 전기차가 시기상조는 아닌지 의문을 갖게 한다.
왜일까? 전문가들은 여전히 내연기관 자동차의 높은 주행거리와 전기차의 충분하지 못한 충전 인프라 때문인 것으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실제로 2021년 상반기 기준으로 독일 내에 존재하고 있는 공공 충전시설 수는 약 22,000개로, 현재까지 등록을 마친 전기차 수가 약 36만 대임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참고로 독일 내 주유소 수는 약 1만4,449개). 또한 가정용 충전설비 확대를 위해 최근 독일 정부는 새로운 규정을 도입, 일정 규모 이상의 주거 및 상업용 건물에는 관련 전력망 연결 및 충전 인프라 제공을 의무화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아직 독일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확대보기전기차 충전소무료 주차, 무료 충전, 주차비 할인, 전용차로 이용, 자동차세 면제 등 전기차에 제공하는 혜택만으로는 전통 내연기관차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한순간에 내려놓기는 어려운 듯하다.(출처 : handelsblatt)

늦어진 보조금,
장거리 주행 여건이 걸림돌

눈을 돌려 전기차 보급률이 높은 다른 유럽 국가들을 열거해 보자. 2020년 기준으로 전기차 보급률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스웨덴 순이다. 추운 날이 길어 방전율이 높은데 전기차를 실제로 선호할지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자동차 주행이 도심지 위주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전기차 도입으로 인해 생활방식에 큰 변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정부의 높은 전기차 구매 보조금 정책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보급을 가능케 했다.
그렇지만 독일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상대적으로 보조금 제도 도입이 늦었으며, 생활과 여행에서 자동차가 주는 이동성과 확장성의 의미는 다른 나라들보다 각별하다. 기본적으로 인구 1,000만 명 급의 대도시가 없고 전국에 고르게 인구가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장거리 주행 및 여행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다. 게다가 평지가 대부분이라는 지형적 장점과 함께 도로망이 우리나라보다 촘촘하고 넓게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전국에 쭉쭉 뻗어 있는 아우토반의 총길이는 약 1만3,141㎞로,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약 2.7배이다. 이러한 도로 인프라를 사실상의 제약없이 마음껏 오갈 수 있는 내연기관차의 장점은 쉽게 양보할 수 없는 혜택이다. 한 예로 인구 순위 2위인 함부르크와 3위인 뮌헨까지의 거리는 약 800㎞에 달하지만, 이 구간을 가득 주유한 후 한 번에 주행하는 일도 가능하다. 게다가 유럽 한가운데 위치한 지리적 이점 덕에 자동차로 주변국을 쉽게 여행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다. 따라서 현재 전기차가 제공하는 절반가량의 최대 주행거리와 아직 열악한 충전 인프라에 따른 불편함을 생각하면, 내연기관차의 장점을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번 사서 오래 쓴다!
10년 육박하는 사용연한

차를 몇 년마다 바꾸는지도 중요한 요인이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제조사마다 편차가 있지만, 독일 운전자들은 승용차 기준으로 신차 등록부터 폐차까지의 평균 기간이 9.5년이다. 즉, 한번 사면 거의 10년 가까이 타는 셈인 데다 자가 정비가 활성화되어 있어 총 주행거리 30만㎞를 넘기고도 거뜬히 운행하는 차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올해 신차 구매를 계획 중인 독일인이라면 ‘보조금 혜택을 받고 전기차를 살지’, 아니면 ‘지금은 내연기관 자동차를 사고 주행거리와 충전설비 등의 단점이 충분히 보완된 후에 전기차를 살지’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전기차에 대한 의견은 연령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고연령층일수록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적으며, 젊은 세대일수록 긍정적인 관심도가 높다. 55세 이상의 경우 68%가 구매 의향이 없다고 밝혔으며, 경제력 및 실 구매 수요가 높은 35~44세는 약 절반(53%)에서 같은 의견을 보였다. 그러나 25~34세는 44%가 전기자동차 구매의향이 있다고 밝혀서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결국 전기자동차로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는 독일인들에게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인식 증가와 함께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내연기관차가 주는 향수와 전통에서 언젠가는 결별해야겠지만,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안현섭 독일 현지 리포터

조회수 : 2,099기사작성일 :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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