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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마주치다
그림을 닮은 미술관, 그림을 담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나는 심플하다.” 근현대 서양화가 장욱진이 자신을 표현한 말이다. 평생 자연 속에서 단순한 삶을 살았고, 그림을 통해 동화적인 내면을 드러낸 그의 세계가 이곳에 오롯이 담겼다. 산 아래 그야말로 그림처럼 안겨 있는 순백의 공간. 걸음 닿는 곳마다 따스함이 깃든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으로 들어간다.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미술관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 산을 마주 보며 한참을 달려야 미술관에 닿을 수 있다. 수고스럽다기보다 오히려 즐거운 마음이 드는 것은, 그가 생전에 늘 한적한 자연에 작업실을 두고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마치 그의 작업실로 초대를 받아 가는 기분이다.
미술관 전체로 보면 면적이 꽤 넓다. 국내외 30여 명 작가들의 작품 50여 점이 전시된 조각공원을 거쳐 시냇물까지 건너야 건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이맘때는 막 움트기 시작한 봄기운을 느끼며 작품 사이를 걷는 낭만을 즐길 수 있다. 주말은 조금 다르지만, 평일의 미술관은 대체로 조용하기 때문에 시냇물 흐르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린다.
새하얀 집을 닮은 미술관 건물은 산 바로 아래에 있다. 벽도 지붕도 온통 하얀색이라 주변 풍경이 색을 아무리 바꾸어도 기가 막힌 조화를 만들어낸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커다랗고 네모난 창문 그리고 하늘로 솟은 세모난 지붕이 화가 장욱진의 그림과 매우 닮았다.
뾰족지붕의 집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듯한 모습은 동화 속의 풍경처럼 참 따뜻하고 소박하다. 덕분에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님에도 압도적이라거나 웅장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심지어 귀엽다는 생각마저 든다. 화가 장욱진의 동화적 감성은 여기서부터 발견된다.
실제로 미술관은 화가 장욱진의 그림을 모티브로 설계됐다. 단순한 형태의 집 개념과 호랑이 그림 「호작도」를 조합한 것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집의 일부가 모여 이루어진 전체의 형태가 어째서 호랑이를 닮았는지 알 수 있다. 미술관 건물은 지난 2014년 ‘김수근 건축상’, 한국건축가협회 ‘올해의 베스트 7’ 수상을 비롯해 영국 BBC가 선정하는 ‘2014년 위대한 8대 신설 미술관’으로 꼽히기도 했는데, 화려한 이력을 차치하더라도 흥미를 유발하는 공간이 분명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원한 통창 너머로 뒷산이 코앞이다.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이곳이 바로 전시장의 시작이다. 입구에는 화가 장욱진의 흑백사진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그 앞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관람을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바깥 풍경은 잠시 머릿속에서 지우고 작품과 공간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도록. 그리고 좀 더 여유를 갖고 작품 감상을 할 계획이라면, 겉옷이나 가방은 입구의 개인사물함에 보관하는 것도 방법이다.
전시장 입구 맞은편의 카페도 눈여겨보자. 큰 창으로 따뜻한 햇볕이 길게 드리우는 아늑한 공간이다. 게다가 조각공원을 내려다보는 풍경도 탁 트여 있으니, 부지런히 전시장을 돌아본 후 쉬어가기엔 안성맞춤이다.

 

 

단순하지만 심오한 철학이 담긴 작품
장욱진미술관의 내부 공간은 외관과 마찬가지로 집을 옮겨다놓은 듯한데, 크고 작은 방으로 전시장이 구성돼 작품과 함께 건물을 탐색하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구조가 자유분방해 일반적인 전시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창문이다. 비현실적일 만큼 큰 창문은 이곳저곳으로 자유롭게 뚫려, 밖의 빛과 풍경을 실내로 자연스럽게 불러들인다. 덕분에 각기 다른 관점으로의 조망이 가능하다. 전시에 따라 창을 일시적으로 막거나 가벽을 세우기도 하므로, 이 또한 늘 같지 않다는 게 또 다른 매력이다.
전시실은 1, 2층으로 구분된다. 1층에서는 4월 16일까지 ‘제2회 뉴 드로잉 프로젝트’ 전시가 열린다. 이는 장욱진의 예술세계에 부합하는 차세대 예술가를 지원하고자 매해 개최되는 프로젝트 공모전으로, 172점의 새롭고 신선한 드로잉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이번 공모전은 기존의 평면과 입체 분야 이외에도 뉴미디어 분야가 신설되었다. 따라서 화가 장욱진과 드로잉 세계의 현대적인 재해석을 엿볼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폐자재를 활용한 디스플레이 콘셉트도 하얀 공간과 어우러져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2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전시실이다. 1층보다 훨씬 더 아늑한 분위기로, 화가 장욱진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장욱진은 2년 남짓한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직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직으로 봉직한 것 외에는 줄곧 그림에만 몰두했다. 덕소, 수안보, 신갈 같은 한적한 시골에 화실을 마련하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즐겼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까치, 개, 나무, 산, 해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이 유난히 많다. 생활과 가치관이 그대로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가 지향한 ‘심플한 삶’처럼 간결한 선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종이에 매직마커로 그린 드로잉도 화가 장욱진의 작품을 독립적인 예술 장르로 구분되게 해준다. 특히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제작한 매직마커 드로잉은 단순하고 빠르게 드로잉한 ‘선(線)’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루며, 빠른 필치와 명쾌한 구도가 특징적이다.
10호 미만의 작은 화폭을 고집하고 4호가 넘지 않는 소품이 주를 이룬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는 고도의 압축과 생략이야말로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 몇개로 이루어진 손바닥만 한 그림에서 고도의 결집력과 밀도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넓게 또 깊게 파고들어 즐기는 묘미
부엌 벽이건 어디건 공간만 있으면 그림을 그렸던 장욱진. 미술관에 영구 전시된 두 개의 벽화로 작가의 이러한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전시된 작품 「식탁」은 그의 덕소 작업실 부엌 벽면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제목처럼 포크, 숟가락, 그릇, 커피 잔, 넙치, 뼈다귀 같은 것들이 단순한 선으로 그려져 있는데, 어느 날 밥 짓기가 싫어 이 그림을 그린 후 “됐다, 오늘은 이것으로 한 끼 식사를 대신하자”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2층 전시실에 전시된 벽화 「동물가족」도 덕소 작업실의 것. 소, 닭, 돼지, 개 등 동물가족이 그려진 작품에서 동물에 대한 화가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위쪽에 걸린 실물 쇠코뚜레와 워낭은 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향토적 정서를 이야기한다.
사실 장욱진의 작품은 그의 내면을 이해한 후에라야 진면목이 보인다. 언뜻 아이의 그림 같기도, 낙서처럼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말에 방문할 경우에는 정기 도슨트를 활용하기를 권한다.
지하에 마련된 아카이브도 작지만 알찬 공간이다. 화가 장욱진에 관한 책과 각종 미술 매거진이 비치되어 있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어른들을 위한 책은 물론이고 어린이용 동화책도 다양하다. 혹은 지하에 비치된 종이에 색연필로 직접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터. 마음에 잔잔하게 남은 여운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표현하고, 원할 경우 작은 게시판에 전시를 할 수도 있다.
워낙 작아서 지나치기 쉽지만, 1층 자투리 공간은 아트숍이다. 미술관으로 드나드는 길목, 바로 그곳이다. 시대별 사진 자료와 작품 포스터 등이 담긴 아카이브 박스, 미술관 소장품 19점으로 구성된 화가 장욱진의 작품 컬러링북, 명작 퍼즐, 노트와 카드가 주요 제품으로, 구입을 원할 경우 안내 데스크로 문의하면 된다.
권위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던 화가. 아이와 어른 모두 좋아하는 단순한 그림을 그리는 데 평생을 쏟은 화가. 그가 집을 세상과 소통하는 문으로 여겼던 것처럼, 그림 속의 집을 꼭 빼닮은 장욱진미술관의 문이 활짝 열렸다.

 

놓치지 말아야 할 올해의 전시!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오는 4월 27일부터 8월 27일까지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열린다. 덕소(1963~1974), 명륜동(1975~1979), 수안보(1980~1985), 용인(1986~1990) 화실 시기별 나무 소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작가의 자연관과 조형세계를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4월 29일부터는 까치의 눈, 인간, 자연을 테마로 한 상설 기획전도 새롭게 선보인다. 장욱진이 「까치」를 계기로 화가의 길에 들어선 시점부터 전 생애에 걸친 예술세계를 다루며, 주된 소재인 인간을 중심으로 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작품 혹은 화가 장욱진에 관한 강의를 듣고 싶다면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홈페이지를 참고하자. 5월부터 11월까지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그의 예술세계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 형식의 강의가 진행되고, 화가 유가족과 제자들이 그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욱진 Talk’ 프로그램도 열릴 예정이다.
관람 일시 10:00∼18:00(화요일∼일요일)
관람료 어른 5,000원, 어린이·청소년·군인 1,000원 / 7세 이하 유아·65세 이상 노인 무료 / (20명 이상 단체 할인)
도슨트 매주 토·일요일 14: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설·추석은 전일 포함 이틀 휴관)
주소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문의 031-8082-4245

정은주 객원기자 사진 김성헌 객원사진기자 자료협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조회수 : 2,245기사작성일 : 2017-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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