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비즈니스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냉면’ 좋아하세요?
냉면을 앞에 두고 이야기해야 할 것들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고 / 무와 배, 유자를 얇게 저며 넣으며 / 제육을 썰어 넣고 / 달걀을 부쳐 채썰고 / 후추, 배, 잣을 넣는다.” 읽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도는 이 문장은 1903년에 문을 연 최초의 조선 요릿집, 명월관의 냉면을 『부인필지(夫人必知)』라는 책에서 묘사한 것이다. 덕분에 오늘 점심은 무조건 냉면이다.

당신도 혹시 ‘평뽕’?
고종황제, 백범 김구 선생, 시인 백석, 소설가 최인호, 가수 존 박의 공통점은? 지독한 냉면 마니아라는 것. 유독 평양냉면은 추종자가 많은데, 이들을 요즘 말로 ‘냉면 성애자’라고 부른다. 성애자는 특정 대상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집착을 보이는 사람에게 붙이는 단어로, 가수 존박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루 두 번 냉면집을 찾는 모습을 보고 네티즌들이 그를 냉면 성애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평양냉면은 마치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하다는 의미로 ‘평뽕’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마니아 집단을 지칭하기도 한다.
사실 평양냉면은 맛들이기 쉬운 음식이 아니다. 처음 평양냉면을 접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걸 왜 돈 주고 먹나?’ 하는 의문에 휩싸인다. 감칠맛 떨어지는 밍밍한 국물에 툭툭 끊어지는 거친 메밀 면의 무뚝뚝한 식감은 첫술에 호감을 가지기 어려운 조합이다. 그런데 이게 먹다보면 희한하게 자꾸 생각이 나고, 어느새 하루가 멀다 하고 냉면집 앞에 줄을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냉면을 먹는 방법이나 맛있는 냉면집에 대한 의견도 얼마나 분분한지, 한 그릇 냉면을 앞에 놓고 ‘네가 맞네, 내가 옳네’ 갑론을박을 하다보면 세상에 이렇게 피곤한 음식이 또 있을까 싶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냉면 성애자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니 과연 ‘대미필담(大味必淡)’, 즉 ‘맛있는 음식은 반드시 담백하다’는 말에 새삼 동의할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김구 선생이 김일성을 만나러 방북했을 때조차 경호원을 따돌리고 평양냉면집에 살짝 들렀을까.

알아두면 좋은 냉면의 법칙들
평양냉면은 심플한 모양새와는 달리 먹는 법이 꽤나 까다롭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선주후면(先酒後麵)’ 원칙이다. 실향민들이 냉면집을 찾으면 아무리 이른 시간이라도 냉면부터 주문하는 법이 없다. 불고기나 수육 혹은 만두나 빈대떡을 술 한 잔과 곁들여 즐긴 후, 비로소 냉면을 주문한다. 이북에서는 원래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철저하게 선주후면의 원칙을 지킨다고 한다. 냉면을 주문하고 나서도 지켜야 할 원칙들이 많다. 우선 냉면이 나오기 전까지 물을 마시면 안 된다. 냉면이 나왔을 때 보다 짜릿하고 시원하게 육수를 들이켜기 위해서다. 냉면이 나오자마자 식초와 겨자를 치는 것도 금지사항이다. 순수한 육수의 맛을 적당히 즐긴 다음 기호에 맞게 식초나 겨자를 곁들여야 한다. 일단 면을 집어 들었으면 10분 내로 먹어야 한다는 원칙도 있다. 메밀 면은 찰기가 적어서 금방 퍼지기 때문이다. 자칫 면에 가위질이라도 했다가는 냉면 성애자인 일행에게 한소리 들을 각오도 해야 한다. 메밀 면은 이로 끊는 것이 아니라 목젖으로 끊는다나?
일부에서는 냉면의 고명도 먹는 순서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계란의 경우 평양냉면은 면을 먹기 전에, 함흥냉면이라면 면을 다 먹은 후에 먹어야 한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다. 이외에도 냉면 먹기 전에 고명부터 흩뜨리고 면을 반쯤 그릇에 걸쳐서 면에다가 식초를 뿌려 부드러운 식감을 살려야 한다는 사람, 계란부터 먹으면 슴슴한 평양냉면의 맛을 만끽할 수 없으므로 아예 빼버려야 한다는 사람, 겨자는 육수에 뿌려야 면에 겨자 덩어리가 뭉쳐져서 국물의 맛을 버리는 끔찍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사람까지 있다. 이쯤 되면 냉면을 보다 맛있게 즐기려는 냉면 마니아들의 노력이 눈물겨울 지경이다.
어디 가서 냉면 좀 먹었다 싶게 보이려면 주문할 때 ‘거냉’이나 ‘민자’ 혹은 ‘엎어말이’라는 전문용어를 슬쩍 사용해볼 것을 권한다. 거냉은 냉면 육수를 살짝 데워 미지근하게 만드는 것으로, 찬 육수에 이가 시리는 노인들을 배려한 주문법이다. 민자는 냉면 고명으로 올라가는 고기를 빼고 대신에 면을 더 달라는 뜻이고, 엎어말이는 냉면에 아예 면 사리를 하나 더 엎어서 곱빼기로 달라는 의미다. 세 가지 모두 오래된 평양냉면집에서는 아직까지 통하는 주문법이지만, 신생 냉면집에서는 주인조차도 못 알아들을 수 있으므로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맛 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
냉면 마니아들이 어렵게 합의한(?) 서울 4대 냉면집으로는 을지로 ‘우래옥(02-2265-0151)’, 마포 ‘을밀대(02-717-1922)’, 충무로 ‘필동면옥(02-2266-2611)’, 논현동 ‘평양면옥(02-549-5378)’을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방이동 봉피양(02-415-5527), 을지로 을지면옥(02-2266-7052)과 평래옥(02-2267-5892), 다동 남포면옥(02-777-3131), 서소문동 강서면옥(02-752-1945), 구의동 서북면옥(02-457-8319) 등 쟁쟁한 냉면집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섣불리 4대 냉면집을 꼽기가 쉽지만은 않다. 게다가 의정부 평양면옥(031-877-2282), 분당 능라(031-781-3989), 대구 강산면옥(053-425-0840) 같은 지역 냉면집도 많고, 여기에 함흥냉면 맛집까지 더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질 정도다.
비즈니스 런치로 가볍게 냉면을 선택했다가 선호 냉면집이 다르다는 이유로 감정만 상하는 낭패를 볼 수도 있으므로, 앞서 언급한 냉면집들은 직접적으로 화제에 올리지 않는 쪽이 현명하다. 대신 백령도냉면이나 진주냉면처럼 상대가 잘 모르는 냉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 대화를 이어가면 된다. 백령도는 황해도에서 월남한 사람이 많아서 흔한 평양냉면이 아닌, 해주식 냉면을 즐긴다. 해주식 냉면은 구수한 돼지 육수와 굵은 면발, 간장 양념이 독특한데, 백령도에서는 여기에 간장 대신 까나리액젓을 사용해 지역 색을 더한다. 냉면을 다 먹고 나서 뜨거운 육수에 고명으로 나온 달걀 노른자를 풀고 까나리액젓을 한 방울 똑 뿌려 마시는 마무리 방식도 특별하다. 남쪽의 대표 냉면으로 꼽히는 진주냉면도 매력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진한 해산물 육수를 쓰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하는 데다가, 차가운 냉면위에 뜨거운 육전을 고명으로 올리기 때문이다. 보기에 화려함은 물론이거니와 그 깊고 풍부한 맛의 향연에 감탄이 절로 난다. 시인 백석이 말한 것처럼 ‘아, 이 반가운 것!’,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 한 그릇 하러 자리를 박차고 나서지 않을 수 없다. 6월의 점심은 이토록 확고불발하다.

◎ 확인고사 아래는 당신의 냉면 상식을 테스트해보는 질문들이다.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아두면 반드시 써먹을 날이 있을 것이다.

1. 다음 냉면집 중 성격이 다른 하나는?
① 의정부 평양면옥 ② 충무로 필동면옥 ③ 고양시 만포면옥 ④ 을지로 을지면옥

2. ‘함흥냉면’이라는 말은 평양냉면을 따라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함흥 사람이 즐기던 국수의 원래 이름은?
① 제물국수 ② 농마국수 ③ 건진국수 ④ 모리국수

3. 냉면을 특히 사랑한 조선시대의 왕으로, 달달한 배동치미 냉면을 밤참으로 즐겼던 인물은 누구?
① 고종 ② 순종 ③ 세종 ④ 정조

결과(아래의 빈 공간을 마우스로 드래그하여 확인해 보세요)​
1. ③ (나머지 3곳은 가족들이 각각 하나씩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의정부 평양면옥이 본점이고 충무로와 을지로가 분점.)
2. ② (함흥 말로 감자 전분을 이르는 ‘농마’로 국수를 만들어 홍어나 가자미 등을 넣고 매콤달콤하게 비벼 먹는 국수를 뜻한다. 제물국수는 국물에 국수를 넣고 그대로 끓인 것, 건진국수는 면을 삶아 건져냈다가 다시 국물에 말아내는 국수를 뜻한다. 모리국수는 해물과 칼국수를 넣고 고춧가루에 얼큰하게 끓여내는 구룡포의 명물 칼국수다.)
3. ① (수라간 상궁들이 겨울이면 고종에게 올릴 냉면 육수를 위해 배를 많이 넣은 동치미를 따로 담갔다는 기록이 있다.)

박성연 전문기자 참고도서 『냉면열전』(인물과 사상)​

조회수 : 1,811기사작성일 : 2016-05-26
기사 만족도 평가
별 개수를 클릭하여 기사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이 기사의 별점
평균 5점 / 5
  • 매우 불만족
  • 불만족
  • 보통
  • 만족
  • 매우 만족
별 5개 / 매우 만족

의견글 작성
  • (삭제 시 필요)
* 불건전한 내용이나 기사와 관련 없는 의견은 관리자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메뉴 열기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