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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추워야 제 맛, 뜨끈하게 즐기는 아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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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으로 유명한 충청남도 아산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맘때가 제격. 수도권에서는 전철로 갈 수 있고, 고속철도와 경부고속도로 등의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당일이나 1박2일 여행으로 안성맞춤이다. 가뿐하게 떠나서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웅크리고 있던 감성까지 일깨우는 여행지를 두루 둘러보고 나면 동장군의 기세도 두렵지 않다. 몸과 마음을 두루 녹이는 아산 인문학 여행을 떠나보자.

세종대왕도 찾았던
우리나라 온천 1번지

1995년 아산군과 온양시가 합쳐지며 탄생한 충청남도 아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온천 여행지이다.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커다란 온천특구가 작은 도시에 무려 세 군데나 있다. 도심 곳곳에 저렴하게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목욕탕이 여럿이지만, 추운 겨울에는 뭐니 뭐니 해도 찬바람을 맞으며 실외에서 즐기는 뜨끈한 노천욕이 최고다. 그중 온양온천은 현존하는 문헌 기록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약 1,3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삼국시대에 ‘끓는 우물’이라는 뜻으로 탕정(湯井)이라 불렸고, 고려시대에는 온수(溫水), 조선시대에는 온양(溫陽)이라 불렸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조를 비롯해 세종과 세조, 현종과 숙종 등 여러 임금과 사도세자가 이곳에서 온천욕을 즐겼다. 정조때 만들어진 『영괴첩(靈槐帖)』에 실린 「온양행궁도」를 비롯한 여러 문헌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지금의 고급 스파보다 더 많은 부대시설과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임금들은 휴식보다는 치료를 목적으로 이곳을 찾아 한 달 넘게 생활했기 때문이다.
온양행궁은 임금을 위한 임시 궁궐로서 왕과 왕비의 일상적인 생활공간인 내전(內殿), 그리고 왕과 신하들이 국사를 논하는 외정전(外正殿) 외에도 12칸의 탕실(湯室) 등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온양행궁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제강점기에는 모든 전각을 없애고 아예 ‘온양관’이라는 여관으로 만들었다. 다행히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친 이후 그 자리에 온양관광호텔이 문을 열었다. 이곳 정원에는 신정비(神井碑)와 영괴대(靈槐臺) 등의 유물이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호텔 별관에 별도의 전시관을 마련해 화려했던 왕실온천의 옛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신라시대부터 약수로 이름 높았던 도고온천은 중국 화칭과 일본 벳푸, 인도 라자 그라하와 함께 동양의 4대 유황온천으로 꼽힌다. 2009년 국민보양온천 제1호로 지정된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는 한겨울에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야외 파도풀과 노천 스파 등을 포함한 대규모 온천 테마파크로, 럭셔리 카라반을 갖춘 캠핑장도 있다. 아산온천은 다른 온천지구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곳으로, 1991년에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계절에 따라 각종 허브를 이용하는 23개의 이벤트 탕과 수치료 바데풀 등이 있으며, 겨울에는 눈썰매장을 운영해 가족단위 이용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간편히 즐길 수 있는 무료 온천도 있다. 지하철 1호선 온양온천역에 내리면 ‘건강의 샘’이라는 족욕탕이 금방 눈에 띈다. 물거품을 내며 보글보글 솟아오르는 뜨끈한 온천에 가만히 두 발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샘솟는다.

확대보기온양온천 노천탕 / 온양행궁

아랫목처럼 따땃한
정서 가득한 고택과 마을

500여 년 전에 생긴 외암민속마을은 아직도 초가지붕과 야트막한 돌담이 있는 시골이다. 외암민속마을은 원래 강씨와 목씨가 주로 살았는데, 조선시대 명종 때 예안 이씨인 이정(李挺)이 옮겨와 살면서 집성촌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이정의 6대손이자 조선시대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외암 이간(李柬)의 호에서 따왔다고 한다. 안동의 하회마을, 경주의 양동마을과 더불어 주민들이 옛것 그대로의 삶을 지키며 살아가는 몇 안 되는 곳으로, 마을 초입에 놓인 다리는 마치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 같다. 마을로 들어서면 어느새 널따란 아스팔트 도로는 사라지고 구불구불 좁은 갈래가 나타나는데, 마을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높이 21m가 넘는 커다란 느티나무처럼 길은 방사선으로 자유롭게 펼쳐진다. 단지 이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푸근한 감성에 젖어든다.
마을에는 ‘건재고택’으로도 불리는 영암댁을 비롯해 참판댁, 송화댁 등의 기와집과 80여 채 가량의 초가가 옛 모양 그대로 남아 있다. 이들 중 약 80% 이상이 100년 넘었는데, 하나같이 집 매무새도, 마당도 반듯하다. 박물관에서 봤을 법한 물건이 천지이지만 볕이 잘 드는 곳에는 빨래도 걸려 있고, 때가 되면 구수한 밥 냄새도 난다. 소나무 숲과 정자, 주변의 논밭 풍경도 좋지만, 마을을 특색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물길이다. 마을 뒤쪽 설화산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을 끌어다 만든 것으로, 250여 명의 주민들은 여전히 일상에서 이 물을 이용한다. 집집마다 물길을 연결해 정원수나 방화수로 쓰고, 농사도 짓는 것. 마을 전체를 둘러보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마을 안에 있는 식당과 민박집을 이용하며 쉬어가는 것도 좋다.
둥근 초가지붕의 능선과 맞닿은 설화산 동쪽 편에는 맹씨행단이 있다. 고불 맹사성(古佛 孟思誠)이 살았던 집으로, 신창 맹씨들의 집성촌인 중리마을의 중간쯤에 있다. 집 안에는 맹사성이 심은 600년 넘은 우람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마주 보고 서 있는데, 이 때문에 이곳을 ‘행단(杏亶)’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무리 이름 높은 정승 판서를 배출해도 결코 함부로 이 말을 쓸 수 없었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에 은행나무가 있어서 유래한 말로, 오직 학문에 정진하고 이를 따르는 후학이 있을 때만 예를 다해 사용했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였던 맹사성은 고려 우왕 때 장원 급제하고, 조선시대 세종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효성이 지극하였을 뿐 아니라 강직한 관직생활로 후세에 오래도록 청백리로 기록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살림집인 맹씨행단은 고건축적으로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청렴한 선비정신을 배울 수 있는 학습장으로도 의미가 깊다.

확대보기외암민속마을 / 맹씨행단

연말 나들이를 위한
살뜰한 제안

확대보기 공세리성당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드라마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등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공세리 성당. 공세리(貢稅里)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성종 때 충청도 일대에서 거둬들인 세곡을 저장하는 공세창(貢稅倉)에서 유래되었는데, 무려 800석을 실을 수 있는 조운선 15척과 700여 명의 군사가 배속될 만큼 요지였다. 관리들은 조운선의 무사항해를 위해 공세창 언덕에서 제사를 올렸다. 이후 고종 때 창고가 폐지되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가족의 안녕과 풍년을 빌었다. 1895년 프랑스에서 부임해온 에밀 드비즈(Emile Piere Devise) 신부는 이곳을 매입해 성당을 짓고 선교활동을 펼쳤다. 설립 초기에 공세리 성당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호활동과 교육 지원에 힘썼다. 당시에 충청도 일대 주민들은 아산방조제 건설에 동원되어 몸 곳곳에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고 한다. 이들을 위해 에밀 드비즈 신부는 프랑스에서 가져온 허브를 원료로 고약을 제조해 무료로 나눠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이명래 고약’의 시초가 되었다. 옛 사제관을 개조한 성당 박물관에는 설립 초기의 생활상과 더불어 신유박해부터 병인박해까지의 순교자, 한국전쟁 당시 순교한 성직자들의 기록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 순례자의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한 해를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도고면에 자리한 세계꽃식물원은 겉에서 보기엔 그냥 평범하지만, 일단 들어가면 예상치 못한 반전이 펼쳐진다. 18개의 온실을 하나로 연결해 단일 실내 식물원으로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데다, 동장군의 기세가 제아무리 매서워도 이곳은 항상 10℃가 넘기 때문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형형색색 피어난 꽃구경을 하고 있노라면 때 이른 봄이 찾아온 것만 같고, 귀여운 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꽃과 잎으로 손수건을 직접 디자인하거나 마른 꽃으로 액자를 만드는 체험도 가능하다. 허브가 들어간 비빔밥과 수제쿠키도 맛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꽃이라 불리는 붉은 포인세티아가 만발한 가운데, 꽃으로 장식한 익살스러운 루돌프 사슴도 장식돼 있어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사랑하는 가족, 연인과 함께 따뜻하고 아늑한 아산으로 연말 여행을 떠나보시길.

아이와 함께 아산을 더 특별하게 즐기는 방법
확대보기 과학 상식이 쑥쑥! 장영실과학관

장영실의 발명품과 다양한 과학 원리를 체험해보는 공간. 특히 물이 채워지면 구슬이 굴러 종을 울리는 자격루는 귀여운 십이지신 동물 인형이 차례로 나타나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확대보기 오감 만족, 아산생태곤충원

다양한 식물과 반딧불이, 타란툴라와 전갈 등 40여 종의 살아 있는 곤충과 사막여우 같은 희귀동물도 만날 수 있다. 150m 상공에서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그린타워 전망대와 연결된다.
확대보기 옛날 물건 가득한 온양민속박물관

다양한 민속자료를 전시하는 사립 박물관으로, 3개의 상설전시실과 2개의 특별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선조들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생활도구 1만 7,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글·사진 이계선 객원기자

조회수 : 3,266기사작성일 : 20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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