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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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로 세계로
세계무대에서 빛난 정밀금형의 대가
고려정밀㈜

 

프레스 금형을 제작하는 고려정밀㈜은 생산량의 97% 정도를 해외로 수출한다. 특히 물량 대부분을 미국시장으로 보낸다. 뚫기 어렵고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미국시장에서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나용석 대표는 ‘눈높이’를 강조했다. 수출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바이어가 원하는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정밀금형의 대가(大家)로 꼽히는 고려정밀이 말하는 바이어의 눈높이는 어느 정도인지, 그 수출 과정을 되짚어 본다.

금형은 재료가 특정한 형태를 갖도록 성형하는 틀 또는 형을 통칭한다. 제품 모양과 품질을 결정짓는 금형은 첨단산업의 초석이자 제조업을 지탱하는 뿌리기술이다. 동일 형상, 동일 규격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제품은 대부분 금형기술을 사용한다. 금형이 작은 생활용품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최종 소비자가 접하는 전후방 산업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려정밀㈜(대표 나용석)은 프레스 금형을 제작하는 전문기업이다. 프레스 기계에 금형이라는 특수공구를 설치해 주로 엔진이나 제어장치 등의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금형을 생산한다. 1994년에 첫발을 내딛어 설계부터 가공, 조립, 시제품을 위한 샘플 테스트 프레스 과정까지 전 공정을 내부에서 소화하며 차근차근 기술력과 경쟁력을 쌓았다. 처음부터 국내시장이 아닌 수출에 집중한 고려정밀은 현재 생산량의 97% 정도를 해외로 수출하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전체 수출의 85%를 미국시장으로 수출하면서 미국 밀락, 일본 산케이 및 칼소닉 등 여러 기업들의 협력업체로 자리 잡았다. 현재 고려정밀에서 생산한 금형만 5,000벌이 넘는다. 2004년 ‘100만불 수출의 탑’을 처음 수상한 고려정밀은 2012년 ‘300만불 수출의 탑’, 이듬해에 ‘5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수출액이 늘면서 매출도 시나브로 늘었다. 2015년 59억 원이던 매출이 지난해엔 80억 원을 기록했다.

거꾸로 전략 하나
처음부터 꽃길만? 시행착오는 필수
나용석 대표는 설립 초부터 수출에 집중했다. 기술력과 품질 쌓기에 주력하기도 바쁜 중소기업이 마케팅에 힘을 분산하기보다는 해외로 뻗어나가는 게 현명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해외 바이어는 특별한 마케팅보다 금형 하나만 보고 기술력과 품질을판단했다. 초창기에 에이전트를 통해 간접수출을 진행하던 그는 2003년부터 직수출로 전환했다. 자신을 중심으로 해외영업팀을 조직하고 일본시장부터 뚫기 시작한 것. 간접수출을 진행하면서 일본 에이전트를 통해 원칙에 기반을 둔 수출 노하우를 익힌 것이 도움이 됐다. 일본시장을 뚫자 세계적 규모의 미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미국시장은 이듬해 광주지역에서 파견한 시장개척단(지금의 무역사절단)을 통해 진출 기회를 얻었다. 당시 북미를 중심으로 바이어를 만나 상담을 진행한 것이 성과를 냈다.
어렵사리 얻은 기회였으나, 처음엔 시행착오가 많았다. 별다른 고민 없이 그동안 하던 대로 품질 등을 진행한 것이 패착이었다. 해외시장은 눈높이가 달랐던 것이다. 특히 미국시장으로의 첫 수출은 아직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장개척단에서 만난 바이어가 50만 달러 규모의 수출 오더를 보냈는데, 납기를 맞춰 납품했으나 제대로 된 품질을 구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만 생각하면 나 대표는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결국 그는 애초에 계약한 금액의 50%를 포기하는 대신, 기회를 한 번 더 달라고 제안했다. 당장의 수출 이익보다는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행히 바이어는 선선히 OK를 했다.
이때부터 나 대표는 바이어가 요구하는 금형의 품질 수준, 진행 스타일 등을 꼼꼼히 따지고 익히기 시작했다. 바이어의 요구는 명확했다. 정확하고 수준 높은 품질과 칼 같은 납기는 기본이었다. 나 대표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바이오프 테스트(buy off test : 출하 전 최종검사)까지 철저히 준비했다. 금형기업 대부분이 테스트 과정에서 여러 하자가 발생해 시간이 지연되기 십상이다. 또,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기간을 맞추지 못하거나, 완성한 제품을 테스트하기 위해 지역 내 금형트라이아웃센터까지 왔다 갔다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반면에 고려정밀은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바이어의 테스트 내용과 순서에 맞춰 내부적으로 테스트를 미리 진행했다. 금형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고려정밀 제품은 믿을 수 있고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다고 입소문이 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고려정밀은 미국 바이어와의 바이오프 테스트 진행이 한창이었다.
“처음 하는 일이면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도 처음부터 꽃길을 걸었던 건 아니죠. 중요한 것은 시행착오에서 무엇을 배우고, 그런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어떻게 줄여나갔느냐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희는 시행착오를 통해 바이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눈높이를 갖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배웠고, 그걸 다음에는 수정해서 반영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고려정밀을 일군 토대가 됐죠.”

거꾸로 전략
큰소리 뻥뻥? 바이어에겐 진실과 정직으로
나 대표는 바이어 발굴 또한 고전적인(?) 방법으로 했다. 해마다 무역사절단과 유명 전시회에 부지런히 참가한 것. 아직까지 직접 발로 뛴다는 그는 전 세계 60여 개국을 다니며 고려정밀만의 ‘세계 금형지도’를 그려나갔다. 가령, 이집트를 방문하고 난 다음에는 10년 후에 제품을 수출하겠다고 다짐했고, 우크라이나를 다녀온 다음에는 5년 후에 진출하겠다는 그림을 그렸다는 것.
영국 바이어를 만나고 온 뒤에는 지금 당장 금형을 판매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고. 이처럼 나 대표는 어떤 나라는 바로 진출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고 도전했으며, 어떤 나라는 먼 훗날의 수출을 기약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바이어들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에 바이어를 만났을 때에는 저희 회사가 모든 것을 다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얘기했어요. 그래야 바이어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저희 능력보다 부풀려 얘기하고,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는 것처럼 큰소리를 쳤죠. 해보지 않은 것도 해봤다고 허세를 부렸어요. 그러다보니 때로는 뒷감당을 하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바이어들이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어요. 어린아이가 마치 어른인 양 행세하는 것을 다 알면서도 그냥 지켜만 본 거죠. 그걸 알고 나니까 부끄러웠어요. 그때 깨달은 것이, 바이어들과의 관계는 진실과 정직, 그 속에서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이후부터 나 대표는 바이어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고 진실하게 다가갔다. 그러자 바이어들도 마음을 열고 곁을 내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고려정밀은 바이어에게 ‘No’라는 말을 하지 않는 기업으로 통한다.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할 수 없는 것은 도전해보겠다고 얘기하면 ‘No’라고 말할 이유가 없다는 게 나 대표의 신념이다.
“10여 년 전에 어느 바이어가 ‘한국 사람들은 왜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당시에는 저도 그랬거든요. 바이어가 조금 까다롭게 요구한다 싶으면 안 된다는 말부터 먼저 했죠. 그 뒤로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바이어의 요구에 ‘No’라고 말하기보다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이후부터 나 대표는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생겼다. “바이어는 사장보다 높다. 항상 친절하게 대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다가가되, 한번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고려정밀은 한번 인연을 맺은 바이어와 끝까지 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미국시장에 처음 진출할 때 시장개척단을 통해 매칭된 바이어와는 아직도 활발히 거래하는 중이다.

거꾸로 전략
흰색 작업복이 뭔 대수냐고? 금형인의 자긍심이다
고려정밀 본사에는 ‘자랑스런 대금형인(大金型人)’이라고 쓴 조형물이 자리해 있다. 이는 나 대표의 바람이자 목표다. 직원들이 금형인으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나 대표의 꿈이기 때문이다. 그는 금형인으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이 상당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산업분야에서 금형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위상은 변함이 없는데, 3D직종으로 여기는 지금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때문에 그는 3년 전부터 사내에 흰색 작업복을 도입했다.
“금형인으로서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흰색 작업복을 입으면 마음가짐부터 달라지고, 주위를 항상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하게 되죠. 그런 사소한 행동이 건강은 물론이고 안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흰색 작업복을 입는 곳으로는 일본의 대표 자동차기업인 혼다가 유명하다.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자동차를 만드는 작업자가 의사와도 같다는 철학을 흰색 작업복에 투영했다. 정갈한 마음으로 일하며 품질에 완벽을 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객에게도 깨끗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흰색 작업복을 고집했던 것. 현재까지도 전 세계의 혼다 공장에서 흰색 작업복을 착용한다.
고려정밀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깨끗한 흰색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모습은 생소하면서도 신선했다. 현장 작업복 대부분이 회색이나 짙은 색인 것과는 확연히 비교됐다. 나 대표는 흰색 작업복을 입으면서 더럽혀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것이 품질과 안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품질이 높아진 것은 물론, 직원들의 안전사고가 줄고 건강까지 좋아졌다는 것이다. 사내에 전체 금연을 실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처음에는 직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흰색 작업복이 중요한지를 꾸준히 설득하고 금형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도록 교육하면서 불만이 점차 잦아들었다는 것. 이 같은 나 대표의 신념은 ‘Quality(품질)·Delivery(납기)·Cost(가격)·Clean(청결)’이라는 고려정밀의 경영 목표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사소하고 연관이 없는 듯한 이런 노력이 바이어들에게 더 큰 신뢰를 줄 수 있음은 물론이다.
고려정밀은 내년에 ‘천만불 수출의 탑’ 수상을 목표로 부지런히 내달리는 중이다. 비결은 거창한 데 있지 않았다. 바이어의 눈높이에 맞춘 기술력은 물론, 금형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무장한 직원들이 빚어내는 금형의 품질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 ‘오백만불 수출의 탑’ 옆자리에 ‘천만불 수출의 탑’이 나란히 놓일 그날을 기대해도 좋을 듯했다.

이은정 전문기자 사진 손철희 객원사진기자​

조회수 : 1,445기사작성일 : 2017-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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