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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발견
지하철 타고 떠나는 시간 여행,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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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서 가깝고 주변 교통까지 편리한 인천 원도심은 가볍게 떠나기 좋은 여행지다. 1883년 개항한 이후 건축된 문화재와 1930~194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개항장문화지구와 차이나타운, 신포시장 등 다채로운 볼거리와 먹을거리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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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사의 명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인천은 ‘최초’임에도 가슴 아픈 타이틀을 수없이 많이 가지고 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인천 제물포 화도진 언덕에서 이뤄진 뒤 1883년 1월 제물포항이 일본에 강제로 개항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맥아더의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은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며, 우리나라 첫 서구식 호텔로 평가되는 대불호텔은 1888년 건설되었다. 그뿐만 아니다. 첫 공식 해외이민이 시작된 곳도 인천이다. 1902년 11월 대한제국은 해외이민 업무담당기관인 유민원(綬民院)을 설치했고, 그해 최초의 이민선을 타고 100명 넘게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향했다. 여행의 시작점인 인천역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출발점으로 한때 ‘제물포역’, ‘하인천역’으로 불렸다.

확대보기차이나타운

확대보기 한중원 한국 속의 작은 중국
인천역을 나와 길을 건너면 중국식 전통 대문인 패루(牌樓)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중국 웨이하이(威海)시가 한중우호교류를 위해 인천 중구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 차이나타운에는 중화가(中華街), 선린문(善隣門), 인화문(仁華門) 등이 동서남북으로 서 있다. 이 패루를 지나면 붉은색 물결이 일렁이는 차이나타운이다. 130년 전 인천이 개항한 이래 중국인이 들어와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한국 속의 작은 중국’으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 화교들은 중국에서 가져온 식료품과 잡화, 소금이나 곡물들을 ‘청관거리’라 불리는 이곳에 내다 팔았고, 대형 요릿집과 무역상들이 터를 닦으면서 인천 최대 상권으로 발돋움했다. 1950년대에는 화교 수천 명이 북적댈 정도로 황금기를 이뤘지만 각종 규제로 거리는 점차 활기를 잃었다.
그러나 한중수교 이후 이색적인 문화거리로 자리매김하면서 이제는 인천을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왕복 2차선 도로에는 중국음식점이 즐비하다. 차이나타운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화교들이 직접 만든 정통 중국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 별미인 짜장면과 월병, 공갈빵, 양꼬치 등 산해진미가 가득하다. 그중 코끝 찡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은 짜장면박물관이다. 한국식 짜장면의 원조로 유명한 옛날 공화춘 건물로, 짜장면의 탄생과 화교의 역사 등을 소개한다. 중국식 정원인 한중원(韓中園)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중국 4대 정원을 모티브로 만들었는데, 크기는 아담하지만 중국 특유의 문화와 정취가 잘 담겨 있다. 화교중산학교(華僑中山學校)를 지나 언덕을 따라 쭉 올라가면 『삼국지』의 명장면을 소개하는 150m 길이의 대형 벽화가 나타난다. 길 끝에서 왼편 오르막길을 따라가면 자유공원에 닿는다. 자유공원은 1882년 개장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서울의 탑골공원보다 9년 먼저 세워졌다. 원래 이름은 ‘각국공원’이었는데, 독립한 후에는 ‘만국공원’으로 불렀다. 1957년 맥아더 동상을 세우면서 ‘자유공원’으로 다시 한번 개칭했는데, 인천사람 가운데는 여전히 만국공원이라고 부르는 이가 많다. 일대에는 여전히 다국적·다민족 문화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확대보기개항장거리

확대보기자유공원 / 개항장거리

확대보기제물포구락부

근대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맥아더 동상이 지키고 서 있는 자유공원 한쪽에는 개항기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인 옛 제물포구락부가 있다. 역사 드라마에서 보던 복고풍 클럽에 실제 들어온 듯 아기자기한 소품과 인테리어가 흥미롭다. 내부의 너른 응접실에서 당시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고종의 주치의였던 리하르트 분쉬 등 각 나라의 대표 외국인 100여 명이 모이던 곳으로, 친목보다는 각국의 이권을 챙기고 일본을 견제한 치열한 외교 현장이었다. 당시 영상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며 음악회도 개최한다.
맞은편에는 이와 대조적인 느낌의 한옥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사업가 고노 타케노스케의 별장이 있던 자리로, 현재는 인천시 역사자료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유공원을 돌아본 뒤 공원 진입로로 내려오면 거대한 동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2002년 중국 칭다오(靑島)시가 기증한 공자상이다. 높이가 자그마치 4.5m나 된다. 공자상 아래에는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이 있다. 계단 옆으로 석등이 여러 개 서 있는데, 자세히 보면 그 모습이 다르다. 오른쪽 것은 중국, 왼쪽 것은 일본 양식을 따랐다. 간단히 말하면 이 계단을 기준으로 왼쪽은 중국인 거주지, 오른쪽은 일본인 거주지로 나뉜다.
일본인이 거주했던 구역은 차이나타운보다 한결 조용하다. 조금만 걸으면 한때 일본영사관으로 사용된 인천 중구청 건물이 보인다. 그 앞으로 일본식 목조건물에 아기자기한 카페와 가게가 줄지어 있어 여유롭게 구경하기 좋다. 흑백사진처럼 어른거리는 근대 개항장 풍경은 원형 그대로 보존된 옛 건물들을 만나면서 한층 또렷해진다. 당시 조선의 금융권을 장악하려고 세운 일본제1은행은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하다 2010년부터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반원형 아치의 현관이 독특한 이곳에서는 인천 개항의 역사를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옆 건물은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일본제18은행이다. 1954년까지 한국흥업은행 지점이 있었는데 개인이 사들여 1992년까지 카페로 사용했고, 이것을 다시 시에서 매입해 근대건축전시관으로 개관했다. 안에는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한 이래 지어진 근대 건축물 모형과 당시 모습을 사진을 곁들여 설명해놓았다.

확대보기한국근대문화관 / 아트플랫폼 내부

상처를 치유하는 예술 한마당
은행거리를 지나 바다냄새를 따라 한 블록 아래로 내려오면 인천아트플랫폼이 나온다. 한눈에도 수십년 세월을 보냈을 법한 빨간 벽돌로 된 창고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여행객으로 늘 붐비는 플랫폼처럼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간에 대한 이야기마저 멋스럽기 그지없다. 낡은 창고들이 ‘아트’라는 새 옷을 걸치고 생기발랄하게 대변신했기 때문이다. 일대에 인천항에서 하역한 짐을 보관하던 대단위 창고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 창고가 자취를 감추었고,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도심의 흉물처럼 방치되었다. 이후 근대문화유산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한통운 창고, 삼우인쇄소,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사옥 등이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전시장과 공연장, 창작스튜디오, 공방, 자료관, 카페 등 13개 동 규모로, 국적과 장르가 다양한 예술가들이 짧게는 3개월부터 길게는 1년까지 이곳에 머물며 창작에 열중한다. 간혹 운이 좋으면 일반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작업실을 공개하고 작품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작가도 만날 수 있다. 주말이면 인형극과 현대무용,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이어져 꽤나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 인천아트플랫폼 내 한국근대문학관은 이름 그대로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역사와 흐름을 잘 정리해놓은 곳이다. 쌀 창고와 김치공장 등으로 활용하던 건물을 리모델링했는데, 개항으로 시작된 근대문학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1890년대부터 1948년까지 활동한 김소월, 한용운, 현진건, 염상섭, 정지용, 백석 등의 대표작을 원본으로 볼 수 있으며, 전시장 중앙 벽면에는 이들의 초상화가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감각적인 건축물과 조형물, 통유리 너머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 덕에 겨울 나들이가 더욱 즐거워진다.

글·사진 이계선 객원기자

조회수 : 1,243기사작성일 : 201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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