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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발견
따스한 5월의 봄 _ 광주

푸근한 정이 그리워지는 5월. 광주로 향한다. 100년 전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과 고택이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 옛 동네에는 근현대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사람 북적이는 광장과 시장을 두리번거리면 여행자를 맞이하는 정겨운 사투리. 오매, 자네 왔는가!

확대보기광주천 / 518민주광장

자타가 공인하는 전라도 최대의 도시 광주. 서울에서 KTX를 타면 2시간 만에 도착하는 데다 총 지하철 20개 역이 연결돼 있어 차 없이도 둘러보기 편리하다. 맛과 멋의 고장답게 ‘개미진(음식 맛이 좋다는 전라도식 표현)’ 음식과 세대를 뛰어넘는 다채로운 행사도 도심 곳곳에서 펼쳐진다. 하지만 불과 130여 년 전의 모습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1900년대 초까지 전라도의 중심지는 나주와 전주였다. 광주는 1896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도시로 성장했다. 전라남도 관찰부가 생겨나면서 나주를 대신하는 행정, 문화 중심지로 발돋움한 것. 아쉽게도 1900년대부터 광주읍성은 조금씩 헐리기 시작해 성벽 터는 대부분 도로로 바뀌었다.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 충장로와 금남로도 이때 생겨났다. 광복 이후에는 도청소재지라는 이점을 활용해 광주는 전라남도 최대의 도시로 자리매김했고, 1986년 직할시가 되면서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에는 광역시로 이름을 바꾸었다. 오래된 역사책을 뒤적이는 마음으로 5월, 광주로 향했다.

광주 근대문화의 숨결이 담긴 양림동
빛고을 광주에서 가장 핫한 곳은 바로 양림동이다. 주민 일부는 한때 ‘서양인이 살던 동네’라서 마을 이름이 양림동(洋林洞)이라고 말하는데, 지명 유래를 찾아봤더니 ‘버드나무숲이 우거진 마을’이란 뜻의 양림동(楊林洞)이다. 유래가 어떻든 간에 1900년대 초 파란 눈의 선교사들이 신문물을 들여오며 마을은 새로움과 전통이 어우러지는 곳으로 차차 변모했다. 당시 양림동은 유럽 유학길에 오른 이가 있을 만큼 교육열이 높았으며, 광주 5대 부자가 모여 살았을 만큼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다. 미국의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은 서양식 주택과 교회, 학교와 병원을 짓고 선교활동에 나섰다. 1904년 광주 최초로 지어진 광주양림교회는 양림동 여정의 이정표 같은 곳. 바로 앞에는 선교사로 활동하다 순교한 오웬(Clement C. Owen)과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을 기리는 오웬 기념각이 있다. 1914년 건립되어 교회 행사는 물론이고 갖가지 음악회와 연극, 무용 등의 공연이 열리면서 근대 광주 신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 골목을 나와 호남신학대학교로 향하는 야트막한 언덕에는 선교사들이 살던 서양식 주택이 모여 있다. 그중 미국인 선교사 우일선(Robert M. Wilson)에 의해 1920년에 지어진 사택은 광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으로,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일대는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나 어린 주검들을 풍장(風葬)하던 곳인데, 선교사 유진벨(Eugene Bell)은 그의 사택에서 한센병을 비롯한 병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대를 ‘광주의 예루살렘’이라고도 부른다.
언덕 아래에는 1908년 설립되어 광주 3·1운동의 발원지 역할을 맡은 수피아 여학교가 있다. 올망졸망한 골목 안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였다가 이제는 고택이 된 최승효 가옥과 이장우 가옥, 버려진 생활용품으로 치장한 ‘펭귄마을’, 모던한 미술관과 카페 등이 숨어 있어 보물찾기 하듯이 둘러볼 수 있다. 양림동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마을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visityangnim.kr)에 참여할 것을 권한다.

확대보기오웬기념각 / 이장우 가옥

확대보기펭귄마을

문화예술로 다시 살아나는 5월의 광주
지하철을 타고 문화전당역에서 내리면 5·18민주광장과 연결된다. 실제로 너른 광장에 서면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울컥한 마음이 든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시민군은 무차별한 공격에 맞서다 5월 27일 옛 전남도청에서 최후를 맞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침 안개처럼 흐려졌지만, 그날의 일을 똑똑히 지켜보았던 시계탑은 매일 5시 18분이면 차임벨을 통해 어김없이 우리를 일깨운다.
5·18민주광장 뒤편에는 2015년 11월 25일에 문을 연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있다. 이 건축물이 흥미로운 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본부로 사용되었던 옛 전남도청 본관과 경찰청 등은 그대로 두고, 새로운 공간만 지면보다 낮게 파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장소를 경배하는 건축가의 마음이 자연스레 읽힌다. 처음 이곳에 당도하면 넓은 면적과 규모에 조금 당황하지만, 어떻게 관람할지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다. 옛 전남도청 건물인 민주평화교류원을 시작으로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예술극장, 문화창조원 순서로 둘러본 뒤 하늘마당으로 향하면 된다. 자녀와 함께 갔다면 어린이문화원을, 여유가 있다면 라이브러리 파크에서 시간을 보내면 좋다. 아시아를 주제로 소리와 음악, 디자인, 사진, 건축 등 다양한 전시가 열리기 때문.
5·18민주광장에서 나와 곧게 길을 따라가면 금남로다. 광주의 대표적인 중심지로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택시와 버스 등 200여 대의 차량이 이곳으로 몰려와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공수부대 저지선으로 향했고, 수많은 시민이 그 뒤를 따랐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오후 2시부터 전일빌딩, YWCA, 녹두서점과 광주MBC 옛터 등을 둘러보는 도심관광 트레일과 다채로운 행사들이 금남로 곳곳에서 무료로 열린다. 평일이라면 광주극장으로 향한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문을 연 국내 유일의 단관극장으로, 옛날 옛적 모습 그대로라 요즘의 멀티플렉스와는 딴판이다. 지정좌석제가 아니라 자유석이며, 상업광고 없이 정시에 시작한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붓으로 그린 영화간판이다. 1991년부터 광주극장에서 손 간판을 제작하고 있는 박태규 화백의 간판실이 극장 안에 아직도 존재한다. 실제로 일반인들이 에나멜페인트로 직접 간판을 그릴 수 있는 간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확대보기acc미디어파사드

확대보기acc어린이문화원 / 광주극장

색색으로 물드는 시장의 밤
여정의 마무리는 시장이 제격이다.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한번에 즐길 수 있어 눈과 입이 즐겁기 때문. 금남로에서 가까운 대인시장은 광주 중심가에 자리 잡은 유일한 전통시장이다. 1959년 공설시장으로 문을 열어 1990년대 침체기를 겪다가, 2008년 광주비엔날레를 기점으로 전통시장과 예술을 접목한 명소로 거듭났다. 빈 벽에는 광주 출신의 역도선수 장미란과 야구선수 선동렬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상설시장이라 언제나 장을 볼 수 있지만, 진짜 매력은 밤에 빛난다. 매주 토요일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별장’이라는 명칭으로 야시장이 열린다. 떡볶이와 어묵, 튀김, 시장통닭은 기본이고 새우버터구이와 문어꼬치 같은 해산물과 두툼한 고기 메뉴도 맛볼 수 있다. ‘별별 것이 다 있는 장터’라는 이름처럼 다채로운 공연과 전시, 체험까지 두루 펼쳐진다. 그중 백미는 작은 공간을 꽉 채운 ‘한평 갤러리’. 지역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작품을 무료로 만날 수 있다.
KTX와 지하철이 연결되는 광주송정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1913송정역시장이 있다. 이름 앞에 독특하게 1913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송정역전 매일시장이 처음 생겨난 연도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호남선이 개통되었는데, 1년 먼저 목포와 송정리를 오가는 시범구간이 연결되면서 역 앞에 시장이 덩달아 생겨났다. 광복 이후에는 농산물 거래가 활발했고, 우(牛)시장이 성시를 이뤘다. 그런대로 명맥을 유지하던 시장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대형마트 때문에 그야말로 ‘죽은 시장’이 되었다.
그러다 현대카드와 광주광역시가 합심해 64개 점포를 재단장하여 2016년 4월에 일제히 문을 열었다. 엄마 손을 잡고 골목시장에 갔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날 수 있도록 낡은 건물을 살짝 고치고, 간판도 옛 글씨체로 복고풍으로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방앗간과 의상실, 식육점과 국밥집처럼 오래된 터줏대감 가게에는 처음 문을 열었던 연도와 상호를 적어 각각의 이야기도 담아냈다. 새로 문을 연 청년들은 삼뚱이, 고기한쌈, 계란밥 같은 기발한 메뉴로 눈길을 끈다. 저녁이 되면 노란 불빛이 켜지면서 더욱 포근한 골목시장 분위기를 내기 때문에 기념사진을 찍기도 알맞다. 100년 근현대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도시 광주에서 따스한 봄날의 추억을 남겨보길 권한다.

확대보기1·2_송정역시장 / 3_대인예술시장

글·사진 이계선 객원기자

조회수 : 2,960기사작성일 : 2018-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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