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도시의 발견
몹시도 푸른 강물 _ 충주

한반도의 정중앙에 자리한 충주는 옛날부터 중원(中原)으로 불렸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힘겨루기가 이어졌고, 무수한 희생이 뒤따랐다. ‘내륙의 바다’라 불리는 충주호를 시작으로 물길을 따라 가다 보면 숨은 옛 이야기들과 마주하게 된다.

확대보기충주 풍경

확대보기목계나루터 옛 사진 목계나루터 옛 사진 지금은 ‘충주댐’과 ‘사과’로 유명하지만 그 옛날에는 사통팔달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삼국시대 때는 이곳을 두고 신라와 고구려, 백제가 치열한 세력다툼을 벌였다. 원래 백제의 땅이었다가 고구려가 차지하면서 국원성(國原城)을 설치했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나라의 중앙’이란 뜻으로 중원경(中原京)이라 불렀다. 그래서 현존하는 국내 유일의 고구려 석비인 충주 고구려비(국보 제205호)와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6호)이 멀지 않은 곳에 마주하고 있다.
충주(忠州)라는 지명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 왕건 때 맨처음으로 지어졌다.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자를 합해 충절의 고장으로 명한 것. 이후 1413년 조선 태종은 전국을 8도로 나누면서 지역별로 대표되는 도시의 이름에서 첫 글자를 땄는데, 충청도는 충주(忠州)와 청주(淸州)에서 비롯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고 놀던 탄금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배수의 진을 쳤다. 하지만 8,000여 명의 군사가 조총으로 무장한 2만 5,000명을 이기기란 역부족이었다. 역사적으로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충주는 조선 말기 근대화의 급물살을 타면서 예기치 못한 진통을 겪게 된다.

‘근대화’라는 변화의 급물살
고종 32년 지방제도를 개정하여 충주를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로 삼았다. 하지만 14년 후 순종은 교통이 불편하다며 도청을 청주로 이전시켰다. 이후 일제는 신시가지 건설을 이유로 충주읍성을 모두 헐어냈다. 지금은 충주목사가 근무하던 동헌인 청녕헌(淸寧軒)과 제금당(製錦堂) 등 옛 관아건물 일부만 남아있다. 일제의 도시 계획으로 일대는 교통과 통신, 전기 같은 근대적인 시설이 정비되었고, 관공서가 들어서며 충주 최고의 번화가가 되었다.
1906년에는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도 생겼다. 일제가 식민지 경제 지배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중요한 축으로 삼은 특수은행으로,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은 충북 북부와 강원 남부 등 6개 군의 업무를 담당했다. 이 건물은 광복 이후 한일은행 건물로 쓰이다가 1980년대 초 민간에 매각되어 지난해까지 가구점 등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당시의 아픔을 기억하고자 근대사 역사관으로 활용하는 방법 등이 원도심 개발과 함께 논의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경제적인 착취가 심해지면서 당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충주에 거주한 일본인은 1910년에 178명이었으나 1942년에는 1,192명으로 7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많은 자금을 투자해 땅을 사들여 대지주가 되었다.
일제는 군량미 수탈을 목적으로 충주수리조합을 만들고, 당시 일본인 조합장은 충주 지역민을 강제 동원해 달천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호암지(虎岩池)를 1932년 준공했다. 이곳은 2008년 연꽃과 부레옥잠 같은 수생식물이 자라는 수생생태원과 생태전시관 등을 꾸며 호암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하며 충주의 명소로 되살아났다. 기계와 장비 없이 오로지 삽과 지게, 우마차를 이용해 사람의 힘으로 11년 동안 공사를 했다는데, 둘레 약 4㎞에 이르는 인공호수를 걷다 보면 그 시절이 얼마나 참혹했을지 상상이 간다.

확대보기재현해놓은 관아와 호암지 생태 탐방로재현해놓은 관아 / 호암지 생태 탐방로

쇠락과 발전의 변곡점
근대화를 맞이하면서 가장 빨리 쇠락의 길로 접어든 곳은 조선시대 5대 나루터 중 하나였던 목계였다. 마포나루에 버금갈 정도로 한강 수운(水運)의 중심 역할을 했던 이곳은 겨울에 강물이 얼었을 때를 빼고는 황포돛배가 강물을 뒤덮을 정도로 번성했던 곳. 충청도와 경상도의 세곡을 수납·보관하는 가흥창이 있어 한때는 충주 읍내의 인구보다 많은 인구가 거주했을 정도다. 이중환이 쓴 『택리지(擇里志)』에 따르면 목계는 “동해 생선과 영남 화물의 집산”이며, “주민들은 장사를 하여 부자”였고 “소금배나 짐배가 들어오면 사흘에서 이래씩 장이 섰다”고 한다. 1928년 통계에 따르면 이때까지만 해도 충주의 수운은 전체 물류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그 중요성이 컸었다. 하지만 1928년 충북선 철도가 개통되고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황포돛배가 하던 일을 차와 기차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36년 여름 대홍수를 맞았고, 댐 건설로 물길마저 막히면서 목계는 그저 그런 강가 마을로 전락하고 말았다. 표지석만 남아 있는 이곳에 지난 2015년 목계나루의 옛 모습을 설명한 강배체험관과 주막 등의 시설이 들어서면서 봄마다 축제가 열리고, 활력도 조금씩 되찾고 있다. 수제공예품과 유기농 농산물, 벼룩시장이 펼쳐지는 ‘리버마켓-목계나루’도 매달 열리는데, 자세한 일정과 장소는 인터넷 카페 ‘문호리 리버마켓’(cafe.naver.com/theseojong)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물이 솟는 보의 안쪽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수안보는 목계와 반대로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급성장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 용출 온천으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청구도(靑邱圖)』 등 30여 종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유서가 깊은 이곳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빈번하게 찾았다고 한다. 그 옛날 왕족과 귀족은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 치료와 휴식을 위해 사시사철 붐볐다. 그러다 일본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해 일제강점기에 대중탕과 여관을 갖춘 근대식 온천장이 문을 열었다. 한 호텔의 외벽에는 당시 찍은 사진이 커다랗게 붙어 있다.
수안보는 광복 이후 경제 발전과 더불어 큰 인기를 누리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행지로 당당히 떠올랐다. 1960~1970년대에는 신혼여행지로, 1980년대에는 가족여행과 수학여행지로 이름이 높았다. 화려했던 과거에 비해 요즘은 찾는 이가 줄어들어 시설은 다소 빛이 바랬지만, 오히려 한적하게 온천을 즐기기에 알맞다. 관광안내소 주변으로 누구나 편히 발을 담그고 쉴 수 있는 물탕공원 족욕 체험장과 수안보온천 역사 홍보관이 있다.

확대보기강배체험관과 목계나루 샛강강배체험관 / 목계나루 샛강

가을이라 더 기대되는
길이 464m, 높이 97.5m의 우리나라 최대 콘크리트 다목적댐인 충주댐은 1978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어 1985년 완공되었다. 남한강 물길을 막아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고, 방류를 하면서 수력발전을 하고 있다. 소양강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저수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연간 33억 8,000만t의 각종 용수를 수도권 지역에 공급하는 한편, 연간 8억 4,400㎾h의 전력을 생산해 공급한다. 댐의 건설로 충북 충주시와 제천시, 단양군에 걸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공호수인 충주호가 생겨났다.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의 바다’라고 부르는 만큼 볼거리도 상당하다. 여행객들은 충주댐 전망대를 둘러보고 충주나루에서 출항하는 유람선을 타고 단양나루까지 물길여행을 떠난다. 사계절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지만,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에는 더 화려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충주댐 아래 강변 1.6㎞를 따라 걸으며 바람을 쐴 수 있는 ‘강변길’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다.
충주댐에서 약 10㎞ 정도 떨어진 충주 세계무술공원은 해마다 9월이 되면 떠들썩한 잔치가 벌어진다. 42여 개국 62개 세계무술연맹을 비롯한 국내외의 무술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식 후원하는 무술 축제인 ‘충주세계무술축제’는 한국의 전통무술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76호인 택견의 세계화를 위해 1998년부터 개최해오고 있다. 박진감 넘치는 무술 대결과 세계 각국의 전통무술 시연, 호신술 배우기 같은 다채로운 체험이 일주일 내내 펼쳐진다. 행사장 안에는 우리나라의 전통무술을 이해하고 세계 각국의 무술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박물관도 마련되어 있다. 또한 야외공연장 한쪽에는 남한강 정비사업 중에 채취된 호박돌을 활용하여 조성한 국내 최장거리의 미로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아이들과 뛰어놀기 좋다. 충주의 특산물인 사과와 태극문양을 모티브로 만든 미로는 총 연장길이 2㎞가 넘는다. 막다른 길에 잘못 들어서서 몇 번 길을 되짚다 보면 다리가 뻐근해질 정도로 특별한 걷기운동이 된다.
맞은편에 자리한 충주라이트월드는 빛을 소재로 꾸민 테마파크. 올해 4월에 개장한 이곳은 세계 정상급 조명회사와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해 각국을 대표하는 건축물과 갖가지 조형물을 만들었다. 특히 이탈리아의 베드로성당은 무려 100만 개 이상의 LED가 반짝이는 100m 길이의 루미나리에로 보는 이를 단번에 사로잡는다. 물길을 따라 다채로운 이야기가 흐르는 충주에서 이전과 다른 가을을 느껴보시길 바란다.

확대보기수안보 기념비와 충주호 유람선충주호 유람선

확대보기라이트월드 조형물라이트월드

글·사진 이계선 객원기자

조회수 : 2,902기사작성일 : 2018-09-04
기사 만족도 평가
별 개수를 클릭하여 기사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이 기사의 별점
평균 2.1점 / 55
  • 매우 불만족
  • 불만족
  • 보통
  • 만족
  • 매우 만족
별 5개 / 매우 만족

의견글 작성
  • (삭제 시 필요)
* 불건전한 내용이나 기사와 관련 없는 의견은 관리자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메뉴 열기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