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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시골생활, 의성

지속적인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지난 몇 년간 지방소멸 위험지수 전국 1위를 달렸던 경북 의성.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주력한 제1의 정책은 바로 청년 유입이었다. 슬기로운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해 이웃사촌이 되면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일고 있다.

확대보기청춘구 행복동이웃사촌 청년시범마을 마중물 사업인 ‘청춘구 행복동’은 안계면에 마련된 공동 숙소에 머물며 진로를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한반도의 역사가 시작할 무렵부터 의성은 풍요로운 땅이었다. 젖줄인 위천(渭川)과 낙동강이 만나는 데다, 경상북도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예로부터 각종 물자의 교류도 활발했다. 보물단지와 다름없는 이 땅을 두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다. 신라는 비옥한 대지를 차지하기 위해 의성의 뿌리에 해당하는 고대국가 조문국을 멸망시켰고, 후삼국의 견훤과 왕건 역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명운을 걸었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비옥한 땅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경북 3대 곡창지대로 꼽히는 안계(安溪)에는 이미 100년 전에 금융조합이 설립됐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며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지속적인 인구 감소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의성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소멸 위험이 가장 큰 지역으로 손꼽혀왔다. 실제로 지난 5년간 5개의 학교가 문을 닫았고, 65세 이상 인구 비율인 고령화율이 40%에 육박한다.

청년들의 이주를 응원하는 이웃사촌지원센터

의성은 지난 2015년부터 꾸준히 청년 인구 유입을 통해 지방소멸 가속화를 막고자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다. 무엇보다 의성군 청년발전 기본 조례에 따라 다른 지역과 달리 만 19세 이상 만 45세 이하라면 청년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보다 많은 이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려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19년부터 추진 중인 ‘이웃사촌 청년시범마을’이다. 의성 서부권 7개면 중심지인 안계면 일원에 일자리와 주거, 복지와 마을공동체가 두루 갖춰진 새로운 형태의 마을이 조성되고 있다. 청년과 지역주민이 함께 팀을 이뤄 창업하는 ‘청년시범마을 일자리사업’과 도시청년의 창업활동을 지원하는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실습형 스마트팜에서 교육을 마치고 창농하는 ‘청년농업인 스마트팜 교육’ 등의 지원을 받아 정착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이웃사촌지원센터는 시범마을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립, 운영하고 있는 민·관 협력기관이다. ‘청년이 찾는 안계, 지속가능한 의성’을 슬로건으로 지역주민과 도시청년을 위한 핵심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이웃사촌 청년시범마을 마중물 사업인 ‘청춘구 행복동’ 프로그램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100명이 넘는 지원자가 속출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확대보기이웃사촌지원센터 내부 확대보기지원사업 리플렛안계면에 있는 이웃사촌지원센터는 민·관 협력 중간지원기관으로,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사업을 지원한다.

“수도권에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단어지만, 살짝만 벗어나면 다수의 지자체가 지방소멸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반면 무한경쟁 사회에 지친 청년들은 여러 가지 경로로 지역 이주를 탐색하고 있어요. 도시와 농촌의 요구를 잘 연결하며 청년들이 안착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터전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이웃사촌지원센터에서 도농 연계를 맡고 있는 민재희 팀장은 ‘살아보기’ 프로그램은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지역 안착을 유도하는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도시 청년들은 6주간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안계면에 마련된 숙소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한다. 이후 희망자에 한해 추가 4주 동안 본격적인 지역 정착 준비를 하게 된다. 1, 2기 참가자 30명 중 현재 16명이 의성에 남아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스토리텔링과 문화·예술을 접목하는 청년 스타트업 ‘프로젝트 담다(Project Damda)’는 청춘구 행복동의 인연이 창업으로 이어진 케이스.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휴학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내 삶에 ‘잠깐 쉬어가는 시간을 주자’는 마음으로 행복동에 입주했습니다. 드넓게 펼쳐진 안계평야와 탁 트인 하늘을 보면서 참 많은 위로를 받았답니다.”
김민재 팀장의 이야기에 공감한 박찬경, 최성신 공동대표는 솜씨를 살려 ‘지친 마음이 씻겨 나간다’는 의미로 안계의 풍경을 담은 수제비누를 제작했다. 청춘행복장터를 통해 이들이 만든 200여 개의 비누는 2시간 만에 완판됐고, 사업 가능성을 엿본 세 사람은 의기투합해 사무실을 겸한 작은 공방을 열었다.

확대보기박찬경 대표와 김민재 팀장‘청춘구 행복동’의 인연이 공동창업으로 이어진 ‘프로젝트 담다’의 박찬경 대표(왼쪽)와 김민재 팀장(오른쪽). 안계의 풍경을 담은 수제비누를 시작으로 지역 자원을 활용한 감성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여기 있으면서 스스로 몰랐던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됐어요. 의외로 리더십이 있더라고요(웃음).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더 주체적으로, 더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기획해 크라우드펀딩과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판매할 계획입니다.”

팍팍한 일상에 지친 청년을 위로하는 마을

당찬 포부를 밝히는 박 대표처럼 안계에 정착한 청년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웃사촌 청년시범마을의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인 ‘청년예술캠프’도 마찬가지. 전국에서 참여한 작가들이 지역에 거주하며 얻은 영감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문화예술에 소외된 지역민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예술을 매개로 소통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열리는 ‘안계시장, 기억을 걷다 展’은 시장을 지켜온 상인들의 추억과 이야기를 소재로 한 전시로, 오는 12월 16일까지 안계시장 일원에서 열린다. 전시는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철거 예정인 장옥(長屋) 구조를 그대로 살려 활용한다. 길 양쪽에 점포가 줄지어 선 상점을 장옥이라고 부르는데, 안계시장의 30여 개 점포가 2021년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실내외 장옥에는 사진과 영상, 설치와 일러스트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품이 전시된다.

확대보기안계면민회관 벽면 벽화 확대보기안계시장, 기억을 걷다 展‘안계시장, 기억을 걷다 展’은 시장 상인들의 추억과 이야기를 소재로 한 전시로, 오는 12월 16일까지 안계시장 일원에서 열린다.

전시공간 중 하나인 안계면민회관 벽면에는 과거 호황기의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1일과 6일 열리는 안계장은 전국의 면소재지 가운데 손가락에 꼽히는 큰 장이었다. 오래전의 한 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1939년 2월 어느 날 이웃 7개 읍·면에서 모여든 장꾼들이 2만 명을 훌쩍 넘겼을 정도라고 한다. 드넓은 평야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선 황소가 필요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지정한 종모우(種牡牛)시장이 열렸다. 전속 중개사만 70명에 달했고, 모내기가 끝난 7월 성수기에는 하루에 거래되는 소가 무려 1,200두가 넘었다고 한다.
안계전통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옛 양조장을 찾아 큰길을 건넜다. 멀지 않은 곳에 수제맥주 공방 호피 홀리데이(Hoppy Holiday)가 있기 때문이다. 농촌에 이런 트렌디한 가게를 내다니, 그 속내가 자못 궁금했다.

확대보기김예지 대표도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만들어나가겠다는 호피 홀리데이의 김예지 대표. 낮에는 수제맥주와 관련된 원데이 클래스를, 오후에는 펍으로 운영하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홈 브루잉(home brewing)을 취미로 5년 정도 했어요. 자연스레 브루 마스터의 꿈을 갖게 됐죠. 짬짬이 떠나는 휴가도 브루어리 위주로 일정을 짰어요. 수제맥주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데가 없답니다. 그러다 홉 농장 호비든(Hopeden) 사장님 내외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의성에서 청년들을 위한 좋은 정책이 있다고 먼저 알려주시더라고요.”
신선한 홉을 빨리 조달받을 수 있고, 의성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과, 자두, 복숭아, 마늘 등 제철 농산물을 이용해 자신만의 레시피로 지역 특색을 담은 맥주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는 김예지 대표. 결국 그는 기존에 계획했던 대도시가 아닌 의성을 선택했다. 자그마한 단독주택을 개조해 작업실과 숙성실, 저온저장고 등의 시설을 갖췄다. 그렇게 가게 문을 연 것이 5개월 전이다.
호피 홀리데이는 오전에 맥주를 만드는 클래스가 진행되고, 오후에는 수제맥주 펍으로 운영된다. 문을 연 첫날부터 알음알음 찾아온 손님들이 단골이 되어 이제는 직접 만든 맥주를 서로 나누며 취향을 알아가는 돈독한 사이로 거듭났다. 지역주민들이 즐겨 찾는 동네 사랑방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때때로 작은 음악회도 열린다. 핼러윈 파티와 프리마켓에 이어 12월에는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기획하고 있다.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브루어리를 만들겠다’는 김 대표는 앞으로 청년창업자들과 연대해 특색 있는 투어 코스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여행자를 위한 의성 가이드

2018년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촬영지인 의성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레트로 여행지로 알려졌다. 산으로 둘러싸인 동부지역과 넓은 평야가 있는 서부지역으로 나뉜다. 차를 이용하면 전국 주요 도시에서 대부분 3시간 이내에 닿는다.

확대보기의성펫월드
반려동물 복합문화시설, 의성펫월드
축구장 6개 크기의 규모에 놀이터와 교육장, 수영장과 방갈로, 펫카페와 오토캠핑장 등 반려동물과 보호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췄다.
확대보기낙단보
낙동강 낙조를 볼 수 있는 낙단보
상주시와 의성군 사이를 흐르는 낙동강에 설치된 다기능 보(洑). 주변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저녁이 되면 조명이 더해져 멋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확대보기민물매운탕
땀 뻘뻘, 얼큰한 민물매운탕
낙단보 주변에는 낙동강에서 잡은 민물고기 매운탕을 파는 곳이 여럿 있다. 가볍게 산책을 즐긴 다음, 저녁으로 얼큰한 매운탕을 맛보는 것도 괜찮다.
확대보기닭발
불향 가득한 닭발
의성전통시장은 닭발로 유명하다. 미리 양념해 초벌된 닭발을 연탄 화로에 구워 불향과 맛을 입힌다. 안계전통시장은 닭불고기 맛집이 몰려 있다.
확대보기의성한우
또 다른 명물, 의성한우
60여 년 전통의 남선옥을 필두로 질 좋은 한우를 저렴한 값에 맛볼 수 있는 식육식당이 많다. 봉양면에는 의성마늘소 먹거리타운이 조성돼 있다.
확대보기사촌마을
조선의 명재상 류성룡이 태어난 사촌마을
안동 김씨, 안동 권씨, 풍산 류씨의 집성촌으로, 한옥 민박을 하는 곳이 여럿이다. 마을 자랑인 만취당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보물 제1825호이다.
확대보기조문국 사적지
사라진 고대국가를 찾아서, 조문국 사적지
이름이 생소하지만 조문국은 2,000여 년 전 의성에 실존했던 고대국가다. 금성면에 당시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40여 기의 중대형 고분이 남아 있다.
확대보기고운사
템플스테이, 사찰음식 체험이 가능한 고운사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등운산 자락 깊은 곳에 있다. 수행자의 일상을 경험하는 템플스테이와 사찰음식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글·사진 이계선 기자

조회수 : 1,870기사작성일 : 20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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