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다시 뜨겁게
그렇게 도전은 계속된다
비즈컨 최병곤 대표

기술에 대한 갈증을 에너지로 삼아 20년을 달려온 최병곤 대표는 이제 막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섰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기술을 빼앗긴 채 보낸 2년. 그러나 그는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인간의 가장 놀라운 능력 중 하나는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만드는 것인데, 그 변화를 만드는 에너지가 바로 긍정의 힘이다. 최 대표의 이야기는 결핍을 어떻게 긍정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세상을 바꿔놓을 필살기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확대보기최병곤 대표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

소문을 듣고 가서였을까? 비즈컨(대표 최병곤)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비어 있는 자리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디스플레이 계측장비 개발 회사답게 사무실은 놀랄 만큼 깨끗했지만, 그래서인지 빈자리들이 더 휑하게 느껴졌다. 한때 스무 명 가까운 직원들이 사무실을 활기로 채웠을 테지만 지금은 채워진 자리보다 빈자리가 더 많다. 사무실 정중앙에 놓인 식각 설비용 광학 두께측정 데모 장비가 유독 눈에 띈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2018년 말 기술 유출 사건이 터진 이후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버틴 세월이 2년이다. 중국 진출에 물꼬가 터지면서 2019년 매출 예상액이 소극적으로 잡아도 50억 원이었다. 그러나 막 날아오르려던 순간에 예기치 못한 위기가 닥쳤고, 매출 공백이 장기간 이어졌다.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단행해 몸집을 줄이며 버텼다. 2019년 10월 오랜만에 중국 고객사에 장비 한 대를 납품하며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비즈컨은 올해 8월에 2호 장비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며 매출 목표를 15억 원으로 올려잡았다. 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버텨낸 최병곤 대표는 파생 상품까지 개발하고 신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바탕 하소연을 들을 줄 알았던 생각은 이쯤에서 접었다. “포기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하는 최 대표. 9월 22일 첫 공판을 앞두고 심난할 법도 한데, 그는 과거의 얘기보다는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이쯤 되니 상실로 읽혔던 사무실의 빈자리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찾으면 해답은 나온다”는 그에게 빈자리는 상실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영원한 엔지니어의 기술부심

최 대표의 자신감은 기술력에서 나온다.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에서 식각 엔지니어로 근무한 15년 경력, 그리고 2001년 첫 창업 이후 반도체·디스플레이 검사 장비를 개발해온 20년을 합치면 35년 세월이다. 기업 경영자로서 최 대표는 세계 최초,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경쟁을 즐기지 않는 그는 애초부터 남의 떡에는 관심이 없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을 개선해 더 싸게 만들기보다는 기존에 없던 기술을 개발해 니치 마켓을 만들어가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최 대표의 고집이 오히려 독이 됐던 게 첫 창업이다. 2001년 반도체 패턴 검사 장비를 주력으로 하는 회사를 창업했다. 당시 반도체 시장의 품질 기준이 높아지면서 반도체 관련 기업들은 검사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영업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최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고, 소프트웨어 개발 직원만 20명에 이를 정도로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경영에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계속 제품을 개발하는데도 이익이 나지 않았다. 회사를 알리기 위해 손해가 나더라도 제품 개발에 무리하게 투자한 것이 원인이었다.
“2005년부터 주변에서 조직을 슬림화해야 하지 않겠냐고 조언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오로지 기술로만 승부를 보자는 생각이어서 그 얘기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죠. 골든타임을 놓친 거예요. 회사 대표는 전체 시장을 봐야 하는데 연구, 영업, 재무, 관리까지 다 제 손에 쥐고 있었으니 그럴 수가 없었죠.”
결국 반도체 불황까지 겹친 2007년에 최 대표는 폐업을 결정했다. 폐업 후 1년간 지인의 회사 일을 도왔던 그는 마침 대학을 졸업한 아들과 함께 2009년부터 미국산 두께측정 장비를 국내에 소개하는 에이전트 회사를 운영했다. 아들이 대표를 맡고 그는 기술 컨설턴트로 일했다. 미국 제품을 국내 산업현장에 판매하면서 최 대표는 외산 제품이 국내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외산 장비를 대체할 식각 두께측정 장비를 개발하겠다는 욕심을 갖게 됐다.

확대보기초박막 강화유리 두께측정 장비비즈컨은 LCD와 OLED용 실시간 식각 두께측정 장비에 이어 초박막 강화유리 두께측정 장비를 개발하며 중국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축포를 터뜨린 순간에 닥친 배신 그리고 위기

최 대표의 기술 고집이 만들어낸 제품이 바로 2019년 5월에 기술 유출사건으로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됐던 실시간 식각 두께측정 장비다. LCD와 OLED 패널 생산에는 강산성 약품을 사용하는 식각 공정이 필수다. 이 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식각 두께인데, 식각 공정 담당자의 염원은 한 가지다. 공정을 멈추지 않고 식각 두께를 측정해 목표하는 두께를 정밀하게 실현하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비즈컨의 제품이 바로 이런 현장의 소리를 반영한 제품이다. 소프트웨어 기술에 과감하게 투자한 최 대표는 오랜 연구 끝에 2013년 식각 작업에 맞춰 센서를 자동 제어함으로써 공정 중에 실시간으로 두께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개발했다. 실시간 측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에 2시간 걸리던 식각 공정을 1시간 20분으로 크게 단축한 것은 물론이고, 강산성 화학물질의 사용을 감소시켜 작업환경 개선에도 크게 기여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이 제품이 판매되기까지 3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호황을 누리던 LCD 사업이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대기업조차 LCD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나선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까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던 찰나에 중국에서 첫 물꼬가 터졌다. 중국 최대 식각 기업의 부회장이 직접 회사를 찾아왔고, 시연을 거쳐 첫 장비를 출하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가능성을 본 최 대표는 2017년 개인사업자로 비즈컨을 설립했고, 제품을 써본 중국 고객사에서 20대를 구매하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국 내 식각 기업 5개사가 앞다퉈 장비를 구매하겠다고 구두계약까지 해놓은 시점에 일이 터졌다. 약속된 계약건만 최소 50억 원이었고, 상황에 따라서는 80억 원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흐름이었다. 2018년 말 광고 홍보를 위해 중국 출장을 간 직원으로부터 복제 제품이 버젓이 중국 현지 광고에 실려 있다는 연락을 받은 최 대표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중국 영업파트에서 일했던 조선족 직원과 중국 현지 대리점 사장, 소프트웨어 개발 직원 3명이 꾸민 일이었다. 한 달 간격을 두고 3명이 회사를 그만둘 때만 해도 최 대표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청천벽력이었어요. 더욱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대학교 후배로, 누구보다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에 대해 잘 아는 친구였어요. 회사가 문을 닫을 때까지 함께 일하지고 약속했었는데, 배신감이 엄청났죠. 복제 제품의 가격이 절반 이하이니 중국 고객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저희 제품에 눈길도 안 주더군요.”
중국 고객사들은 복제 제품 수준으로 가격을 내리라고 압박했지만 최 대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첫 창업 실패 이후 이윤이 남지 않는 장사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터였다.

기술 유출 아픔 견뎌내고 다시 비상

확대보기최병곤 대표 기술 유출로 인한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선 최병곤 대표. 회사의 영속성을 생각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2020년 9월 22일 공판이 결정되기까지 최 대표는 힘겨운 시간을 버텨냈다. 한국의 첨단기술이 해외에 유출된 심각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져 국정원에서 수사가 시작됐고, 곧바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구속됐다. 공판을 앞두고 있는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잘못한 게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후배를 보면서 엄청난 배신감이 들더군요. 오죽하면 엄벌해달라는 탄원서까지 냈겠습니까! 많은 회사들이 기술로 먹고삽니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걸 빼앗다니요. 저는 창업 이후 단 한 번도 남이 만든 시장을 기웃거린 적이 없습니다.”
사건이 중국 언론에 소개되면서 중국 고객사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대부분 상장사인 데다 공기업이기 때문에 범법 행위에 연루되고 싶지 않았던 고객사들이 다시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
재판을 준비하면서도 최 대표는 원가를 낮추기 위해 연구개발을 이어나갔고, 이윤을 확보할 방안을 찾아 복제품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가격을 낮췄다. 그 사이 파생 상품 개발도 완료했다. 폴더블폰의 핵심 소재인 초박막 강화유리(UTG : Ultra Thin Glass) 생산 공정에 적용할 수 있는 두께측정 장비를 개발해 이미 2대를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최 대표에게 기업 경영은 이제 더 이상 돈벌이가 아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습니다. 실없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가 갖고 있는 지식으로 죽기 전까지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다들 왜 그렇게 회사를 열심히 운영하느냐고 묻습니다. 돈을 벌려고 했다면 이미 그만뒀겠죠. 이제 회사는 저의 것이 아닙니다. 젊은 직원들이 뭘 믿고 회사에 들어왔겠습니까? 이 친구들이 은퇴할 때까지 영속성을 갖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걸 남김없이 다 쏟아내고 갈 겁니다.”
최 대표는 코로나19로 기업 경영자들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자신의 사업 테두리에서도 충분히 위기 극복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진짜 승부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태에서 시작된다. 최 대표의 진짜 경영 인생은 지금부터다.

임숙경 기자, 사진 김윤해 기자

조회수 : 1,383기사작성일 : 2020-10-07
기사 만족도 평가
별 개수를 클릭하여 기사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이 기사의 별점
평균 5점 / 2
  • 매우 불만족
  • 불만족
  • 보통
  • 만족
  • 매우 만족
별 5개 / 매우 만족

의견글 작성
  • (삭제 시 필요)
* 불건전한 내용이나 기사와 관련 없는 의견은 관리자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메뉴 열기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