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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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도시제조
양말과 함께해온 40년
대운섬유 & 서울도봉양말협동조합

집 안에서 가장 흔한 물건을 꼽으라면 양말은 꼭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이 양말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과거엔 섬유산업이 발달했던 대구나 서울에서 밀려나 도시 인근 지역 공장에서 만들겠지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가격이 워낙 저렴하니까 당연히 대부분 중국산 양말이려니 했다. 그런데 오해였다. 우리가 신는 양말의 대부분은 국산 양말이고, 전국 양말공장의 40%, 250개가 넘는 양말공장이 서울 도봉구에 분포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직원들이 사는 곳은 다른 지역인데 공장으로 일하러 출근하는 여느 공장 밀집 지역과 달리 도봉구 양말공장 직원들은 사는 곳도 일하는 곳도 다 같다는 것. 25년 전 강대훈 대표는 도봉구 창동에 양말공장을 마련했다. 사는 곳 역시 이곳이다. 도봉구 지역서 양말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6,000여 명에 달한다고 하니 이쯤 되면 양말공장이 왜 도시에 있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확대보기강대훈 대표

도봉구에 양말공장들이 들어서게 된 배경이 있나?
양말공장이 성업을 이루던 1970~1980년대에 전국을 호령하던 양말 브랜드들이 있다. 동산양말, 무등양말, 가정표양말, 길표양말, 용신양말 등이다. 이들 공장이 있는 주변은 국내 소매상인들과 무역상들로 늘 북적였다. 이 중에서 길표와 용신 등 큰 공장들이 도봉구에 위치해 있었다. 199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중국산 저가 제품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면서 수출길이 좁아졌고, 양말공장들도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때 공장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나와 인근에 소규모 공장을 차리면서 그 수가 많아졌다. 게다가 도봉 지역은 당시 상권이 형성되지 않았고, 임대료도 비교적 저렴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같다.

대표님도 도봉구에서 양말 제조를 시작하셨나?
열아홉 살에 장안사라는 양말 제조 공장에 취직했다. 장안사는 1970년대에 설립된 꽤 큰 양말 제조 회사다. 공장에 취직해 처음에는 청소부터 시작해서 실을 감는 단계를 지나 양말 짜는 요령을 배웠고, 나중에는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게 됐다. 장안사에서 몇 년간 열심히 일하던 중, 성실성이 엿보였는지 사장님이 기계를 물려주면서 공장을 차려보라고 권했다. 나름 자신 있었기에 독립해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녹록지 않았다. 첫 공장은 몇 개월 치 수금한 돈을 직원이 훔쳐 도망가는 바람에 문을 닫아야 했고, 두 번째도 이런저런 이유로 실패를 맛봤다. 그 후 아내의 친정이 있는 광주의 무등양말에 들어가 직장생활을 하다 서울로 올라와 도봉구에 대운섬유를 차린 것이 1997년이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양말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확대보기강대훈 대표둘둘 말린 실타래가 꼬이지 않아야 한 켤레의 양말이 만들어진다는 강대훈 대표

양말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양말 제조 과정은 크게 편직, 봉조, 마무리 가공으로 나뉜다. 양말은 직물이 아니라 뜨개질과 같은 편물이다. 원통형 편직기계가 실을 교차해 가며 짜 올리면 앞코가 뚫린 상태의 양말이 만들어진다. 예전엔 뒤꿈치까지 뚫린 곱창 형태의 양말이었는데, 기계가 좋아져 요즘은 뒤꿈치까지 만들어져 나온다. 이후 편직된 양말의 앞코 부분을 꿰매는 게 봉조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꿰매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자동 손봉조기가 개발되어 발가락 부분에 구멍이 잘 안 난다. 마지막 다림 과정을 거쳐 마무리된다. 납작한 발 형태의 목형에 양말을 끼우고 스팀을 이용해 고정한다. 기본 제조 과정 외에도 사람 손을 거치는 작업이 많아서 양말공장 주변에는 소일거리가 늘 많다.

확대보기원통형 직조기원통형 직조기의 수많은 바늘이 실을 뜨개질하듯 짜 올리면 하나의 양말이 탄생한다.

유통에 눈을 뜨다

서울도봉양말협동조합 대표를 맡고 있는데, 조합을 설립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들었다.
양말협동조합에 대한 구상은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이 계획을 앞당길 수밖에 없는 큰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초 운영하던 공장에 불이 나서 생산시설이 전소했다. 양말 편직기계만 24대 보유했으니 도봉구 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공장이었다. 아직도 트라우마가 굉장하다. 하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사회에 나와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기에 어려울 때 도와주는 이들이 많았다. 이 기회에 제조는 잠시 쉬고 양말협동조합을 조직해 직접 유통을 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만들어 온라인 유통을 하면서 새삼 유통에 재미를 느끼신다고.
평생 양말 제조라는 한 우물만 파오다가 유통을 해보니 신세계를 만난 것 같다. 품질만 좋으면 잘나가던 과거에는 만드는 것만도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더라. 어떤 사람은 좋은 물건도 제값을 못 받고, 어떤 사람은 품질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값을 받기도 한다. 최고급 국산 양말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직접 유통하기 시작하니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올 초 KBS2 TV 〈다큐멘터리 3일〉에 도봉구 양말공장이 방송된 이후에는 서울도봉양말협동조합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면서 주문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방송 이전에는 하루 매출이 50만~70만 원 선이었는데, 방송 이후 1,500만 원으로 급증했다. 방송 후 3주 동안은 2시간밖에 못 자면서 주문량을 소화했다. 방송의 위력을 절감했다. 지금도 하루 300만 원 매출을 유지하고 있고, 스마트스토어 누적방문객 수도 9만 명을 넘어섰다. 일손이 바빠지면서 추가 직원 채용도 계획하고 있다.

서울도봉양말협동조합은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대표님의 역할은?
현재는 마음이 맞는 7개의 공장 대표님들로 구성되어 있다. 정관과 회칙 등을 모두 정하고 정식 등록했다. 회원사들은 수익을 함께 나누는 것은 물론, 수익의 일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 모두 동의했다.
대표로서 협동조합을 더욱 활성화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중간 유통 단계 없이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고, 동대문을 비롯해 지방의 각 거점에 양말을 공급하는데, 요즘 제주도에 총판을 내달라는 문의 전화가 많이 온다. 조합이 자릴 잡으면 총판도 고려해 볼 생각이다.
또 구청이나 지역 관공서를 긴밀하게 오가며 양말공장 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현재 소음 등의 이유로 양말공장은 대부분 지하에 마련돼 있다. 그러다 보니 섬유 먼지들 때문에 환경이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 최근 서울시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공기정화장치를 설치했다. 공기정화장치는 분진과 소음을 모두 감소시켜준다. 또한 전기료가 크게 절감된다. 현재 양말공장에 50% 정도 설치된 상태이고, 앞으로 계속해서 늘려나갈 계획이다.
다행스럽게 도봉구가 양말특구로 인식이 되어 지자체에서도 관심 있게 봐준다. 조합의 대표로서 구청이나 관련 지자체들과의 관계에서 회원사들을 대변하는 것도 내 일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발로 뛰고 있다.

확대보기직원과 함께 제품을 살피는 강대훈 대표

다시 제조로

평생 손으로 편직기를 만지며 양말을 짜온 기억을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 지금은 양말 온·오프라인 판매로 바쁘다. 하지만 조합이 활성화되면 다시 편직기계를 들여 제조를 시작할 계획이다. 일반 편직기계보다 성능이 좋아진, 앞코까지 만들어지는 전자동 기계를 들여 생산성을 높일 계획이다. 물론 일반 기계보다 가격은 3배 이상 비싸지만 앞으로는 그것이 경쟁력이다. 또 그동안에는 그저 양말을 짜기 바빴는데, 음이온 처리를 하여 냄새가 안 나는 양말을 개발하는 등 부가가치를 높일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높여 다시 제조를 시작하는 시기는 2년 내로 생각하고 있다.

40년 넘게 양말을 만들면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쑥스러운 얘기지만 양말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예전에 일본 오사카에 있는 맥주박물관에 갔던 기억이 있다. 맥주의 제조 과정을 둘러보고 마지막엔 맥주도 한 잔 마시며 관련 상품을 살 수 있는데, 양말박물관도 있으면 재밌을 것 같았다. 이 때문은 아니지만 과거에 양말 일감이나 디자인을 받아 오던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1,000여 장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USB가 나와 쓸모는 없지만, 이 또한 양말을 만들어온 역사를 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양말공장에서 쓰는 기계는 이탈리아, 독일, 일본 제품이 많은데, 세계 최초로 양말 기계를 만든 곳은 평양이라더라. 평양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상용화 기계가 개발된 것이 우리나라로 건너온 것이라고 한다. 이런 재밌는 역사가 더해지면 박물관이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여력이 되면 초기 양말 제조기부터 첨단 제조기까지 수집을 할 생각이다.
한번은 경기도 포천으로 양말공장을 이전하려고도 했다. 불가능하더라. 분업화가 잘되어 있는 도봉구라야 가장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난다. 오늘도 내일도 이곳 도봉구에서는 동그란 편직기계에서 형형색색의 실타래가 바쁘게 돌아간다.

최진희 | 사진 김윤해

조회수 : 2,258기사작성일 :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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