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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이슈
잘 봐, 언니들 기술이다
펨테크

남녀 사이에 차별은 있을 수 없지만 신체적인 면에서는 분명 차이점이 있다. 여성은 생리와 임신, 출산이라는 과정을 겪는다. 그래서 남자와는 다른 건강관리가 필요하다. 최근 ‘여성의 건강’을 주제로 창업하는 ‘펨테크’ 스타트업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펨테크 기업은 약 1만여 개로 추정되고 있으며, 향후 이들에 대한 투자와 시장 규모 역시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확대보기여성 건강관리

여성을 위한 여성 주도의 기술

역사적으로 여성의 신체는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슬람 여성들이 착용하는 ‘부르카’로, 눈 부분만 망사로 처리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덮는 의상이다. 그 취지는 ‘신체 노출을 막아 외모가 아닌 내면을 중시하는 건강한 남녀관계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부르카는 매우 특별한 지역에서 이루어진 여성 억압이지만, 이보다 더 광범위하게 여성의 몸은 오랫동안 금기시되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여성의 생리였다. 주변 남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되며, ‘여자답게 알아서 깨끗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물론 이러한 인식도 상당히 달라졌지만, 여전히 그 잔재가 남아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IT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여성들만의 신체적, 건강상의 문제를 더 이상 억압하거나 금기시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 ‘female’ 과 기술을 의미하는 ‘technology’가 합쳐진 펨테크(femtech) 기업들이다.
펨테크의 주요 기술적 항목들을 살펴보면 이 용어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생리주기 관리, 생리대 등의 생리 케어, 임신, 불임, 산후조리, 모유수유 등의 임산부 건강, 폐경과 갱년기, 여성에게 좀 더 특화된 정신건강 문제, 건강한 성생활, 피임, 성적 건강성의 문제 등으로 나뉜다. 구체적인 상품으로 보면 친환경 생리대, 배란주기 측정 손목 밴드, 여성용 콘돔, 생리주기 측정 앱, 여성을 위한 원격 의료, 심장박동 측정 스마트 브라, 무선 착유기, 요실금 예방 운동 보조기기, 임신 시 사용하는 복부 부착형 진통 센서, 주파수를 조정하여 생리통을 완화하는 웨어러블 장치, 워킹맘을 위한 모유수유 배송 서비스 등이다.
이러한 펨테크의 영역이 생겨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펨테크’라는 말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2016년이다. 당시 생리주기를 알려주는 앱인 ‘클루(Clue)’를 개발한 독일 기업가 이다 틴(Ida Tin)이 처음으로 이 단어를 사용했다. 이다 틴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생리주기를 기록하고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았지만, 관련된 앱이나 도구를 찾을 수 없어 스스로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관련 사업 동향을 살펴보면서 자신의 사업 영역을 펨테크라고 규정했다.
펨테크는 ‘여성만을 위한 헬스케어’라는 의미도 있지만, ‘여성이 주도하는 헬스케어’라는 면도 있다. 즉, 어머니인 여성은 가족 전체의 건강 관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바로 이들이 최적화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펨테크라는 점이다. 실제로 자녀와 관련된 의료적 행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런 여성들에게 의사결정을 위한 도구와 지식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펨테크의 또 다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남녀 모두에게 생길 수 있는 질병이지만 여성에게 특별히 더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질병도 따로 있다. 예를 들어 여성 갱년기의 경우 에스트로겐 분비량이 줄어들어 골다공증, 심장질환의 위험성이 남성보다 높다. 또 알츠하이머병의 경우 전체 환자의 3분의 2가 여성이다. 따라서 여성에게 발병할 가능성이 큰 일반적인 질병에 대한 정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펨테크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확대보기생리 앱 ‘클루’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의 생리주기를 예측하고 다양한 옵션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기록할 수 있게 해주는 생리 앱 ‘클루’(출처 : helloclue.com)

펨테크 스타트업의 약진

펨테크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관련 시장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인 글로벌 마켓 인사이츠에 따르면, 2020년 27조 원 정도였던 세계 펨테크 시장 규모는 2027년에 77조 원이 넘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펨테크 기업 중에는 이미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유니콘 기업도 탄생했다. 미국에서 창업한 메이븐 클리닉(Maven Clinic)은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여성과 가족의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원격 의료 기술을 통해 출산, 입양, 임신, 대리모, 육아, 소아청소년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오로지 앱을 통해 편리하게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펨테크 스타트업은 수없이 많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기업 누보(Nuvo)는 임신부가 착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 벨트를 개발했다. 이 벨트는 임신부와 태아의 심박수를 측정해 문제가 생길 경우 즉시 병원에 연락을 해준다. 이외에도 임신부의 상태를 여러 방면에서 모니터링하고 환자의 최신 상태를 파악한다. 이러한 기술은 거동하기가 쉽지 않은 임신부의 불필요한 내원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펨테크라는 말을 창안했던 이다 틴이 개발, 운영하는 앱 ‘클루’는 과거의 생리 정보를 빅데이터 기술로 분석해 미래의 생리주기, 배란일을 예측해준다. 또 통증의 정도, 스트레스 지수, 피부 상태, 식욕 등의 다양한 옵션을 기록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맞춤형 조언을 얻을 수 있다. 현재 15가지 언어로 번역되어 150개국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사용자는 1,300만 명을 넘는다.
우리나라에도 대표적인 펨테크 기업이 있다. 지난해 연말 110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받은 해피문데이는 유기농 순면 생리대를 정기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와 함께 생리주기와 호르몬 변화를 측정하고 관리해주는 앱 서비스 ‘헤이문’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운로드 수는 45만 건이며, 누적 정기구독 배송 건수는 20만 건에 이른다. 생리대는 인조 및 합성섬유를 사용하지 않고 천연목화와 고가의 통기성 필름을 사용한다. 가격이 고가라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정기구독 서비스 방식을 취했다. 현재 생리대는 쿠웨이트,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에도 수출되고 있다. 해피문데이는 생리대를 넘어 질염 테스트기, 임신 테스트기, 탐폰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비대면으로 질염 및 성병을 자가 검사하는 키트 ‘체킷’을 만든 쓰리제이도 주목할 만한 기업이다. 여성들이 성병 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병원에 가서 일명 ‘굴욕 의자’에 앉아 다소간의 수치심을 느껴야만 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키트가 바로 ‘체킷’이다. 코로나19 PCR 검사처럼 스스로 검체를 채취한 후 앱을 통해 수거 신청을 하면 우체국 택배로 전달된 후 전문기관에서 검사를 하게 된다. 성병이 걸렸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처방전이 배송되어 스스로 병원에서 약을 구할 수 있다.
여성의 전반적인 건강을 관리하는 운동 앱도 펨테크의 영역에 속한다. 더패밀리랩은 ‘헤이마마’라는 앱으로 다양한 목적의 운동 플랜을 제공하고 있다. 목적에 따라 매일 2~3개의 운동 콘텐츠가 앱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여성들은 이를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특히 산후 운동 쪽으로 특화되어 있다. 출산이라는 엄청난 일을 겪은 여성들이 몸을 추스르고 다시 건강해지기 위한 운동이다.
여성용 콘돔 역시 펨테크의 일종이다. 세이브앤코는 유해성분을 배제한 콘돔을 생산하고 있다. 기존의 남성용 콘돔에는 각종 화학물질이 섞여 있기 때문에 피부에 바르는 것보다 무려 40배 이상의 위험성이 많다. 또한 향료나 색소, 사정지연제 등이 오히려 질염이나 성병의 위험성을 높이기도 한다. 세이브앤코의 제품은 총 50개국에서 4,000개의 스타트업이 참여한 제7회 세계 여성 스타트업 경진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확대보기유기농 순면 생리대해피문데이에서 개발한 유기농 순면 생리대. 누적 정기배송 20만 건이 넘어섰다.(출처 : 해피문데이)

확대보기성병 검사 키트 ‘체킷’‘체킷’은 PCR 검사처럼 혼자서 성병 검사를 할 수 있는 키트다.(출처 : 쓰리데이 홈페이지)

확대보기여성용 콘돔세이브앤코에서 개발한 여성용 콘돔. 각종 화학물질이 제거되어 여성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출처 : 세이브앤코 홈페이지)

여성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의 가능성

펨테크는 여전히 틈새 산업의 하나로 여겨질 수도 있다. 전체 건강 관련 시장에서 봤을 때 여성을 위한 기술의 비중은 여전히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한 기술을 뛰어넘어 본다면 시장성은 더 확대된다.
예를 들어 펨테크와 제약기업, 펨테크와 보험기업이 협력과 제휴를 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건강을 중심으로 하는 여성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또 하나의 플랫폼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처음엔 여성의 건강에서 시작했지만, 종국에는 ‘여성의 모든 것’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펨테크의 각종 분야를 담당하는 기업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또 여성의 각종 질병에 관한 새로운 치료법이나 관련 지식 등이 유통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여러모로 펨테크는 ‘여러 기술 중 하나의 범주’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펨테크 시장은 지금 예상되는 발전 경로보다 훨씬 더 빠르게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남훈

조회수 : 438기사작성일 : 202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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