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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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의 진화
당신이 빨래를 돌리는 사이
공간의 재구성, 카멜레존

아주 오래전부터 빨래에는 커뮤니티의 기능이 있었다. 마을에 관한 모든 정보와 가십은 빨래터에서 만들어지고 전파됐다. 때로 물물교환이나 중매가 이뤄지기도 했던 곳. 지금의 SNS 이상의 역할을 한 곳이 빨래터다. 빨래방과 카페를 결합한 론드리프로젝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1시간여 동안 누군가는 오롯이 자기에게만 집중하고, 또 누군가는 우연한 만남이 주는 긴장과 설렘을 즐기며, 어떤 이는 운 좋게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기도 한다. 편안함과 설렘이 공존하는 론드리프로젝트는 물리적인 공간만이 가진 힘과 가치를 믿는다.

확대보기빨래방카페 론드리프로젝트

만남에 가치를 부여하는 공간,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카멜레존

카멜레존은 시간에 따라 그 색깔을 바꾸거나 동시에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는 공간을 가리킨다. ‘카멜레온’과 ‘존(zone)’이 합쳐진 단어로, 재생, 협업 등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 공간으로 진화시키는 트렌드를 뜻한다.

확대보기매장 전경

확대보기론드리프로젝트 2호점 워시타운서울 서교동에 자리한 론드리프로젝트 2호점 워시타운. 고객의 99% 이상이 2030세대다.

커피향 그윽한 빨래방

“이제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이 만나는 비즈니스로 100조 기업이 나올 때가 됐다.” 독서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 트래바리에 투자를 결정한 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한 말이다. 모두가 온라인과 IT로 달려가고 있는 이때, 투자의 귀재가 대면 만남이 가진 가능성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온라인의 만남과 오프라인의 만남은 그 관계의 깊이가 다르다.” 빨래방과 카페를 결합한 공간을 통해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론드리프로젝트 이현덕 대표의 이 말은 손정의 회장이 왜 사람의 만남에 가치를 부여했는지에 대한 좋은 설명이 된다.
이 대표가 이태원 해방촌에 론드리프로젝트 1호점을 오픈한 것은 2015년. 2호점인 서울 서교동의 ‘워시타운’에서 만난 이 대표는 6년여의 실험을 통해 공간이 가진 가치와 힘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왜 진즉 이런 매장이 없었을까 의아할 만큼 론드리프로젝트의 발상은 단순하다. 빨래를 돌리는 1시간 남짓의 빈 시간을 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그 시작이다. 건축학 전공자로서 도시 재생에 관심이 많았던 이 대표는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버릴 것이 아니라 여유와 힐링으로 채우고, 때로는 즐거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일상적인 행위인 ‘빨래’라는 핵심 콘텐츠는 지역 주민을 모으고 결합하는 매개체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론드리프로젝트 매장은 세탁기가 놓여 있다는 것 외에도 다른 카페와는 공간의 구성과 질감이 다르다. 6~1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매장 한가운데의 라운지 테이블은 론드리프로젝트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이곳에서 스터디나 회의가 진행되기도 하고, 자주 카페를 드나들면서 안면이 익은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며 대화를 트기도 한다. 코로나19 전에는 플리마켓이나 전시회, 영화제 등도 진행했었다. 실제로 이 대표는 단골 고객이었던 출판디자이너와 함께 책을 내기도 했고, 한 젊은 뮤지션은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디자이너에게 앨범 재킷 디자인을 맡기기도 했다.
론드리프로젝트 멤버십 고객의 99% 이상이 2030세대이고, 그 가운데 70%가 여성이다. 모든 유통 플랫폼들이 타깃으로 하는 소비층이다. 이들을 1시간 이상 붙잡아둘 수 있는 것은 론드리프로젝트만이 가진 장점이다.

확대보기라운지 공간회의와 스터디 등의 만남이 이뤄지는 라운지 공간. 지역 사랑방 역할을 하는 론드리프로젝트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

론드리프로젝트가 언론에 등장해 유명세를 탄 후 비슷한 매장이 국내에 10여 곳 생겼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은 2곳 정도. 단순히 카페와 빨래방을 결합하기만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덤벼들었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이 대표는 단순해 보이지만 상당한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고객들은 빨래가 돌아가는 빈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서 론드리프로젝트를 찾기도 하지만, 다른 곳보다 커피가 맛있어서, 공간이 주는 느낌이 편안해서 찾는다. 이 대표가 커피에 진심이었던 만큼 이곳 커피는 맛있다고 입소문이 나 있다.
실제로 해방촌 1호점 단골 손님이 200m 떨어진 거리에 비슷한 매장을 오픈했지만, 호기심으로 떠났던 고객들이 다시 돌아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지 기능적인 차별화만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과 달리 현실의 물리적인 공간에서는 공기를 감싸는 냄새와 소리,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각도, 공기의 질감에 따라 공간의 느낌이 달라진다. 이 미묘한 차이를 가르는 것은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공간에 대한 ‘진심’ 이다.
코로나19로 대면 만남이 어려워지면서 다른 소상공인들과 마찬가지로 이 대표도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새로운 실험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서울 등촌동의 청년임대주택 센터스퀘어 라운지에 3호점을 냈다. 론드리프로젝트의 커뮤니티 관리 능력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고급 세제 브랜드를 소개하는 O2O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도 타진 중이다. 우수한 제품을 보유하고도 판로 개척이 어려운 세제 스타트업의 제품을 구독의 형태로 한 달에 한 브랜드를 선정해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진열기간이 끝난 제품은 론드리프로젝트 홈페이지에서 판매한다. 제품 설명과 상품평만 보고 구매해야 하는 온라인 쇼핑몰과 달리 직접 세제를 써보고 구매할 수 있어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몇십만 명의 친구를 만들 수도 있지만, 과연 그들을 제대로 신뢰할 수 있을까요? 만나서 직접 눈빛을 교환하고 한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눴던 관계는 온라인으로만 만나는 관계와 확실히 다릅니다.”
이 대표는 스타벅스처럼 론드리프로젝트가 동네에 꼭 하나씩은 필요한 공간이 되기를 꿈꾼다.

확대보기우수 세제 진열매달 국내 스타트업의 우수 세제를 선정해 구독의 형태로 진열한다. 직접 사용해보고 구매할 수 있어 고객들의 호응이 높다.

확대보기이현덕 대표빨래라는 핵심 콘텐츠를 매개로 지역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 이현덕 대표

임숙경 | 사진 김성헌

조회수 : 893기사작성일 : 202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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