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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의 진화
책과 책 사이의 여백
인생 책을 만나는 통로, 북큐레이션 서점

사라졌던 동네서점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온 게 아니라 새로 생겨난 것들이다. 단순히 책을 판매하던 예전 서점의 자리는 개성이 뚜렷한 공간들로 채워지고 있다. 서점 주인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독립서점부터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가 흐르는 복합문화공간에 이르기까지, 이제 서점은 취향을 즐기고 나누는 곳이 됐다. 어쩌다 산책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독특한 실험을 하고 있다. 콘텐츠들 사이에 여백으로서의 ‘공간’을 배치하고, 그 공간에 계절을 담았다. 계절별로 주제를 선정해 책과 음료, 제품을 큐레이션해 선보이는 이곳에서 책은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다. 책에 압도당하지 않고 흘러가는 무용한 시간 속에 책을 살짝 끼워 넣을 수 있는 곳이다.

어쩌다 산책 × 어쩌다 주식회사

확대보기북큐레이션 서점 어쩌다 산책

계절의 흐름이 읽히는 책방

온라인 서점은 여전히 편리하다. 원하는 책을 저렴하게 주문해 바로 당일 받을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취향을 읽고 책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막연하게 무언가를 읽고 싶어 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온라인 서점은 불편하고 피곤하다. 책을 고르다가 수많은 정보와 활자에 지치고 만다. 대형 서점도 마찬가지. 서가에 빽빽이 꽂힌 책들 사이에서 방황하다 보면 소득 없이 기만 빨리고 돌아오기 일쑤다.
북큐레이션 서점은 이런 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책의 물성을 경험하고, 적절하게 선정된 책 중에서 우연히 원하는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대학로에 위치한 어쩌다 산책은 여기에 ‘공간’과 ‘계절’이라는 콘텐츠를 보탠 북카페다. ‘몸과 마음의 산책을 위한 공간’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동네서점이나 일반 독립서점과 달리 공간에 전체적으로 여백이 많다.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서점을 상상했다면 오히려 비어 있는 서가에 실망할 수도 있다. 책과 책 사이의 여백에는 책 한 권 한 권에 눈길이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주인장의 마음이 오롯이 담겼다. 서가에 분류 푯말이 없는 것도 특이하다. 원하는 책에 직진으로 다가가기보다 여유롭게 산책하면서 책을 발견하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책을 더 자세히, 더 많이 보게 된다. 집어 든 책 옆에 놓인 또 다른 책이 궁금해진다. 그런데도 전혀 피곤하지가 않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은 매혹’임을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느끼게 된다.
지하에 위치하고 있지만 지하라는 공간의 단점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모든 공간이 중앙의 정원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색다른 개방감을 선사한다. 이 정원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어쩌다 산책은 계절에 맞춰 책을 큐레이션해 소개하는 기획전 형태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주제에 맞춰 책뿐만 아니라 음료와 팝업 제품을 함께 기획해 선보인다. 물론 이런 체험은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 안에서만 가능하다.

확대보기서점 내 의자

확대보기어쩌다 산책 중앙의 정원중앙의 정원을 중심으로 전체 공간이 하나의 공간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색다른 개방감을 선사한다.

확대보기책 읽는 시민어쩌다 산책의 공간에는 여백이 많다. 산책하듯 둘러보다 우연히 발견한 책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지속가능한 책방을 위한 실험

올봄의 주제는 ‘시작’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봄이라는 계절에 맞춰 ‘청춘’으로 기획됐다.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 장 그르니에의 《섬》 등이 선정됐다. 이주영 매니저는 “청춘은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부딪히고 상처 받는다”며, “이런 복합적인 고민들을 북큐레이션에서 풀어냈고, 카페에서는 그런 의미를 담은 디저트와 시그니처 음료를 소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전에 다채로움을 더하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팀과 협업도 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태고의 시간’을 주제로 연 기획전에서는 향기 브랜드숍 ‘수토메 아포테케리’와 협업해 한국 화가들을 모티브로 한 여덟 개의 향을 선보였고, 카페에서는 ‘서울 브루어리’와 협업해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에서 영감을 받은 ‘Pale blue dot’ 맥주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혜화동에 위치한 와인 보틀숍 ‘헌술방’과 협업해 와인에 어울리는 시집과 페어링했던 ‘헌술줄게, 시집다오’ 기획전은 방문객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었다.
이주영 매니저는 “어쩌다 산책은 새로운 책방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라고 설명했다. 어쩌다 산책은 동네책방 ‘어쩌다 책방’에서 출발했다. ‘이달의 작가’를 선정해 작가의 추천 도서를 한 달간 전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어쩌다 책방의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하나의 공간에서 완성된 사업을 하기 위해 기획한 공간이 바로 어쩌다 산책이다.
이 매니저는 어쩌다 산책이 작은 독립서점을 지향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독립출판물을 판매하지 않고 소규모 책방을 지향하지도 않습니다. 대중적인 책방으로서 대형 서점과는 다른 도서판매 시장을 만들려고 합니다. 사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매출과 수익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지금까지의 운영 노하우를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책방을 지역에 만들고 싶습니다.”
온라인 서점과 대형 서점에 밀려 사라진 동네책방의 부활은 반갑다. 어떤 형태의 책방이든 중요한 것은 자꾸 가고 싶어지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봄날의 어쩌다 산책을 산책하고 난 뒤 문득 여름날의 어쩌다 산책이 궁금해졌다. 이들의 새로운 실험 결과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확대보기어쩌다 산책 서가서가에는 책이 빽빽이 꽂혀 있지 않다. 심혈을 기울여 고른 책 한 권 한 권에 눈길이 닿도록 하기 위해서다.

확대보기큐레이션 책어쩌다 산책은 계절마다 주제를 정해 책과 음료, 제품을 큐레이션해서 선보이는 기획전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확대보기헌술방 협업 와인지난해 여름에는 와인 보틀숍 ‘헌술방’과 협업해 와인에 어울리는 시집과 페어링했던 ‘헌술줄게, 시집다오’ 기획전을 열어 높은 호응을 얻었다.

임숙경 | 사진 김성헌

조회수 : 2,309기사작성일 : 202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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