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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
잘 먹고 사는 일 - 숟가락으로부터

누구나 밥을 먹고 산다. 먹는다는 행위는 지극히 원초적이고 사적이며 또 보편적 일상인 것이다. 그 안에는 분명 달고, 짜고, 고소한 행복의 맛이 깃들어 있는 터. 사는 맛이란 음미하기 나름이다.

확대보기여러 크기의 밥그릇과 그 위에 놓인 숟가락

숟가락을 대하는 이토록 진지한 태도

오랜 단골 식당이 있다. 한식 메뉴 몇 가지가 전부인 작고 소박한 식당이다. 어느 이른 아침 그곳을 지나는데, 통창 너머로 주인장 모습이 보이기에 인사나 할 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는 숟가락을 닦고 있었다. 깨끗이 씻어 말린 숟가락 한 바구니와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주전자를 테이블에 놓고서. 과정은 이러했다. 숟가락 손잡이를 잡고 입이 닿는 둥근 부분에 김을 충분히 쐬어준 후 부드러운 리넨으로 살살 닦아내는 것이다. 고가의 와인 잔 다루듯 말이다. 얼룩 하나 남지 않은 숟가락은 반들반들 윤이 났다. 그는 매일매일 같은 방법으로 모든 숟가락을 닦는다고 했다. 인생에 있어 정말 소중한 경험 중 하나가 음식을 먹는 일이고, 음식을 먹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가 숟가락이라 여겨서 그렇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그때 꽤 긴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머지 이야기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숟가락을 대하는 주인장의 진지한 태도와 리드미컬한 손놀림만은 사진처럼 뇌리에 박혀 있다.

일단 밥으로 통하는 한국 사람들

숟가락은 극도로 단순한 형태다. 음식을 떠 담을 수 있도록 둥글고 오목한 끝과 길게 이어지는 손잡이가 전부다. 군더더기가 없다. 이 소소한 도구는 우리나라의 식문화를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만큼은 거대하다. 요즘은 젓가락 또는 포크와 나이프만으로 해결되는 음식도 많지만 여전히 한식에는 숟가락이 필수로 놓인다. 한식의 중심은 뭐니 뭐니 해도 밥. 모든 반찬은 밥을 먹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일단 밥으로 통하지 않는가. ‘언제 밥 한번 먹자’, ‘밥 먹었냐’는 인사부터, ‘식구’라는 단어가 ‘먹을 식(食)’에 ‘입 구(口)’ 자로 이루어진 것만 봐도 밥은 우리 삶의 중심이라 할 만하다. 한식에서는 이토록 중요한 밥 옆에 국이 세트처럼 놓이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숟가락 사랑은 이와 관련이 있다. 동양 대부분의 나라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하더라도 대부분은 젓가락이 중심이다. 우리나라처럼 숟가락을 애용하는 나라는 드물다. 이런 문화 덕분에 숟가락은 식사를 의미하는 단어로 확장되어 쓰이기도 한다. ‘숟가락을 든다’를 식사를 시작한다는 뜻으로, ‘숟가락을 놓았다’를 식사를 끝냈다는 뜻으로 표현하니, 재밌다.

확대보기쌀밥그릇 위의 한숟가락의 밥

오늘보다 내일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우리는 때가 되면 숟가락을 든다. 격무에 치이고 피곤에 찌들어 만사가 귀찮은 순간에도 참을성 없는 뱃속이 배고프다는 신호를 어김없이 보내는 까닭이다. 급한 대로 대충 허기를 달래다 보면 ‘살기 위해 먹는다’는 생각에 목이 꽉 멘다. 다행스럽게도 세상살이가 매 순간 그렇게 팍팍한 건 아니어서 온갖 맛있다는 음식을 탐닉할 때면 먹는 것이 삶의 유일한 이유이자 쾌락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먹는다는 것은 일상의 아이러니컬한 불균형을 조율해주는 행위라고도 여길 수 있겠다. 바쁜 와중에도 밥을 먹는 그 순간만큼은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여유로운 미식 경험은 다시 힘을 내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익혔다.
집에서 밥 먹을 일이 많은 요즘이다. 누군가는 애쓴 자신을 위한 보상으로 호사스러운 식탁을, 누군가는 허물어지는 몸매 앞에서 깃털 같은 식탁을 차리고 있을 테다. 어떤 모습이건 생을 이어주는 귀한 행위임은 마찬가지다. ‘저녁에 뭘 먹을까’ 고민하다 문득 우리 집 숟가락을 떠올려본다. 그리 정성스럽게 대한 기억이 없다. 이참에 나도 숟가락에 윤을 내볼까 싶다. 남은 날들을 더 잘 먹고 살아보겠다는 다짐 같은 거랄까. 아주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말이다.

정은주

조회수 : 364기사작성일 : 202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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