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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
화분을 돌보다, 식물에 대한 고찰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숲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집 안에 식물을 들이기도 한다. 느리지만 꾸준한 자연의 리듬, 그 덕분에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속도를 늦추어도 조바심이 나질 않는다.

확대보기집 안의 화분들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아름다움

“어머, 나 나이 들었나봐.” 점심을 먹고 함께 산책을 하던 지인이 큰일이라도 난 듯이 내뱉은 말이다. 이유인즉슨 최근 들어 갑자기 꽃이 그렇게 예뻐 보인다는 거다. 길가에 핀 꽃만 봐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가 하면, 아무렇게나 자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단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마치 내 마음을 읊는 것 같아 “아, 나도 요즘 그래” 하며 고개를 한참 끄덕거렸다.
흔히 ‘나이 들수록 자연이 좋아진다’고들 이야기한다. 과학적 근거는 없는 듯하나 경험에 비추어보면 맞는 말인 것도 같다. 어릴 적 내 기억 속 부모님은 자연을 정말 사랑했다. 산책길에 핀 갖가지 꽃과 풀, 나무를 볼 때면 “이것 좀 봐라. 어쩜 이렇게 예쁘냐” 하며 진심 어린 감탄사를 터뜨리곤 했다. 매일 보는 풍경에, 다 아는 꽃이고 나무인데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 당시의 나는 도무지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내가 그즈음의 나이가 되고 보니 알겠다. 일부러 꽃구경을 가고, 꽃 사진을 수십 장씩 찍고 있는 내가 아직은 좀 낯설지만, 희한하게 점점 자연이 좋아지는 게 사실이다. 이유를 더듬어보다 문득, ‘꽃다운 시절에 대한 향수 같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떨어져 보아야 숲이 얼마나 푸른지 아는 것처럼 말이다. 혹은 주변을 돌아볼 약간의 여유가 생겨서일까. 어쨌건 그동안 눈에 띄지 않던 것을 깊이 바라볼 수 있게 된 건 다행이다.

가까이 더 가까이 바라보고 싶어서

그렇게 나는 식집사가 되었다. 길어진 집콕으로 #식멍 #식집사라는 해시태그가 뜬다더니, 식물과 화분 몇 개를 구입하면서 역시나 그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덕분에 요즘 나의 아침은 식물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단 햇빛이 들도록 커튼을 열어젖히고, 필요한 경우 화분에 물을 준다. 작은 잎에 내려앉은 먼지를 살살 닦아내기도 하는데,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해 잎들을 보살피고 있노라면 잡생각이 말끔히 사라진다. 때로는 마치 수양하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이 과정이 조금 귀찮게 느껴지는 날도 있지만, 작디작은 자연이 주는 안정감과 고요함의 매력이 워낙 커서 이 정도 수고로움은 기꺼이 감수하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식집사는커녕 식물 킬러에 가까웠다. 빈약한 관심만큼이나 잘 키우는 데도 영 소질이 없었다. 제때 물을 주었는지 헷갈리는 일이 부지기수. 때로는 과해서, 때로는 부족해서 결국엔 고꾸라져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번에는 미리 공부를 좀 했다. 식물의 세계가 이토록 방대할 줄이야. 흙만 해도 배양토, 마사토, 난석 등 종류가 다양하고, 식물에 따라 알맞은 비율도 다르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다. 당연히 필요로 하는 물의 양도, 햇빛의 세기도 제각각인데,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라 이는 경험치가 중요하다. 요즘은 병들고 아픈 반려식물을 치료해주는 화분병원도 있다니, 초보 식집사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연이 주는 조용하고도 강력한 위로

식집사가 된 후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을 꼽자면, 바로 자연을 향한 시선이다. 신기하게도 항상 걷던 익숙한 길목이 확연히 새로워 보인다. 특히나 요즘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날들의 연속. 며칠 전만 해도 띄엄띄엄 보이던 노란 민들레가 오늘은 무리지어 피어 있다. 흐드러진 풀은 색이 좀 짙어진 듯하고, 새끼손톱만 한 싹도 새로 돋아났다. 머지않아 잎이 벌어지고 꽃도 모습을 드러낼 터. 흔하고 사소한 것들이 비범하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처럼 자연의 속도를 지켜보는 과정은 일상에 꽤나 큰 위로가 된다. 이 시대의 속도전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더디지만 꾸준하게 줄기를 뻗어 올리는 자연은 각자의 페이스를 지키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오늘 아침에도 눈뜨자마자 식물들을 차례로 살폈다. 미세하게나마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듯 보인다. 중요한 건 무탈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 느려도 제대로, 이 속도로도 괜찮다!

정은주

조회수 : 1,154기사작성일 : 202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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