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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의 비밀
인도네시아의 알리바바 토코피디아
토코피디아

〈스타트업 랭킹〉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인도네시아에는 2,200여 개의 스타트업이 포진해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숫자다. 2020년 상반기에 전체 동남아시아에 투자된 스타트업 투자의 74%가 인도네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의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돋보이는 회사가 바로 유니콘 기업인 토코피디아(tokopedia)다. 최근 데카콘 기업인 고젝과 합병하면서 더 큰 성장을 바라보고 있다.

확대보기토코피디아 로고 / 브랜드 홍보 대사 BTS브랜드 홍보 대사로 발탁된 BTS는 토코피디아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출처 : 토코피디아 유튜브 채널)

2019년 10월 BTS가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한 회사의 브랜드 홍보 대사로 발탁되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 행사로 인해 회사의 채널은 100만 번 이상 스트리밍됐고, 회사의 웹사이트에 2시간 동안 500만 명이 방문했다. 토코피디아의 이야기다.
토코피디아는 ‘인도네시아의 알리바바’라고 불리는 전자상거래 회사다. 판매자는 400만 명에 이르고 이들이 판매하는 제품은 100만 가지에 이른다. 여기에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을 낼 수 있으며 돈도 빌릴 수 있는 핀테크 회사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월 유효고객은 무려 800만 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차량 공유 플랫폼인 고젝(Go-Jek)과 합병하면서 ‘고투(GoTo)’ 그룹이 됐다. 이는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합병이었다. 합병된 회사의 CEO 역시 토코피디아의 창업자가 맡기로 했다. 합병된 후 기업의 가치는 20조 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흙수저 청년의 인생 역전

토코피디아의 성공이 주목받는 것은 창립자인 윌리엄 타누위자야가 흙수저였기 때문이다. 타누위자야는 인도네시아의 한 지방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하고 싶었지만 경제적 여유는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20살이 되던 해 대학에 합격하자 편도로 배편을 끊어주면서 가난한 시골 마을을 떠나 넓은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타누위자야는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인터넷 카페에서 일했지만 하루 12시간 일해서 그가 벌 수 있었던 일당은 1만 루피아(약 780원)에 불과했다. 그렇게 힘들게 대학에서 IT를 전공하면서 그는 종종 영세 사업자들의 홈페이지 개발을 도와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 당시 인터넷에 푹 빠져 살던 타누위자야는 한 가지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같은 물건인데 자카르타 등의 대도시에서 팔리는 가격과 시골에서 팔리는 가격에 꽤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문제는 시골에서 팔리는 가격이 좀 더 비싸다는 점. 훗날 타누위자야는 당시의 고민이 바로 창업의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가격을 누릴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타누위자야는 대학 졸업 후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중 드디어 27세에 창업을 시도했다. 인도네시아어로 상점을 의미하는 ‘토코’와 백과사전을 의미하는 ‘피디아’를 합쳐 토코피디아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확대보기토코피디아의 창업자 윌리엄 타누위자야토코피디아의 창업자인 윌리엄 타누위자야. 가난한 흙수저 청년이었지만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출처 : 위키피디아)

타누위자야는 대학 졸업 후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가 27세에 친구였던 레온티누스 알파 에디슨과 함께 창업의 여정에 나섰다. 하지만 가난한 대학생 출신의 평범한 직장인에게 거금을 투자할 사람은 없었다.
타누위자야와 그의 친구는 계속되는 투자 거절에 좌절했지만, 한 인도네시아 투자사로부터 1억1,000만 원 정도의 투자금을 받으면서 사업을 본격화했다. 2011년 일본 벤처캐피털과 한국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2014년에는 일본 소프트뱅크사로부터 1억 달러의 투자를 받으면서 ‘동남아의 뜨는 별’이 되기 시작했다. 토코피디아는 결국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제 토코피디아는 고젝과의 인수합병을 마친 후 ‘고투그룹’으로 사명을 바꾸고 인도네시아 GDP의 2%를 차지하는 대형 그룹이 되었다. 타누위자야는 향후 고투그룹이 인도네시아 GDP의 최대 10%를 차지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밝히고 있다.

과감한 무료 전략과 당일 배송으로 시장 접수

토코피디아의 성공은 다양한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B2C가 아닌 C2C 모델을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최대한 많은 상점을 끌어들일 필요도 있었고, 이들이 서로 경쟁하면 소비자들은 더 싼 가격을 선택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토코피디아는 ‘무료 전략’을 실행했다. 소규모 판매자들에게는 별도의 수수료를 받지 않는 무료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일부 프리미엄 서비스를 원하는 큰 규모의 상점에게만 별도의 비용을 받았다. 이러한 무료 전략은 대히트였다. 서비스를 시작한 후 6개월 만에 2,500개의 상점이 입점했고 4만 개가 넘는 제품이 등록됐다. 이후에는 기존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더욱 고도화하면서 매출을 개선했다.스마트폰의 보급도 결정적인 성공 이유였다. 토코피디아의 창업 초창기인 2000년대 후반에 전체 인도네시아의 인터넷 보급률은 0.1%에 불과했다. 온라인 상점을 표방하는 기업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하지만 곧 불어닥친 스마트폰 열풍은 토코피디아의 인기를 수직 상승시켰다. 합병 이전 토코피디아 매출의 75%가 스마트폰에서 이뤄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확대보기토코피디아 사옥

인도네시아의 교통체증과 대중교통의 미비도 한몫했다. 다수의 동남아 국가들이 그렇듯 인도네시아도 대중교통보다는 오토바이에 의존하는 인구가 많다. 그러다 보니 ‘1인 1오토바이’가 생활화되어 있다. 토코피디아는 이런 교통 인프라를 활용해 ‘당일배송’이라는 획기적인 서비스를 제공했고, 소비자들은 놀랍도록 빠른 배송 시스템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장기적 관점에서 딥러닝 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는 점도 손꼽을 수 있다. AI가 판매 경향을 철저하게 분석해 적극적인 마케팅 방안을 짜낼 수 있었다.
토코피디아는 회사가 어느 정도의 성공 궤도에 오르자 그때부터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교육 비영리 단체와 협력해 기부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미지는 오늘날 토코피디아의 브랜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창업을 결심하려던 당시 창업자인 타누위자야는 한 사업가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말했을 때 이런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 일로 인생을 낭비하지 말아라.” 만약 그때 타누위자야가 창업을 포기했다면 오늘날 20조 원 가치의 ‘고투그룹’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자란 시골마을 사람들도 같은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하고 싶은 그 소중한 마음,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던 열정이 결국 가장 궁극적인 성공의 요인이 아니었을까?

이남훈

조회수 : 329기사작성일 : 202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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