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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요구하는 전문가, 화이트해커
라온화이트햇㈜ 기태현 이사

 

43년 인생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는 ‘컴퓨터’
기태현 이사의 프로필을 간단히 말하자면 나이 43세, 잘나가는 보안기업의 이사, 한 가정의 가장이다. 여기에 또 하나 붙는 특별한 그의 직업은 화이트해커. 그는 단순 해커가 아닌 전문 직업인으로서 국내 지식정보 분야의 ICT보안 트렌드를 이끄는 전문가다. 굳이 해커 경력을 따진다면 25년은 족히 되며, 그간 기업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지난 2006년부터 정보보호 컨설팅을 시작해 2015년에는 미래부 지식정보 컨설팅 전문업협의회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국내 해커계의 대부(?)다.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곳은 국내 최정예 해커로 구성된 해커 그룹인 화이트햇센터. 이곳에서 그는 해킹방어 요령 교육과 솔루션 개발 및 마케팅 전체를 아우른다. 화이트햇센터는 지난 5월 ‘일본 IT주간 2016’에 참가해 지문인증을 통한 스마트폰 결제 방식을 선보인 라온시큐어㈜의 자회사인 라온화이트햇㈜이 운영하는 교육센터. 기 이사는 자사 연구인력 교육은 물론이고 화이트해커 양성과 공공기관 및 기업 보안담당자 교육을 실시한다.
그의 생활방식은 좀 독특하다. 외부 교육이 없는 한, 그의 일과는 24시간 사내에서 이루어진다. 낮엔 교육과 개발 업무를 하지만 밤늦게까지 그의 눈과 손은 컴퓨터에 집중된다. 술, 담배를 즐기지 않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는 직장의 이사이기 전에 ‘화이트해커’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아무리 해커라고 할지라도 하필이면 한밤중에 취미생활(?)을 즐기냐고 묻겠지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전 세계 인터넷망을 서핑하고 집중하려면 인터넷 네트워크 속도 면에서 낮시간보다는 심야시간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직책과 나이를 감안할 때 그의 이같은 생활에 대해 같은 직장 내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Why?’라는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있지만, 그가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컴퓨터 덕후입니다. 제가 43년 살아오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존재는 가족도 친구도 아니고 바로 컴퓨터입니다. 해커는 내 취미이자 직업이니 긍정적으로 본다면 저는 일에 올인하는 사람인거죠. 저에게는 이게 공부입니다. 해킹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보안 솔루션을 개발해 기업과 사회에 일익을 기하는 일이라 보람도 크거든요.”

열두 살에 빠져든 컴퓨터, 학비 벌며 전문가로 성장
기 이사가 컴퓨터와 인연을 맺은 것은 30년 전인 1986년. 초등학교 5학년 때 ‘애플2’를 만났다. 그때부터 컴퓨터는 그와 떨어질 수 없는 물건이 됐다. 컴퓨터 세상에 빠져들면서 용산전자상가는 청소년기에 그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고등학교 시절엔 PC조립은 물론이고 게임용 베이직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학에서는 당연히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전국 규모의 해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돈벌이나 악의로서가 아닌 마니아의 즐거움으로 해커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이로인해 허구한 날 집에도 안 들어가고 동료들과 어울려 보냈다. 그때 역시 밤은 더없이 좋은 해커의 시간이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국내에서 ‘해커’라는 용어는 이쪽 계통의 마니아들이 아니면 모르는 말이었고, 해킹을 불법의 영역으로 관리하지도 않았다.
그 무렵,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후 기간을 연장하거나, 전화기 신호 조절로 공짜 전화를 하는 수준의 해커 능력을 갖추었을 정도였다.
취미로 시작해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전문가 수준으로 발전한 그의 컴퓨터 능력은 대학원에서 산업공학 석·박사를 마칠 때까지 경제적으로도 위력을 발휘했다. 대학 입학금 외에는 모든 교육비를 스스로 벌어서 해결했다. 학생 신분이었지만 컴퓨터 실력이 뛰어나다 보니 수입이 직장인 수준이었던 것. 학교 공부를 마친 후에도 그는 변함없이 컴퓨터와 함께했다.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에서 6년간 전문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병역특례도 마쳤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혼도 했지만, 밤낮없이 컴퓨터만 끼고 살면서 화이트해커의 세계에 빠져든 그는 남편과 아빠 역할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아내로부터 “이혼하자”는 얘기를 두 번씩이나 듣기도 했다. 남다른 길을 걸어온 자신의 삶에 대해 기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결혼 후 가족들에게는 좀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죠.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뭐든지 미쳐서 파고들어야 성과를 낼 수 있잖아요. 제가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보안전문가로서의 화이트해커 기태현의 오늘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컴퓨터와 하나가 된 제 삶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 아닐까요?”

화이트해커 양성, 시대적 요청이자 매우 중요한 일
우리나라는 미국, 러시아와 함께 컴퓨터 암호화 표준 솔루션을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해커들의 능력도 뛰어난 수준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 이사는 한국인만의 기질, 즉 뭐든지 빨리 배우고 시키는 대로만 하지 않는 창의력이 그 이유라고 설명한다. 또 그는 화이트해커의 양성은 시대적 요청이나 다름없기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이버사령부 K-쉴드 BOB 프로그램 등을 통해 보안전문 인력과 청년 화이트해커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는 기 이사.
그는 여전히 자신은 덕후 중의 한 사람으로 ‘데브피아(devpia)’, ‘시큐리티플러스’ 같은 해커동호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해커가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사회공헌이라는 입장이다. 라온화이트햇 이사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도 매우 막중하단다.
“솔루션 개발 및 판매도 제가 해야 할 일이죠. 지금은 모바일 솔루션에 주력하지만, 앞으로는 사물인터넷 컨설팅에도 뛰어들어 통합 솔루션 구축을 주도하는 회사로 이끌 생각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보안 솔루션은 기업의 보안 차원을 넘어 크게는 국가적인 경쟁력이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습니다.”
그가 ‘화이트해커’라는 전문가로서의 모습을 뛰어넘어 정보화시대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박창수 전문기자 사진 김성헌 객원사진기자​

조회수 : 3,744기사작성일 :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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