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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인형 만드는 남자의 감성 건드는 재주
에일린돌 김범수 대표

 

모으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으로
일단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시작하자. 남자와 인형의 조합, 인형에게 안방을 내준 수집광, 다 큰 어른의 앞뒤 재지 않는 도전에 대한 삐딱한 시선 말이다. 반듯하게 고개를 세우고 보자면 실상은 꽤 근사하다. 흔치 않은 조합,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전문성, 새로움 앞에서의 당당함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니까.
구체관절 인형을 창작하고 생산하는 에일린돌 김범수 대표가 꼭 그런 사람이다. 오래전부터 취미로 인형과 로봇수집에 몰두했던 그는 원래 전자공학도였다. 후에 인형 캐릭터 창작을 다시 전공하긴 했지만, 그는 애초부터 손으로 만들고 조립하는 걸 크나큰 행복으로 삼았다. 그러다 불현듯 창업을 결심하게 됐는데, 여기에는 피규어의 역할이 컸다.
“전 세계에 100채 한정으로 나온 피규어가 있었는데,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어요. 너무 갖고 싶어서 원본과 똑같이 개조하기 시작했죠. 그 피규어를 가진 지인이 있어서 세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거든요. 그게 사업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해요. 주관적인 작품을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고 싶어진 거죠. 망해도 상관없다 싶을 만큼 좋았어요.”
그때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해도 좋다’니. 이 정도 열정 앞에 맹렬히 반기를 들 사람은 없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우려 어린 시선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그 후 철저한 준비기간을 거쳐, 약 4년 전 지금의 ‘에일린돌’이 시작됐다. 사실 회사명은 ‘아트토이’지만, 창작제품인 ‘에일린돌’이 유명해지면서 에일린돌로 통칭된다고.
“이 사업이 저와 굉장히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디자인부터 상품 출시까지 가능하니까요. 예전에 관련업체에서 근무도 했었는데, 그때는 대량생산체계라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었어요. 지금은 창작활동을 하면서 에디션 개념으로 내놓을 수 있어서 만족스럽죠.”

마니아 마음은 마니아가 아는 법
에일린돌에서 생산하는 것과 같은 구체관절 인형은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제품이다. 창작인형에서 출발한 데다 수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공방 개념의 작은 회사도 부지기수. 각 회사들마다 특징과 개성이 뚜렷한 건 물론이고, 종류도 수천 종이 넘는다. 이런 이유로 사업적 접근이 쉬운 반면,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벽을 넘어야 한다.
“주문을 받은 후 제작이 이루어져요. 그래서 신뢰가 무척 중요하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믿을 수 있는 회사라는 게 전제되어야 먼저 큰 금액을 지불할 테니까요.”
김 대표는 사업 초기에 이러한 신뢰 구축에 많은 공을 들였다. 호기심으로 구매한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설문조사를 하고, 그들의 피드백을 제품에 반영했다. 꾸준히 신제품을 출시함으로써 오랫동안 지속될 회사라는 걸 간접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뿐만 아니다. 배송 실수가 생기기라도 하면, 반송을 위한 소비자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서 아예 새 제품을 하나 더 보내주기도 했다.
“초기에는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에 보낼 제품을 바꿔서 발송하는 등의 실수가 많았어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올바른 제품을 다시 보냈죠.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박스를 열고 실망했을 그 마음을 아니까요. 그렇게 6개월 정도 지속하다보니 커뮤니티를 통해 조금씩 긍정적인 반응이 오더라고요.”
김 대표의 판단은 정확했다. 매출이 늘어났고, 에일린돌 마니아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신뢰라는 기반 위에 캐릭터로 구축한 세계관과 스토리는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제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회사를 오랫동안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스토리가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토리가 잡혀 있어야 캐릭터성을 부각시키고, 그 안에서의 파생도 가능하니까요. 주요 시장이 해외인 만큼 스페인 작가와 작업중인데요. 지금은 총 3부 가운데 1부까지의 스토리가 나온 상태예요.”

인형과 함께 인생을 더 즐겁게
취미로 인형을 수집하는 것과 직접 인형을 창작하는 것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간극이 있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취미의 일부를 포기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 김 대표 역시 과거만큼 수집에 열을 올리는 게 쉽지 않다고 고백한다. 요즘은 한 달에 한두 번 좋아하는 로봇을 구입하거나 조립하는 정도. 물론 텔레비전을 볼 때나 잠들기 전이나 늘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습관은 여전하다. 마니아로서의 색이 조금 옅어지긴 했지만 부각되는 장점은 여전히 거대하다.
“마니아가 아니고서는 마니악한 문화를 만들 수 없을 거예요. 소비자의 감성을 읽기 힘들 테니까요. 어쩌면 그게 전부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에일린돌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주요 행사에는 가려고 해요. 유행이나 흐름 등을 읽기 위해서요.”
어느 하나에 몰입하는 행위 자체가 경쟁력인 셈이다. 관심없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미묘한 색감 표현이라든가, 잡았을 때 손 안에 안정적으로 폭 들어오는 그립감을 가능케 하는 힘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창업 후 상승세와 과도기를 반복 중인 에일린돌 김 대표의 최종 꿈은 완구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캐릭터 모두가 출시되면 스톱모션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좀 더 대중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게 가까운 미래의 목표다.
“처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완구회사예요. 큰 회사보다는 작지만 내실 있는,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회사요. ‘에일린’이라는 단어가 신의 선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요. 그만큼 가치 있는 인형을 만들고 싶어요.”
즐기는 것만큼 큰 원동력이 또 있을까. ‘망해도 좋다’던 청춘의 패기는 이미 성공으로 증명됐으니, 이제 더 크게 저지를 일만 남았다. 즐겁게 더 신나게.

정은주 전문기자 사진 손철희 객원사진기자​

조회수 : 2,943기사작성일 :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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