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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장수기업들의 비책
수백년 전통의 저력, 세계 장수기업들의 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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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평균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맥킨지컨설팅 보고서에 따르면 1935년 조사 당시 90년이었던 미국 기업의 평균존속연도가 2005년에는 15년으로 낮아졌다. 성장은 둘째 치고 일단 생존 전략부터 세워야 할지도 모를 시대에 장수기업들의 안정적인 롱런은 다소 이례적으로 보일 정도다. 거기에는 분명히 특별한 이유가 숨어있을 터.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장수기업이 유독 많은 선진국의 사업승계 방식과 대표 사례를 짚어본다.

경영능력과 장인정신을 최우선시하는 일본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은 전 세계에 약 7,200여 곳. 그중 3,000개 이상이 일본에 있다. 기준을 100년으로 낮추면 해당되는 장수기업이 무려 5만여 개이며 1,000년 이상 이어진 기업도 7개에 달한다. 장수기업 수로 치자면 세계 1위 수준이다. 여기에는 일본 특유의 장인 문화가 맞닿아 있는데, 분야를 막론하고 상품의 질을 생명 그 자체로 여기며 남다른 자부심을 갖는 직업윤리는 단연 독보적이다. 또한 고객과의 신용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정신이 기업 전반에 짙게 깔려 있다. 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경영권 승계에 매우 엄격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경영권은 회사의 안정, 더 나아가 존폐와도 직결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승계에 있어 혈연이 무조건 우선시되는 법은 없다. 엄밀히 따지면 혈통의 지속이 아닌 기업의 지속을 보다 우위에 둔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 상업도시인 오사카에는 ‘아들은 선택할 수 없지만, 사위는 선택할 수 있다’, 3‘대째는 양자가 좋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혹은 직원을 중심으로 전문경영인을 양성하는 반토제도가 활용되기도 했다. 그만큼 혈연보다 경영의 자질을 앞선 덕목으로 삼으며, 이를 자연스럽게 여긴다는 의미다.
이러한 경영승계 방식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공인받은 사찰 전문 건축회사 곤고구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578년에 설립되어 1,400년 넘게 지속된 곤고구미의 저력을 실력 중심의 경영권 승계에서 찾는다. 25대부터 40대까지의 곤고구미 당주를 보면 방계 혈족은 물론 사위, 양자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34대 당주의 경우 경영능력과 장인정신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퇴출되기도 했으며, 위기에 빠진 회사를 여성 CEO가 일으킨 사례도 있다. 또 지난 2006년 파산위기가 닥쳤을 때는 곤고 가문이 물러나고 다카마쓰건설이 이를 인수해 비가족 구성원이 회사를 존속시켰다.
곤고구미 외에도 일본의 대표 기업인 스즈키, 도요타, 캐논 등도 입양한 아들에게 회사 경영을 맡김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에 힘을 실었다.

가족 테두리 안에서 실력자를 가늠하는 독일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도 장수기업이 많은 대표적인 나라다. 1,500여 개의 장수기업이 있는 독일의 경우, 중견기업 약 90%가 가족기업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에서의 가업승계는 대부분 가족 안에서 이루어진다. 가족경영에 부정적인 우리나라와는 다소 다른 인식인데, 독일에서는 긴 역사의 기업이 한 가문에 의해 운영될수록 그 가치와 정신을 높게 사고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또 가족 구성원들 역시 가업을 잇는 것을 운명이라고 인식하는 문화가 강하다.
1899년에 설립된 세계적 가전 회사인 밀레는 밀레 가문이 4대째 공동으로 경영하는 가족기업이다. 15세기에 창업, 12세대를 거쳐 이어지고 있는 가정용품 및 공구 제작기업 프림, 민감성 화장품 기업인 세바파마도 마찬가지다.
특히 올해로 창업 350주년을 맞이한 제약·화학 기업 머크는 소유와 경영을 철저하게 분리함으로써 자칫 가족기업에 나타날 수 있는 폐쇄성과 정체의 딜레마를 해결한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머크의 지주회사인 이머크에는 머크 가문 후손을 비롯한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파트너위원회가 있는데, 이곳에서 머크의 최고 경영진을 선발하는 방식이다. 즉, 가문이 경영 전반에 대한 통제력은 유지하되 회사 운영은 최적의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정교한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내부를 들여다보면 최고 경영진 가운데 머크 가문 사람은 한 명도 없으며, 신입사원이나 중관리자로 고용되는 사례도 극히 드물다.
250년 전통의 필기구 기업 파버카스텔도 차기 CEO 희망자에게 3년의 기회를 부여하고, 외부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경영능력을 평가하고 불합격할 경우 기회를 다음 후보자에게 넘기는 방식을 고수하는 등 경영자에 대한 교육과 관리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족기업 육성을 위한 독일 정부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한데, 지난 2008년에는 가업상속 후 경영기간과 고용 유지 규모에 따라 가업상속 자산의 85~100%를 한도제한 없이 공제하기로 하는 등 상속세제를 개정해 기업의 부담을 대폭 낮추었다.

대를 이어 전통을 견고하게 지키는 기업들
프랑스 파리에는 세계 장수기업 모임인 에노키앙협회가 있다. 회원사로 가입 가능한 조건이 꽤 까다로운데, 창업한 지 200년 이상이면서 창업자 자손이 현재 경영자이거나 임원이어야 하고, 창업자 가족이 회사를 100% 소유하거나 최대주주여야 한다. 게다가 우수한 경영실적과 사회적 존경이라는 덕목까지 갖추어야 하기에 전 세계를 통틀어 회원사가 50여 곳이 채 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기업 중 하나로 405년 역사의 보석회사 멜르리오 디 멜레도 에노키앙협회 회원이다. 멜르리오 디 멜레는 1613년 창업 이후 줄곧 가족 구성원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기업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후대에 물려줘야 하는 가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1784년에 탄생,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치즈·버터 생산업체로 손꼽히는 브라찰레도 같은 케이스다. 7대째 가족경영으로 기업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보다 빠른 의사결정과 갈등 해소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가족경영과 승계에 있다고 전한다.
물론 최근에는 새로운 승계 방식을 시도하는 장수기업도 눈에 띈다. 1695년에 설립된 네덜란드의 증류주 제조사 드 카이퍼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경영권이 승계되던 과거의 방식을 바꾸었는데, 수백 년 동안 장수기업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이 최적의 지배구조 유지였던 만큼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비가족으로 구성된 비상임 감독위원회를 조성해 후보자를 정하는 게 기본이다. 가족이든 아니든 후보자가 될 수 있으나, 일정 수준의 교육을 이수한 후에 타 회사에서 5년 이상의 근무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처럼 기업마다 사업을 승계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세기를 뛰어넘어 기업의 가치를 잇고자 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일 터. 중요한 것은 오랜 기업 경영 노하우와 가치관이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통을 고수하되 새로운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능력, 세계 장수기업에서 진정한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발견한다.

정은주 객원기자

조회수 : 2,371기사작성일 : 201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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