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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그래 한번 해보자!” 어머니의 리더십을 보여주다
갑작스러운 승계 ㈜오무전기

일당백. 흔히 중소기업 대표나 직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대표의 자리는 일당백으로도 부족하다. 대표가 곧 회사인 중소기업에서 대표의 갑작스런 부재는 그야말로 회사의 존폐에 영향을 미친다. 이 쉽지 않은 선택의 순간, 배우자의 자리를 대신하기란 쉽지 않다. 그 어려운 결정을 한 사람이 있다. 창업주인 고(故) 서해찬 대표의 뒤를 이어 ㈜오무전기를 맡은 강인순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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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전통의 전기공사 전문기업, 그 명성을 잇다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해 중부·동서·남동·서부·남부발전 등 발전소의 발전설비 예방정비와 전동기 및 펌프 제작, 수리 등의 전기공사 전문기업인 ㈜오무전기. 고(故) 서해찬 대표가 1981년에 설립하고 1997년에 법인 전환을 거치며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기술에 대한 자부심으로 발전소, 변전소와 송전·배전, 빌딩과 철도, 항만 등의 전기공사와 소방시설 공사, 전동기 정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던 오무전기. 그러나 성공과 위기는 동전의 양면처럼 늘 가까이 있었던 것일까?
2003년 오무전기 최대의 위기가 이라크에서 발생하고 말았다. 당시 이라크의 송전탑 건설을 위해 파견된 직원 2명이 이라크 무장단체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 것이다. 그 충격으로 회사를 창업한 서해찬 대표는 이듬해 사망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닥친 상황이었다.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이때 아내인 강인순 대표가 남편의 뒤를 잇기로 결정했다. 그때가 2004년 말이다.
“어려움을 헤쳐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더군요. 아이들도 회사를 정리하자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아이들에게 ‘접어도 빈털터리, 해도 빈털터리다. 그렇다면 해보자’고 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다. 남자도 하기 힘든 험한 일인 것은 물론이고, 전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비전공자가 하기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남편이 하던 일을 이어가고 싶었다는 강 대표. 그는 현장에서 일을 마치고 난 후 거래처에서 “오무전기 대단하다”는 말을 들을 때, 그때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다
가정주부로 생활하던 강 대표가 갑자기 회사를 맡았으니 당연히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이라크 사건 이후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여파로 자금 사정이 악화되어, 직원들 월급 주기도 버거웠다. 그래서 가족을 위해 들었던 보험을 모두 해약해 월급을 줬다고 한다. 당시로선 회사를 이어가는 것이 먼저였다. 강 대표는 그 어려움을 견디고 38년의 오무전기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사람, 그중에서도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당시 대학 재학 중에 실습을 나왔다가 아버지인 서해찬 대표에게 채용당한(?) 둘째딸 서상은 과장은 물론이고, 2005년에는 큰아들인 기술영업팀의 서상현 부장까지 회사에 입사해 사무실과 현장에서 강 대표의 눈과 귀가 되어주었다.
남성 위주의 현장에서 그것도 비전공자가 일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관공서나 공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업무에서는 ‘서류에서 시작해 서류로 끝난다’고 할 정도니 현장에서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무실에서 뒤를 받쳐줘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서상은 과장이 맡아주었다. 반면, 현장은 서상현 부장에게 맡겼다. 서 부장은 비전공자인 자신을 회사로 불러들여 현장으로 보낸 어머니를 원망했다. 당연히 하루하루 출근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그러나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2년 정도가 지난 후 서 부장도 어머니인 강 대표의 결정이 옳았음을 인정했다. 아들은 회사에서 같이 일하며 숨겨진 어머니의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진흙 속의 진주와 같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이런 점을 더 빨리 알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정도죠.”
그렇게 강 대표가 중심을 잡고 아들과 딸이 회사의 안과 밖을 책임지며 회사는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두 아이들이 옆에 있었다”고 말하는 강 대표는 “중소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가족이 함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서 부장도 “지금의 오무전기는 가족이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셋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함께하지 않았다면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확대보기㈜오무전기 인천공장 전경. 수리가 필요한 모터나 부속품은 인천공장에서 고친다.

다음을 위한 준비, ‘제조업’을 꿈꾸다
기술 제조업을 운영하며 늘 마음 한켠에는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느낀다는 강 대표. 그는 무리한 업무 확장이나 도전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운영에 집중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한 회사를 경영하는 대표로서 매순간 선택을 해야 할때도 이 일이 직원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등, 회사를 이끌어갈 새로운 수익구조를 늘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강 대표는 그 해법을 ‘제조업’에서 찾고 있고, 현재 한국서부발전과 함께 R&D를 진행 중이다.
이처럼 새로운 분야로의 확장을 고민할 때면 남편인 서해찬 대표가 생각난다고 말하는 강 대표. 그는 “남편이었다면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좀 더 진취적인 시도를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한다. 이런 그의 생각을 아는 걸까? 신사업에 대한 강 대표의 이런 생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서 부장도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4차 산업이나 스마트팩토리와 관련한 구상을 하고 있다”며 오무전기의 다음 행보를 모색하고 있다.
강 대표와 인터뷰를 하며 요즘 연재 중인 웹툰 「미생 2」가 생각났다. 이제 막 시작한 중소기업의 고단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이 웹툰에서 최근의 오무전기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는 ‘송일무역’이 등장한다. 갑작스런 대표의 건강 악화로 회사는 휘청하고, 급기야 다른 회사와 합병해야 하는 과정이 여실히 드러나는 에피소드다. 특히 이야기 속 오상식 부장의 “중소기업의 안정된 일이란 임직원의 건강까지다. 리스크는 서류만의 문제가 아닌 구성원의 문제다”(77화 중)라는 대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하정희 객원기자 사진 김성헌 객원사진기자

조회수 : 2,223기사작성일 : 201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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