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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기업 초석 다져야 가업승계 완성
준비된 가업승계 ㈜동신유압

세계 60개국에 수출하며 매출의 60%를 해외시장에서 거둬들이던 ㈜동신유압은 2011년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외부 요인으로 수출길이 막힌 게 아니었다. 그해 수장 자리에 오른 김병구 대표가 장고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그러다 2016년 화려하게 세계무대에 재등장했다. 어렵게 개척한 해외시장을 등지고 매출이 줄어들 걸 알면서도 5년간 수출을 중단한 이유가 무엇일까? 2세 경영인 김 대표의 남다른 경영 행보가 그래서 더 궁금했다.

확대보기김병구 대표는 아버지가 이룬 50년을 토대로 100년 기업을 향해 내달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원에서 대표에 오르기까지 17년 경영수업
㈜동신유압은 1967년 김지 회장이 창업해 올해 51주년을 맞았다. 반세기 동안 사출성형기 개발, 제조로 한길을 걸은 동신유압은 2011년 2세 경영인 김병구 대표의 취임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김 대표는 “창업자인 아버지가 이룬 50년 기반을 토대로, 더 견고한 기업으로 100년을 향해 가겠다”는 각오가 남달랐다. 그가 동신유압에 몸담은 지 17년 만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자식이기 때문에 기업을 물려준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으셨어요. 기업을 맡을 깜냥이 되는지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묵묵히 지켜보셨죠. 그 세월이 17년이었어요. 그때도 못 미더워 하셨는데, 전문컨설팅을 진행하며 제가 설득했습니다.”
김 대표는 17년 만의 대표 취임이 스스로 서두른 결과라고 했다. 실제로 당시 그는 전문컨설팅의 도움을 받아 가업승계를 마무리했다. 외부 경영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젊은 CEO의 감각이 필요하며, 젊은 CEO가 경영 일선에 있어야 혹시 있을지 모를 창업자의 건강이상 등 갑작스런 신변 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당시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아 주식을 양도하면 절세가 가능하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주효했다. 또 그만큼 김 대표는 자신이 있었다.
동신유압에 몸담기 전, 김 대표는 이른바 대기업 엘리트였다.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아 ‘회사 안에서 도와달라’는 아버지의 제안에 직장생활을 접고 부산으로 내려온 것이 1995년. 그의 첫 보직은 구매 담당 말단 사원이었고, 월급도 대기업 다닐 때의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불평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버지의 판단을 믿고 받아들였다. 부품과 원료를 사들이는 업무를 하면 무엇이 어디에 필요한 물건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부품을 알면 기계 전체를 보는 눈이 생긴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또 회사를 밑에서 보는 것과 위에서 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 현장 언어를 알아야 직원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가 대표에 취임한 뒤, 동신유압에 입사하는 모든 직원들에게 두 달 동안 현장경험을 쌓도록 정한 것도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2005년께 전무 자리에 올랐다. 그저 세월이 흘러 공으로 얻은 자리가 아니었다. 외환위기 무렵에 무역부장을 맡아 당시 매출의 10% 안팎에 머물던 수출 규모를 60%까지 끌어올리며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은 결과였다.
“입사 후 몇 년 동안 회사에 적응하느라 그야말로 진땀을 뺐어요. 당시만 해도 아버지께 빨리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앞서 실수가 잦았죠. 그러다 보니 사내에서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기도 했고요. 돌이켜보면 스스로 증명해야겠다는 욕심으로 앞뒤 재지 않고 기존 틀을 깨는 데 집중했고, 그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생긴 거죠. 사실,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기존 세대와 화합해야 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김 대표는 그 과정을 거치며 직원들과 함께하는 법을 알게 됐다고 했다. 기존의 틀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직원들 스스로 인정하게 만드는 방법도 깨닫게 됐다며, 이 모든 것이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 치른 수업료라고 했다.

아버지의 기반 위에서 아버지와 다른 경영으로
확대보기 부산신항 웅동배후단지에 세운 신공장. ㈜동신유압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일굴 고부가가치 신제품 생산기지다. 17년간 혹독한 경영수업을 거쳐 대표 자리에 오른 김 대표는 소통과 화합을 강조하며 새로운 기업문화 정착에 힘을 쏟았다.
“아버지가 하신 경영은 그 시대에 맞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랬기 때문에 50년 동안 탄탄하게 기반을 다지셨고요. 다만, 저는 제 시대에 맞는 경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아버지가 암묵적 노하우로 경영하셨다면, 저는 모든 걸 시스템화한 명시적 노하우로 경영을 하는 거죠.”
특히 그는 ‘대표 취임이 시작일 뿐, 아버지의 50년 기반을 바탕으로 100년 기업으로 향하는 초석을 다져야 가업승계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창업자가 다진 기반 위에서 앞으로 100년 이상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을 찾고 내실을 다지는 것이 2세 경영인인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얘기다.
그동안 세계 60개국으로 뻗어나간 수출을 잠시 중단한 것도 이 같은 소신에서 나온 결단이었다. 무역부장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해외시장을 개척하던 그는 원천기술 확보 없이 가격경쟁력으로만 승부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저렴한 가격으로 밀어붙이는 중국 기업이 속속 등장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때문에 김 대표는 당장의 매출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실을 다지는 일에 나섰다.
우선적으로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인적 자원에 투자했다. 인재 영입이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해, 더디더라도 기존 직원들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우회 전략을 취했다. 교육을 강화하고 성과보상체계를 정비해 직원 스스로 공부하고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기업문화 정착에 주력했다. 기회는 평등하게 제공하되, 성과에 따라 차등 보상하는 것을 제도화했다. 회사 순이익을 성과급과 회사유보, 배당 등으로 3분의 1씩 배분하는 333제도를 도입한 것이 대표 사례다. 이는 직원들에게 적잖은 동기 부여가 됐다. 김 대표는 “교육 효과가 당장 가시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그래도 변화해가는 과정임에는 틀림없다”고 자신했다.
2016년에는 부산신항 웅동배후단지에 기술집약체인 신공장을 완공하고,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고부가가치 신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그해에 수출을 재개한 것도 이런 자신감 때문이다. 아직 수출 규모가 매출의 3% 안팎이지만, 점점 증가하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 동신유압 매출은 330억 원 남짓. 김 대표는 신공장이 안정화의 길로 접어든 올해가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버지의 50년과는 또 다른 50년을 일구어나갈 김 대표의 경영 행보가 기대된다.

이은정 전문기자 사진 김성헌 객원사진기자

조회수 : 2,360기사작성일 : 201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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