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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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영人
100년 기업을 위한 바통터치
집념과 도전의 역사 ㈜일광메탈포밍 윤석봉 대표

 

대(代)를 이어가는 장수기업들은 꾸준한 고용 유지와 창출 덕분에 기업 자신의 성장은 물론, 극심한 경제불황 속에서도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성공적으로 세대교체를 일궈낸 장수기업은 손에 꼽힐 정도다. 한 연구에 따르면, 1대 창업자에서 2대 후계자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기업의 70% 이상이 실패를 한다고 한다. 이 말은 창업자의 사망과 함께 70%의 기업이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님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대대로 가족기업을 이끌어온 이들은 가업 승계를 종종 릴레이 경주에 비유하곤 한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경주에서 이기려면 바통을 제대로 주고받는 법부터 배워야 하기 때문. 38년간 고집스럽게 자동화 기계제조업에 매진해온 ㈜일광메탈포밍 윤석봉 대표는 아들인 윤정태 부사장과 지난 10년 넘게 합을 맞추며 세대교체를 준비 중이다. 세계시장을 석권한 강한 집념과 도전의식만큼은 꼭 빼닮은 부전자전 경영 이야기.

‘아버지의 이름으로’ 버틴 수많은 난관들
㈜일광메탈포밍은 건축패널 생산설비 분야에서 세계 3대기업 안에 손꼽히는 자랑스러운 강소기업이다. 당당히 세계시장을 석권한 윤석봉 대표는 1988년 회사를 설립해 38년이 넘는 시간 동안 뚝심으로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현재는 전 세계 70여 개국에 수출하며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거둬들이고 있지만, 사업 초창기에는 세계일류기업으로 성장한 오늘날을 아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영업직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아우들이 저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제안하더군요. 두 명의 동생과 함께 3,500만 원의 자본금을 가지고 무작정 제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2년 정도 근근이 버티긴 했지만, 누적 적자가 3억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의 일광메탈포밍을 있게 한 ‘롤 포밍(Roll Forming : 일렬로 나란히 된 성형 롤에 연속으로 금속띠판을 가공해 평판에서 원하는 단면 형상으로 완성하는 가공법)’을 접하게 된 것. 사활을 걸고 매달렸지만 불량률이 높았다. 10개 중 5~6개는 못 쓰는 제품이었다.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놓기엔 경험도 자본력도 뒷받침되지 않았지만 그대로 사업을 접을 수는 없었다.
“어느 날 한 고객이 샌드위치 패널(Sandwich Panel : 다른 재료를 샌드위치 형태로 겹쳐 접착제로 붙인 특수합판)을 제작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당시 일반 자동화 기계를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생소한 기술이었습니다. 우리가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아이템이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인 셈인데, 당시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크게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윤 대표의 말처럼 운명의 장난이 크게 똬리를 틀고 기다리고 있었다. 6개월에 걸쳐 제작했지만 발주업체가 원하는 제품을 생산해내지 못한 것. 불량 원인을 찾아내고 시운전을 하며 다시 6개월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혼자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발주업체는 공장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다른 업체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한 윤 대표는 결국 1억 3,000만 원의 대금 중 50%를 발주업체에게 거꾸로 되돌려주었다. 모든 것을 잃은 그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보다 앞선 기업과 기술제휴를 맺고, 그들을 통해 배우는 것이 빠른 성장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후에는 4~5년간 가깝게는 일본으로, 멀리는 이탈리아와 독일까지 가서 기술제휴를 맺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습니다. 어렵게 밀라노까지 가서 에스프레소 커피만 한 잔 마시고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나라 밖에서 어렵사리 기술을 배워온 윤 대표는 1992년 새로운 샌드위치 패널 생산설비를 내놓았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일주일에 한 대꼴로 기계가 팔려나가며 한 해 사이 매출이 몇십억 원대로 훌쩍 늘어났다.

 

‘공장을 위한 공장’ 세계로 뻗어나가다
기술제휴를 위해 일본과 유럽 등지를 오가던 윤 대표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그들의 문화에 주목했다.
“유럽쪽 바이어들은 자녀가 방학 때 해외출장 스케줄이 있으면 당연한 듯 동행을 했습니다. 평상시에는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기 때문에 출장길에 장거리 비행기 안에서나 호텔에서 함께 지내며 부족했던 대화도 나누고, 자녀의 꿈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습니다.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회사 운영을 하며 느꼈던 보람, 자신의 비즈니스 철학 등을 얘기해주려 노력한다고 하더군요. 바이어 자신도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해외 유학을 마친 후 자연스럽게 회사에 들어가 후계 수업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사회적 관습 덕분인지, 일본에는 후손들이 가업을 승계받아 창업 100년이 넘는 업체가 무려 5만 개가 넘는다. 200년 이상 된 기업도 3,000곳에 이른다. 독일은 800개, 이탈리아는 200개에 달한다. 세계적인 히든 챔피언으로 꼽히는 기업들의 성공 비결을 연구하던 윤 대표는 그들만의 철학이 있음을 깨달았다. 단순히 돈이 된다고 해서 아무것이나 덤비는 게 아니라, 한 분야의 최고를 꿈꾸는 장인정신이 있었다. 또한 강력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내수가 아닌 세계시장을 공략했다. 어느 것에 무게를 두는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묻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윤 대표는 100년 기업을 목표로 다시 한 번 큰 도전에 나섰다.
“국내에도 산업 붐이 일어 조립식 건축 방식으로 공장을 짓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당연히 샌드위치 패널의 인기가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리에 머물면 성장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공장이 지어지고 있는 한, 우리 회사가 개척할 곳은 무궁무진하니까요. 그렇게 첫 수출을 성공한 나라가 나이지리아입니다. 지금도 정치적 이유로 치안이 불안한 곳인데, 1996년 당시에는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우리의 요청으로 치안담당자가 경찰을 동원해 공항까지 영접해주었고, 주변 경비를 해주어 설치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해외영업 담당자는 생명의 위험이 있으니 갈 수 없다고 해서 제가 직접 가서 처리했죠.”
솔선수범하는 윤 대표를 따라 직원들도 험지를 가리지 않고 세계를 누볐다. 나이지리아처럼 산업제조 설비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을 위주로 하나둘 수출의 문이 열렸다. 사업 초창기부터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윤 대표는 해마다 매출의 10%를 꾸준히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그 결과 2004년 글래스울 패널, 2008년 폴리우레탄 패널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냈다. 기계들을 세계전시회에 출품하고,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A/S로 바이어의 마음을 훔쳐냈다. 2011년에는 2,000만 달러 수출탑과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겹경사를 맞기도 했다. 그렇게 발품을 팔아 오늘날 세계 70여 개국에 진출했고, 국내외 특허 53건을 보유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한결같이 열악합니다. 인프라도 기술력도 부족하지요. 사업의 방향을 잡고 개발에 몰두할 때는 전 직원이 휴일 없이 밤낮으로 일하며 극복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마치 신생아 자녀를 성인으로 키워내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 여러모로 많습니다.”

 

바통 이어받아 레이스를 시작한 ‘아들의 도전’
윤 대표의 말처럼 기업 경영과 자녀 양육은 비슷하다. 낳기도 힘들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훈육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대를 잇는 숙명이 기다리고 있다. 창업한 회사가 튼튼하게 오래오래 장수하는 기업으로 살아남는 것이 모든 기업인의 바람이지만, 안타깝게도 후계자를 찾지 못해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 CEO가 한둘이 아니다. 그동안 기업을 키우느라 앞만 보고 달려온 탓에, 대부분 승계는 손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퇴 시기는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자녀들은 회사 일에 관심이 없고, 이제 와서 새로운 사람을 찾자니 막막하기만 한 것.
“아무리 기업을 크게 키워도 창업자가 천년만년 살며 기업을 이끌 수는 없습니다. CEO는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람입니다. 차세대 CEO를 정하는 승계 문제를 매듭지어야 비로소 할 일이 끝나는 거라 생각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제 아들은 경영승계를 위해 10여 년 전부터 밑바닥 실무현장에서 준비를 철저히 다졌습니다. 문과 출신인데 이공계 이론을 모두 습득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도 열정과 사명의식을 갖고 혼심을 다하라고 채찍을 마구 휘두르고 있습니다(웃음).”
창업부터 지금까지 윤 대표가 일광메탈포밍의 2막을 책임졌다면, 이제는 윤정태 부사장이 바통을 물려받아 화려한 3막을 열어야 하는 것. 하지만 창업만큼 힘든 것이 수성(守成)이다. 게다가 가족기업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우리네 현실. 인터뷰 내내 묵묵히 앉아 있던 윤 부사장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저 역시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시작하며 직원들의 눈치부터 보였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높은 애사심과 책임감을 갖고 일하다보면 언젠가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저를 대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10년간 아버지와 트러블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후회 없을 만큼 치열하게 대화하며 대안을 찾았고, 지금은 아버지를 그 누구보다 존경하게 됐습니다. 극도의 원칙주의자로 살아오며 기업을 이끌어온 강한 집념, 타고난 사업감각마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거든요.”
윤 부사장은 50여 명의 직원과 한솥밥을 먹으며 아프리카와 중동 등 내전지역도 가리지 않고 출장길에 나선다. 아버지가 쌓은 견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의 강력한 라이벌 업체를 경쟁하며 세계 곳곳에서 기분 좋은 승전보를 울리고 있다. 앞으로는 지난 38년간 축적된 독보적인 성형기 기술을 바탕으로 건축, 자동차, 조선, 기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요구되는 설비 솔루션을 보다 단단히 구축해나갈 계획이다. 베트남 공장 설립을 준비하며 시장점유율 1위의 세계 최강기업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는 일광메탈포밍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윤석봉 대표에게 배우는 성공하는 가업 승계 전략

​"CEO는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람이다. 핵심은 돈이 아닌 기업가정신과 책임을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100년 이상 장수한 기업들의 승계 비결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가업 승계에 대한 편견이 만만치 않다.
현대사회 기업은 생존기간이 30년이라고 한다. 기업의 인수합병, 경영난, 후계자의 부재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요즘은 오히려 후계자가 없어 쇠락하는 경우도 많다. 자녀가 없어서가 아니다. 아들이고 딸이고 기업 경영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유산에만 관심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CEO가 은퇴하며 매각하기도 한다. 이는 국가적인 손실이다. 가업 승계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술의 전승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대신 가업승계자는 끊임없는 경영혁신과 투명한 경영을 통해 사회적,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도록 힘써야 한다.

언제부터 아들에게 승계할 생각을 했나?
유럽에 갔더니 일곱 살 꼬마 때부터 공장에서 제품제작 과정을 배우고 있더라. 대학생이 되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바이어들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후계자 교육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에는 수백 년을 이어 내려오는 가족기업이 많다. 부모와 조부모의 업(業)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발견하고 꿈을 실현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래서 나도 아들이 중학생 무렵일 때부터 가업을 이어받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왔다.

후계자 교육의 적정 기간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2010년 우리나라 중소기업 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봤더니, 대부분 2~5년 정도로 그 기간을 짧게 인식했다. 그런 탓에 열에 아홉은 승계 계획을 너무 늦게 짜기 시작한다. 우리는 최소 10~20년에 걸쳐 장기간의 프로세스를 밟고 있다. 공장과 제조 현장에서 직접 근무했고, 영업부와 기술개발을 포함해 각 부서를 일정 기간 순환 근무하도록 했다. 목표나 방향이 분명하고, 가야 할 길의 비전과 미션이 잘 제시되면 힘찬 전진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과의 마찰이나 어려운 점은 없었나?
공자도 자신의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고 아들에게 다른 선생님을 붙여주었다고 한다(웃음). 그만큼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버지에게도 아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직접 가르치려 했더니 단점이 더 눈에 띄었다. 그때그때 말해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아들 입장에서는 잔소리로 들릴 수도 있었다. 군대와 유학 등으로 떨어져 지낸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는데, 하루 종일 붙어 있으려니 크고 작은 마찰이 빈번하게 생겨났다. 대안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다보니 이제는 신뢰와 친밀감이 생겼지만, 초기에는 둘 다 힘들었다. 그래서 직장 내 멘토나 코치를 따로 두는 것을 추천한다.

가업 승계를 생각하는 다른 CEO들에게 조언할 것이 있다면?
만일 창업자가 자신이 없고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후계자는 50세가 되어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창업자 자신이 건재하게 활동하고 있을 때 후계자에게 크고 작은 일들을 직접 맡기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도록 해야 한다. 의도적으로 전체 회의 주관을 맡긴다거나 프로젝트 추진 등을 시키며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다. 일정 기간 경영수업을 받고 리더로서 역량을 갖추게 되면, 그때는 권한과 책임을 넘겨야 한다. 좋든 싫든 어떤 시점에서 ‘창업자인 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불안감을 떨쳐내야 한다.

이계선 객원기자 사진 김윤해 객원사진기자​

조회수 : 3,936기사작성일 : 201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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