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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영人
‘메이드 인 대성하이텍’이 월드클래스가 되기까지
㈜대성하이텍 최우각 대표

기업은 기초체력이 중요하다. 최우각 대표는 기술력과 인재야말로 기업의 기초체력이라고 생각하며 이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형식은 교육과 복지. 최 대표의 이 같은 신념은 1995년 직원 3명과 함께 시작한 ㈜대성하이텍을 23년 만에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히든 챔피언으로 성장시켰다. 부품 업체로는 드물게 완성품 업체인 노무라VTC를 인수하며 제대로 저력을 과시한 최 대표는 진정한 월드클래스로 거듭나기 위한 비상을 시작했다.

확대보기최우각 대표 사진

㈜대성하이텍은 CNC자동선반과 공작기계, 산업기계 등과 함께 이에 필요한 각종 정밀기계부품 8,000여 가지를 생산한다. 특히 지난해 매출 823억 원 중 75% 이상을 해외시장에서 거둬들이며 세계에서 인정받는 글로벌 강소기업의 면모를 제대로 드러냈다. 그런데 대성하이텍이 업계뿐만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국내 정밀가공기술력이 일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던 1990년대에 이미 기술력과 품질로 일본시장에 진출했으며, 2014년에는 세계적인 CNC자동선반 브랜드인 노무라VTC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일본시장에서 품질로 당당히 인정받은 정밀기계부품 업체, 70년 전통의 완성품 업체를 인수한 부품 업체라는 독특한 수식어가 붙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성하이텍도 처음엔 직원 3명으로 시작했다. 최우각 대표는 이를 23년 만에 직원 290여 명 규모의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인공이다. 최 대표는 그간 걸어온 20여 년의 여정을 이야기하며 진정한 월드클래스를 향한 행보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선한 웃음과 느긋한 말투 속에 삶의 가치이자 그가 추구하는 기업 가치인 ‘정직’과 ‘진심’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최 대표의 23년 업력에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었을까?

확대보기최우각  대표 사진최우각 대표는 직원들에게 진심을 다하면 두터운 신뢰로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첫 창업이 실패로 끝난 순간_
경험을 쌓고 사람을 얻다
최 대표가 처음부터 성공가도를 달린 건 아니다. 1983년 처음 창업한 유일정공을 10년 만에 빚만 떠안은 채 폐업한 아픔을 겪었다. 매순간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는 그는, 그래도 첫 사업 실패로 값진 것을 얻었다고 했다. 첫째가 사람, 둘째가 재기에 대한 의지였다고. 다시 월급쟁이로 일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그는 2년 뒤 유일정공에서 동고동락했던 직원 3명과 다시 의기투합해 대성하이텍의 전신인 대성정공을 재창업하게 된다.
“첫 창업 땐 경험도 없이 막연하게 젊음만 믿고 도전했어요. 조언 한마디 해줄 멘토조차 없었죠. 새로 시작할 땐 실패로 끝나긴 했어도 10년 동안 쌓은 경험이 있고, 함께하겠다고 나서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게 정말 고마웠죠. 사실, 유일정공 때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직원들에게 썩 잘하진 못했어요. 그래도 제 진심을 알아주니까 고맙더라고요. 재창업 때 함께 시작한 그분들 중 1명이 종교적인 이유로 퇴사했을 뿐, 2명은 20년이 넘도록 제 곁에 있습니다.”
진심을 다하면 두터운 신뢰로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직원들에 대한 최 대표의 철학과 신념은 이때 더 견고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해마다 송년의 밤 행사에서 5년, 10년, 15년, 20년 장기근속자들에게 금으로 만든 행운의 열쇠며 국내외 부부 여행권을 선물하는 것을 보면, 직원들에 대한 그의 진심을 제대로 엿볼 수 있다. 선물의 의미를 ‘더 열심히 일해달라’는 동기부여 차원이 아니라, ‘회사를 떠나지 않고 일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자 함께 보낸 세월을 기념하는 것’에 두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최 대표는 직원 생일 하루 전에 생일 케이크와 동양난 화분을 집으로 배송하고, 생일맞이 직원들과 한 달에 한 번씩 간담회를 진행해 그 자리에서 나오는 요구사항은 대부분 경영에 반영한다.
“간담회에서 얘기하는 직원들의 요구사항이 거창하지 않습니다. 정수기가 저쪽에 있는데 이쪽에도 있으면 좋겠다, 에어컨이 너무 낡았는데 교체하는 게 어떻겠느냐, 헬스장에 기구가 부족하다 등등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건 회사에서 충분히 들어줄 수 있고, 또 해줘야 하는 것이죠. 사소한 것 같아도 당사자들은 매일매일 불편을 느끼는 것이니 해소시켜주는 게 당연합니다.”
더불어 최 대표는 직원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하기로 유명하다. 외부 강사를 초빙하거나 외부 연수를 진행하며 현장에 필요한 기술이든, 관리에 필요한 기법이든, 철저한 교육으로 역량 강화에 무게중심을 둔다. 실제로 5년 전 대성하이텍의 직원 1인당 연간 교육시간은 74시간이었다. 당시 포스코의 직원 교육시간이 60시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중소기업으로선 결코 쉽지 않은 투자임에 틀림없다. 특히 13년 전부터 시작한 독서포럼은 대성하이텍만의 내실 있는 교육문화로 자리 잡았다. 20그룹으로 나눈 13명 안팎의 직원들이 매달 한 권씩 책을 정해 읽고 독서토론을 벌이고, 13권을 다 읽은 연말께에 평가를 거쳐 상금을 지급한다. 책값은 물론, 해마다 지급하는 상금 1,500여만 원을 전액 지원한다.
“회사가 발전하려면 외부에서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부 직원들의 역량을 높이고 생각을 바꾸어 뛰어난 인재로 성장시키는 게 더 중요합니다. 특히 직원 역량 강화에 독서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책은 또 개개인의 삶에도 정말 도움이 되고요. 간혹 독후감이나 독서토론에 스트레스를 받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딱 3개월만 더 해보라’고 권합니다. 3개월 뒤에는 대체로 마음이 바뀌어요.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삶의 질이 달라지는 걸 스스로 경험하게 되니까요.”

확대보기좌측 부품 가공중인 직원 사진과 우측 초정밀기계부품 사진(좌) ㈜대성하이텍의 초정밀기계부품 가공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우) 세계무대에서 뛰어난 품질로 인정받는 대성하이텍의 초정밀기계부품

일본시장 진출을 결심한 순간_
품질 기준을 다시 세우다
확대보기최우각 대표와 독일 바이어 및 대성하이텍 엔지니어 사진 대성하이텍의 기술교육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는 글로벌 수준을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 기술교육 연수 차 방한한 독일 바이어 및 엔지니어들과 함께 대성하이텍은 국내 정밀가공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일본시장에 진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1995년 대성하이텍을 재창업하면서 최 대표가 목표로한 것은 하나였다. ‘일본 업체와 거래하는 정밀기계부품 업체로 만들겠다.’ 이러한 목표를 세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최 대표는 유일정공을 경영한 10년 동안 학연이나 지연이 없다는 게 국내 영업에서 나름의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것이 실패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반면, 일본 업체는 학연이나 지연에 휘둘리지 않고 기술력으로 평가하는 데다, 거래를 트는 것이 어려울 뿐 일단 거래를 시작하면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 좋았다. 특히 최 대표는 기술에 자신이 있었다. 그는 독일 지멘스와 합작회사였던 금성통신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독일 엔지니어와 교류하며 정밀부품 생산기술을 제대로 익혔다고 자부했다. 1975년에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정밀기기 분야에 도전해 당당히 금메달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시장을 뚫는 것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창업 후 2년 동안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코트라에서 주관하는 무역상담회에 빠짐없이 참가하며 10여 차례 일본시장을 두드렸으나,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했다. 최 대표는 한참 후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당시만 해도 국내 정밀가공기술이 현저히 떨어졌으므로 일본 업체가 한국 제품을 쓸 이유가 없었던 것.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코트라에서 발간한 일본 업체 디렉토리북에서 관련 업체를 200군데 정도 추리고, 이들 업체에 ‘앞으로 한국 제품을 쓸 일이 있다면 반드시 우리 회사를 찾아달라’는 간절함을 담아 일일이 손편지를 써 보냈다. 이후 한 달 후에 두 군데에서 답장이 왔고, 그중 한 곳에서 발전설비에 필요한 부품 도면과 견적의뢰서를 동봉했다. 최 대표는 천금 같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그는 한 달 보름여 동안 부품을 제작해 일본 업체에 입회 검사를 요청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100% 자신했던 품질검사에서 50%가량이 불량 판정을 받은 것이다.
“당시 우리 제품의 품질 수준은 국내 대기업에서도 인정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일본의 검사 기준은 너무 까다로웠습니다. 사소한 것까지 꼼꼼히 따지고, 조금이라도 스펙에서 벗어나면 지체 없이 불량으로 처리했으니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 정밀치수가 아닌 주물소재 등에서 불량이 났다는 거죠.”
이 일을 계기로 최 대표는 ‘완벽한 품질’에 대한 개념과 기준을 다시 세우게 됐다. 기술과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만큼 당황하긴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엔 100% 합격 판정을 받아 수출을 완료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일본 업체와 첫 거래를 트자, 이후에는 시장이 저절로 열렸다. 특히 세계 최대 공작기계 업체인 야마자키마작과 연결되면서 일본 진출의 날개를 달았다. 처음에 10개 아이템으로 거래를 시작한 야마자키마작은 현재 대성하이텍 매출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빅바이어로 자리 잡았다.
“그때 까다로운 품질 요구에 지레 겁먹고 포기했다면, 아마 지금의 대성하이텍은 없었을 겁니다. 당시에 그냥 포기하자는 직원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까다롭다 싶어도 그게 정석이고 FM이니까 지키고 따르는 게 맞죠. 덕분에 우리 회사는 품질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웠고, 이후 세계에서 인정받는 품질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재기에 나선 창업자를 위한 최우각 대표의 조언

확대보기최우각 대표 사진멘토를 가까이 둬라
멘토는 삶에나 경영에나 지혜를 더해줄 수 있는 조력자라고 보면 된다. 부모나 친구, 동료나 은사 등 누구라도 좋고, 심지어 경쟁업체 대표라도 상관없다. 결정적인 순간에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넬 수 있는 멘토가 가까이 있다는 건 든든한 울타리가 된다.

묻고 또 물어라
대표라고 모든 걸 다 알 수 없고, 매순간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때문에 주위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질문하면서 지혜를 모으길 바란다. 특히 어떤 중대한 결정을 할 때에는 최소 5명에게 묻고, 4명이 OK 하면 진행하길 권한다. 실수를 줄이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책 속에 길이 있고 답이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그저 박제돼버린 문구가 아니다. 실제로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책을 접하고 사유해야 한다. 책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이자 어려울 때 든든한 힘이 되는 친구일 수 있다. 특히 『일본전산 이야기』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노무라VTC를 인수한 순간_
글로벌 히든 챔피언으로 입지를 다지다

오늘날 대성하이텍이 있기까지 2014년의 노무라VTC 인수를 빼놓을 수 없다. 부품 업체가 완성품 업체를, 그것도 70년 업력의 CNC자동선반 명문가를 인수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었다. 최 대표는 이것이 히든 챔피언을 향한 자신의 의지와 꿈에 하늘이 응답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노무라VCT 인수 과정은 ‘진인사대천명’ 그 자체다. 업력이 쌓이면서 시나브로 완성품 제조를 꿈꾸게 됐다는 그는 2005년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해 기술력을 쌓으며 자체 브랜드 ‘제로인(ZEROIN)’을 론칭하고 탭핑센터, 고속가공기, CNC자동선반 등 완성품 개발에 성공했다. 특히 CNC자동선반은 빠른 속도, 정밀성, 성능, 내구성 등을 갖춰야 하므로 세계적으로 제작업체가 10곳 안팎일 정도로 기술진입 장벽이 높은 제품에 해당했다. 인지도는 낮지만 기술에서 자신이 있었던 최 대표는 장고 끝에 일본 브랜드 노무라(NOMURA)를 공략하기로 했다. 조인트벤처나 기술제휴 등으로 함께한다면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물론 노무라는 1년이 넘도록 응답이 없었다. 그러던 중 대구 시장개척단이 도쿄에 방문한 것을 계기로 노무라와 인연이 닿았고, 서너 기종을 OEM 납품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2년 뒤에 노무라에서 먼저 CNC자동선반 부문 인수를 제안한 것이다. 20년간 쌓아온 대성하이텍의 공작기계부품 생산기술과 품질우선주의 철학이 노무라의 기업정신과 들어맞는다고 판단한 데 따른 제안이었다. 당시 인수 투자규모가 적지 않았으나, 최 대표는 망설임 없이 인수를 단행했다. 미래 성장 동력으로 대성하이텍이 글로벌 히든 챔피언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로운 브랜드 ‘NOMURADS’가 탄생한 이후, 인수 당시 7개국이었던 수출국이 25개국으로 늘며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효자 아이템으로 거듭났다.
현재 대성하이텍은 야마자키마작을 비롯해 도시바, 히다츠, 니콘, 삼성전자 등 12개국 57개 글로벌 업체와 초정밀부품사업을 진행하는 히든 챔피언으로 성장했다. 최 대표는 이를 발판으로 내년 IPO를 계획하고 추진 중이다.
“그동안 기술력과 품질로 인정받았고, 노무라VTC를 인수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초정밀부품 생산·가공에 완성품 생산까지 더하며 기업의 기초체력도 충분히 다졌고요. 2016년에 월드클래스300에 선정됐는데, 이제는 ‘메이드 인 대성하이텍’이 진정한 월드클래스가 될 수 있도록 한 단계 더 도약할 예정입니다. IPO가 그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확대보기정밀가공중인 대성하이텍 직원 사진대성하이텍은 1990년대에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일본시장을 뚫을 정도로 뛰어난 정밀가공기술을 자랑한다.

이은정 전문기자 사진 김윤해 객원사진기자

조회수 : 5,145기사작성일 : 201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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