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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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영人
시인의 마음으로 보면 보입니다
한중엔시에스 김환식 대표

김환식 대표의 시집인 《붉은 혀》의 첫 장을 넘겼다. 서문인 ‘시인의 말’ 중에서 “눈만 뜨면 쳇바퀴 돌리듯 헛궁리를 한다”는 문장이 눈길을 잡았다. 한중엔시에스를 창업하던 해에 첫 시집을 냈으니 시인과 경영자로 살아온 시간이 벌써 스물다섯 해가 지났다. 다행히 그 헛궁리들이 헛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전기자동차 부품 기업으로의 변신을 잉태하고, 아홉 번째 시집도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확대보기김환식 대표

김환식 대표가 경영하는 한중엔시에스는 1995년 8월에 설립된 자동차 부품 기업이다. 내연기관의 섀시 부품을 생산하다 최근에는 전기차의 배터리팩 관련 제품과 제동장치를 개발한 후 양산하고 있다. 모비스의 협력 벤더로 사업 기반을 다지며 2013년 12월에 코넥스 시장에 상장했는데, 거래처 다각화를 진행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부품의 매출 비중도 급격히 상승했다.
국내에서는 유럽 시장에 적합한 전기차 아이템들을, 중국 공장에서는 전기차 제동 시스템의 핵심 모듈 제품인 진공 센서, 진공 스위치, 전기 진공 펌프, EVP의 컨트롤러인 ECU를 생산 중이다. 이들 제품의 핵심 부품은 국내에서 공급하고, 중국 공장에서는 제품을 모듈화해 중국의 완성 전기차 기업과 국내의 전기차 생산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혁신 성과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한 광역경제권 우수기술개발과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CUBEGEN(큐브젠)’이라는 자체 브랜드의 첫 완제품인 미니 ESS(Energy Storage System)의 개발을 끝내고 양산에 돌입했다. 글로벌 타제품과 비교하면 고용량, 고효율, 저중량의 혁신성이 돋보이며, 수려한 디자인과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는 장점을 가졌다. 이 제품은 국내에는 레저용으로, 해외에는 재난용과 비상전원용으로 타기팅할 예정이다.
한중엔시에스는 창조와 혁신을 위해 전사적 업무 전산화가 가능한 스마트공장을 구축했다. 또 맞춤형 인재의 안정적 수급과 배움을 갈망하는 직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전문대 과정부터 박사 과정까지 회사와 대학을 연계한 사내대학도 운영 중이다.

확대보기김 대표의 수첩

휴일과 퇴근 후가 더 바빴던 공무원

“남들은 공휴일에 다 쉬는데, 당신은 뭐 그리 바쁘냐?”는 아내의 핀잔에도 김 대표는 주말과 퇴근 후에 휴식도 반납한 채 꼬박꼬박 자원봉사 현장을 찾았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부양할 가족이 없거나 행려자들을 위한 시설을 만드는 공사장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시작부터 준공 때까지 4년간 꾸준히 봉사활동을 했다. 사업계획서도 제대로 못 쓰는 창업자들을 위해 휴일도 반납하고 함께 사업계획서를 만들기도 했다. 고됐지만 재밌었다. 흥미가 생겨 야간대학에 진학해 경영학을 공부하고 내친 김에 경영지도사 자격증도 땄다. 이 모든 경험은 기업인 김환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는 데에 값진 자산이 됐다.
“그 시절 시골의 형편은 눈물겨웠지요. 저희 집도 그랬습니다. 참 없는 집의 장남이었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은, 우리 아이들도 내가 살아온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절실함에 찾게 된 돌파구가 창업의 길이었어요. 사표를 낸다니 부모님 반대가 심했습니다. 하지만 ‘남자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야지요. 안 되면 내가 보따리 장사라도 할게요. 애들 걱정은 마세요’라는 아내의 지지에 힘을 얻어 창업하게 되었어요.”

IMF, 도망칠 순 없었다

김 대표는 88서울올림픽 이후 국내 산업의 흐름이 자동차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1995년 8월에 퇴직금을 털고 대출을 받은 후, 겁 없이 창업했다. 1997년 봄, 설비를 도입하여 시운전을 하던 중에 예기치 못한 IMF 사태와 직면하게 되었다.
“당시 주거래 은행은 D은행이었는데 우리보다 먼저 영업정지를 당하고, 이를 K은행이 인수하면서 대출의 승계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불가능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그냥 손 털고 나오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어요.”
그럴 수는 없었다. 남들의 시선은 무섭지 않았지만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준 아내와 가족, 직원들에게 비겁하게 도망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면 길은 있을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믿으며 백방으로 뛰었다. 다행히 D은행에 거래하던 기업의 대출을 K은행이 모두 승계하라는 정책적인 조치와 당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의 결정으로 지원받은 1억 원의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종잣돈 삼아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첫 아이템인 램프 부품이 양산되고, 배기 시스템 등의 신규 아이템들이 추가되면서 성장 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수가 늘어날수록 사업성이 떨어지는 수작업 일변도의 아이템 중심 사업구조가 발목을 잡았다. 규모가 커질수록 열정만으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었다. 기업의 정체성을 재정비하고 미래의 먹거리를 고민하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다. 준비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생존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전기차’라는 아이템을 발굴하게 했다.

확대보기김환식 대표

업종 전환이라는 난제, 전기차 부품으로 출항

업종을 전환하기 위해 ‘준비한다는 것’은 진짜 사업이 될 건지 말 건지 판단하는 데만 최소 1년 이상 걸리는 작업이다. R&D의 방향이 설정되면 전기차 테마 중에서 어떤 것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고, 개발과 양산 능력 등 기업의 역량도 체크하고, 모자라는 기술은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도 대비해야 했다. 한중엔시에스는 R&D 기간 5년과 양산 준비 기간 3년을 합쳐 무려 8년이라는 기간을 업종 전환을 위해 투자했다.
“R&D에서 설비까지 400억 원이나 투자했어요. 저는 ‘중소기업은 초식동물’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육식동물은 한 끼 식사를 위해 사냥을 나가도 잡기 힘들면 끝까지 따라가지 않습니다. 한 박자만 기다리면 먹을 것이 또 나타나기 때문이죠.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의 한 끼 식사 메뉴로 선택되면 일생이 끝납니다. 대기업은 R&D를 하다가 갑자기 경영환경이나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중지시키거나 보류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R&D를 하다가 100억 원만 잘못 집행되면 바로 존폐의 귀로에 설 수밖에 없게 되죠. 업종 전환은 정말 힘든 결정입니다. 주변에도 성공한 경우보다 실패한 경우가 훨씬 많죠.”
올해는 유럽의 코로나19 상황이 안정 추세로 돌아설 전망이라 유럽 시장에 적합한 전기차 부품의 수출 실적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신규 사업인 전지, 전자, 센서, 스위치 및 2차전지와 ESS 관련 아이템의 매출도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확대보기전자식 진공펌프전기차 핵심 부품인 전자식 진공펌프

확대보기미니 ESS최근엔 첫 완제품인 미니 ESS의 개발을 끝내고 양산에 돌입했다.

인복 부자의 진심 경영

비즈니스에서 사람을 빼고 논할 순 없지만, 김 대표는 유독 사람을 모으고 아우르는 재주가 뛰어나다. 그는 2009년도에 52세의 나이로 중소기업융합대구·경북연합회(구 대구경북이업종교류연합회) 회장에 취임했다. 전국에서 가장 젊은 연합회장이었을 뿐 아니라 대구·경북 경제인 단체장 중에서는 가장 젊었다. 사무총장을 4년 하고 나니 당신만 한 사람이 없다고 회원들이 강권 추대해서 맡은 자리였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무늬만 회장이 아닌 실질적인 경영·기술 정보 교류를 추진해 보고 싶었어요. 마침 교육부의 프로그램 중에서 매년 실적을 평가하여 1년에 5억 원씩 최장 5년을 지원하는 네트워크 강화 산학연계망 사업이라는 과제 공모가 있어 지원했죠. 많은 대학과 기관을 물리치고 우리 연합회가 선정됐어요. 회원사와 대학, R&D 지원 기관들을 적기적소에 매칭해 주다 보니 회원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사업화로 이어진 아이템도 숱하게 나왔죠. 덤으로 회원 간의 결속력도 고취되어 다른 연합회로부터 부러움도 많이 받았어요. 회원 수도 900여 명에서 1,200여 명으로 늘었고, 연합회 사무처의 살림살이도 안정을 찾았고요.”
이런 성과들에 힘입어 그는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 대구·경북지역 회장직도 역임했다. 몇 번이나 고사했지만 초대 회장으로 추대돼 백지 상태였던 협회의 기틀을 다지고, 3년 만에 회원 300여 명이 참여하는 조직을 만드는 저력을 보였다. 작년 12월에는 코넥스 시장 활성화를 이끄는 코넥스협회 신임 협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한중엔시에스의 핵심 가치는 Dream(꿈), Hope(희망), Happiness(행복)다. 김 대표의 인생관이기도 하다. 그는 “내가 꾸는 꿈을 나만 꾸면 안 되고, 직원들이 같이 꾸는 꿈이어야 하며, 우리 고객도 같이 꾸는 꿈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희망과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 부모, 형제, 직원들이 꿈과 희망과 행복을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얼마 전 그는 “멀리 보고 가시는 사장님께 성과로 보답하겠습니다”라는 한 팀장이 보낸 문자를 받고 온종일 힘이 났다고 한다. 그가 그리는 큰 꿈이 무엇인지 알아주는 것만 해도 기쁜데, 기꺼이 동행까지 하겠다니 김 대표의 진심 경영은 통하고 있다.

김환식 대표의 삶과 철학

창업 전 장밋빛 미래보다 함정 먼저 고려
직원들에게 오너의 진심 알리는 것이 첫 과제
사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사람 모이게 만드는 원천
시 쓰기 작업은 사물과 이치를 낯설게 바라보는 연습

확대보기김환식 대표

철저한 성격이신 것 같습니다. 창업 전부터 시장조사나 사업타당성 검토뿐 아니라 현장에서 비결도 습득하고 경영지도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셨어요.
가업을 승계받은 2세 경영자의 중소기업은 대개 3년에서 5년 사이에 도산할 위험이 많다고 합니다. 그것은 왕성한 패기로 사업을 만만하게 봐서 그런 겁니다. 남들 하는 것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함정이 있었나 싶을 때가 많죠. 저는 공직에 있으면서 도산하는 기업들을 자주 봤어요. 공장 준공 기념품을 돌리던 기업인 중에서 열에 일곱 분은 3~4년 후에 모두 힘들어지는 걸 봤습니다. 그 속에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죠.

기업 경영을 말씀하시면서 ‘진심’을 자주 언급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진심이 통하는 비즈니스라니 어떤 면에서는 너무 이상적인 것 같습니다.
사업한다고 하면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먼저 직원들이 오너의 진심을 믿어줘야 해요. 직원들이 내 진심을 알아주면 밖에도 다 통하게 돼요. 사업초기 IMF가 터져 집을 팔았을 때 직원들이 이사를 도와줬는데, 제가 “이 중에서 1원도 내 주머니에 넣지 않을 거다. 우리 최선을 다해서 난관을 극복해 보자”고 했어요. “IMF가 왔다고 세상이 망하는 건 아니지 않냐? 이 가운데 누군가 살아남는다면 우리가 그 역할을 해보자”라고요.
주변에서 많은 분이 도와줬어요. 제아무리 똑똑하다고 설쳐도 혼자서 되는 거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제 입으로 아무리 잘한다고 얘기해도 누군가가 “저놈 사기꾼이에요”라고 말 한마디 하면 그걸로 끝이잖아요.

사람을 귀하게 여겨서 그런지 인맥이 대단하세요. 사람을 대할 때 어떤 부분에 정성을 쏟나요?
사람들은 보통 보상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하잖아요. 뭔가 꿍꿍이가 있다 싶으면 결국 상대도 역시 그렇다고 느끼게 되죠. 제가 창업하자마자 융합회에 가입을 했는데 덜컥 총무를 맡겼어요. 사람들이 “너 사업하는 거냐, 왜 그렇게 열심히 챙기냐?”라고 하대요. 그래놓고는 모두 도와주려고 했어요. 일부러 잘 보이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전 친구들이나 직원들하고 주말에 메시지를 주고받고, 가끔 커피 쿠폰도 쏴요. 저장된 전화번호만 6,000여 개입니다. 매년 지우고 넣고 지우고 넣고 하는데 그래요.

어느 조직에 있을 때나 주인의식을 갖고 임하는 듯합니다. 조직을 운영할 때 핵심 가치관이 있다면요?
자기희생, 솔선수범이라고 생각해요. 손님이 오면 제가 직접 커피를 타서 줘요. 직원들이 제 비서로 입사한 것도 아니잖아요. 가능하면 컵도 제가 씻어요. 기사 두면 편하지만 차도 직접 운전하죠. 다른 회사에 근무하다가 우리 회사에 온 직원들은 기존 대표들과 다른 모습의 저를 오히려 관찰합니다. 뭔가 다른 것 같다고요. 저는 휴지가 보이면 항상 먼저 주워요. 누가 보든 말든 마음속에 주워야 한다는 의식이 있으니까 줍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계속 보이면 직원들이 따라 합니다. 솔선수범은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먼저 하면서 다른 사람도 하게끔 하는 것. 리더십은 그렇게 쉬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집을 8집까지 출간하셨어요. 시를 쓰는 것이 경영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나요?
저는 시를 쓰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스트레스도 풀고 마음에 있는 이야기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글을 쓰다 보면 그냥 울컥하는 감동이 올 때가 많아요. 생각나면 뭐든지 다 적었어요. 《버팀목》이라는 시집은 교보문고에서 한때 시부문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어요. 거기 실린 〈버팀목〉이라는 시는 지인의 조문을 갔다 와서 지은 거예요. 장례식장의 영정사진은 활짝 웃고 있는데 사람들은 엉엉 울고 있었고, 화단에 심어둔 나무도 버팀목에 기대 서 있는 것을 보면서 산 나무도 죽은 나무에 의지해 새 삶을 찾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써내려간 글이에요.
시는 남들이 보려고 하지 않는 사각을 보는 눈이에요. 가끔 직원들이 그럽니다. 사장님은 눈에 돋보기가 달렸느냐고요. 현장에 있는 티들을 다 잡아내니까요. 눈이 앞에도 있고 뒤에도 있다고 농을 칩니다. 그것은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못 보게 되고, 안 보게 되는 이치지요. 그건 진심이 100% 담기지 않았다는 의미지요.

확대보기창업 후 25년간 적은 김환식 대표의 수첩메모는 김 대표의 오래된 습관이다. 사건, 사물뿐 아니라 모든 감정을 적는다. 창업 후 25년간 적은 수첩을 보물처럼 모았다.

최윤경 | 사진 박명래

조회수 : 2,602기사작성일 :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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