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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스마트폰 하나 만들어볼까?
오픈소스 하드웨어

 

‘기술 이타주의’를 표방한 오픈소스 정신이 소프트웨어를 넘어 하드웨어 생태계로까지 번지고 있다. 특허 대신 공개를 선택한 이들의 속셈이야 제각각이지만 결과는 같다. 자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동시에 다수의 우군을 확보할 수 있다. 의도야 어찌 됐든 깔린 멍석 위에서 제품 개발자들의 창작 활동은 더 쉽고 더 다채로워진다.

나눌수록 커지는 아이디어
올 초 구글은 연내에 조립식 스마트폰인 ‘아라폰’을 선보이겠다고 밝혀 업계를 긴장시켰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스마트폰을 조립할 수 있는 개방형 모듈러 플랫폼이 처음으로 판매되는 국가는 푸에르토리코가 될 전망이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바디에 배터리, 안테나 등 각 기능을 블록 형태로 조립할 수 있는 아라폰의 가격은 5만 5,000원 정도(모듈을 제외한 바디 가격). 카메라 기능이 중요한 사용자는 작은 배터리를 선택하는 대신 카메라 부품을 큰 것으로 끼우면 되고, 충전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용자는 다른 부품을 빼고 배터리 크기를 키우면 된다. 즉, 지금까지 제조사가 갖고 있던 하드웨어 스펙의 결정권을 이용자에게 넘겨준 것으로, 오픈소스 하드웨어를 본격적으로 상업시장에 내놓기 위한 준비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오픈소스의 개념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무료로 유통되고 있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코딩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공개된 정보는 다른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 더 나은 기술로 진화해나간다. 누구나 자유롭게 가져다 쓸 수 있고, 원하면 더 좋은 기능을 부가할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2차, 3차 저작물 또한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오픈소스 기반으로 설계해 전 세계 개발자들을 우군으로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몸집을 불리는 데 성공했다. 아라폰를 통해 구글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서 실현한 흐름을 하드웨어에서도 재현하려는 것이다.
오픈소스 하드웨어는 특정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회로도, 자재설명서, 인쇄회로기판 도면 등 모든 것을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핵심 기술(source code)을 다 보여주는 셈이다. 아라폰처럼 오픈소스로 제공된 하드웨어만 있다면 누구든 새로운 기능을 덧대어 참신한 자신만의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메이커들의 플랫폼, 오픈소스 하드웨어
대표적인 오픈소스 하드웨어로는 아두이노(Arduino)와 라즈베리파이(Raspberry Pi), 비글보드(Beagle Board) 등을 꼽을 수 있다. 최소한의 컴퓨터 부품을 손바닥만 한 보드에 탑재한 것으로, CPU와 메모리, 그리고 다양한 입출력단을 가진 초소형 컴퓨터라 할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인프라와 소셜 미디어의 발달, 크라우드 펀딩이 활성화되면서 이러한 초기 오픈소스 하드웨어가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오픈소스를 이용한 수많은 창의적인 응용 사례와 그 프로그램 코드가 인터넷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손재주만 있다면 오픈소스를 이용해 3D프린터도 직접 만들 수 있다. 3D프린터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주요 장비 중 하나다. 최근 500∼2,000달러 정도 하는 압출 적층 3D프린터는 거의 모두 오픈소스 하드웨어에 기반한 것이다. 아두이노를 기반으로 500달러 정도로 직접 3D프린터를 만들 수 있는 설계도와 제작방법을 오픈소스로 공개한 ‘RepRap’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 프로젝트는 3D프린터를 개인이 부품만 모아 조립할 수 있을 정도의 자세한 노하우를 제공한다.
센서 기반 사물을 만드는 데 최적화된 아두이노를 이용해 미국에서는 가정용 맥주발효기의 온도 측정 센서를 만들었고, 콘크리트 혼합기, 수력 모터 등 산업용 기기를 만들어 쓰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전자기기 DIY족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리눅스 기반의 초소형 PC 라즈베리파이를 이용한 슈퍼컴퓨터도 등장했다. 라즈베리파이를 64개 병렬 클러스터로 연결한 것으로, 우리 돈으로 200만 원 정도면 나만의 슈퍼컴퓨터를 가질 수 있다.
아두이노나 라즈베리파이는 교육용이나 시험용 혹은 뭐든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전자기기 DIY족들을 위해 이용되기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상업적인 프로젝트에도 이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라즈베리파이를 활용한 조립식 PC ‘카노 키트’다. 레고 블록을 갖고 노는 것처럼 PC 부품을 간단히 조립할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라즈베리파이 보드에 플라스틱 덮개와 메모리카드, USB 키보드, 전원을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99달러로 가격도 착하다. 대표적인 오픈소스 하드웨어 기업인 3D로보틱스는 아두이노를 기반으로 상업용 드론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수많은 오픈소스 하드웨어 기반 프로젝트를 발견할 수 있다. 킥스타터와 인디고고 등의 소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실제로 사업화되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이른바 1인 제조기업이 가능한 시대의 핵심에 오픈소스 하드웨어가 있다.
오픈소스 하드웨어가 확산되면 개발기간 단축, 생산비용 절약이라는 제조 혁신이 가능해진다. 제조업 창업자에게는 제품개발 과정에서 시제품 생산비용이 장벽으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오픈소스 하드웨어를 이용한 3D프린터, 레이저 커터 등의 프로토타이핑 툴이 나오면서 생산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게 됐다. 시제품 단계를 가뿐히 넘은 1인 하드웨어 기업들은 아이디어만 좋다면 양산이라는 또 다른 숙제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DIY 넘어 상업화 단계로
아두이노와 라즈베리파이의 성공으로 유사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인텔의 갈릴레오(Galileo)와 에디슨(Edison)은 쿼드 코어가 탑재되어 준PC급 성능을 자랑하는 오픈소스 하드웨어이다. PC에 안주하다가 스마트 디바이스 시대를 맞아 퀄컴에게 시장을 빼앗긴 인텔이 오픈소스 하드웨어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에디슨에 와서는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준비하는 인텔의 전략이 읽힌다. 이 제품은 4GB의 eMMC, 2.4/5GHz 및 802.11 a/b/g/n 무선랜, 블루투스 4.0, USB 2.0을 지원하며, 인텔 아톰 듀얼코어 프로세서와 쿼드 프로세서로 구성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품 크기는 SD 메모리카드 정도로 작아 IoT 개발에 최적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텔은 에디슨 보드를 활용, BMW 오토바이와 연동돼 브레이크등이나 방향표시등 조작시 헬멧에도 함께 표시되고 음성으로 구글맵을 조작할 수 있도록 한 스마트 헬멧을 선보였다.
해외처럼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국내에도 오픈소스 하드웨어 운동을 진행하는 창작자들이 꽤 있다. 라즈베리파이 관련 국내 최대 커뮤니티인 산딸기마을은 라즈베리파이를 활용한 멀티제어 RC카를 개발해 그 제작법을 공개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저렴한 리모컨용 RC카를 구매해 개조하는 방식을 택했다. RC카 내부에 있는 RC 신호를 받아 모터를 제어하는 부분을 제거하고, 라즈베리파이와 산딸기마을에 공개된 멀티파이로 만든 모터 제어 모듈로 대체했다. 이로 인해 자동차 장난감이 스마트폰으로 조종되는 고가의 장난감으로 변신했다.
오픈소스 하드웨어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웹사이트 하드카피월드를 운영하는 서영배 대표는 아두이노를 이용해 뇌파로 움직이는 RC카를 제작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뇌파헤드셋 마인드웨이브를 이용해서 뇌파를 입력받고, 가속도 센서를 부가해 손을 안 대고 RC카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또한 아두이노 UNO 보드와 스텝 모터, 레이저 커팅 부품으로 구성된 3관절 로봇 팔 제작을 위한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공개했으며, 얼마 전에는 스마트워치를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두이노와 라즈베리파이의 아성에 도전하는 국산 오픈소스 하드웨어도 등장했다. 지난 3월에는 국내 IT 전문 기업 ㈜이노이드가 블루투스와 아두이노 보드를 단일 칩으로 구성한 오픈소스 하드웨어 ‘블루이노’를 출시했다. 최신 무선통신 기술인 블루투스 4.0에 기반한 덕분에 다양한 스마트폰과 연동이 가능하며, IoT, 웨어러블 기기의 시제품 개발에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흐름에 비춰볼 때 국내에서도 조만간 오픈소스 하드웨어를 활용해 취미를 넘어선, 실생활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군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소유가 아닌 공유로서의 기술
그렇다면 왜 이들은 어렵게 개발한 핵심 기술을 공개하기로 한 것일까? 아두이노와 라즈베리파이와 같은 오픈소스 하드웨어는 이미 그 판매고를 통해 오픈소스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아두이노는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이 100만 개에 달한다. 이에 비해 구글이나 인텔 등 오픈소스를 선택한 IT기업들의 속셈은 이들보다 좀 더 멀리 나가 있다. 구글은 아라폰을 통해 삼성과 애플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시장의 흐름을 바꾸려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스마트폰-웨어러블-IoT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의 중심을 차지하려는 야심찬 전략이 읽힌다.
물론 기술을 공개하는 모든 이가 이처럼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은 아니다. 로봇축구대회를 석권한 국산 휴머노이드 로봇 ‘다윈’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모두 공개된 제품으로 유명하다. 어렵게 개발한 기술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세계적인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은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항상 인생에서 어려운 질문에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에게 ‘내가 애초에 왜 이것을 시작했지?’라고 물어본다”고.
인류 기술의 진보가 급물살을 탄 것은 소수의 지배계층에게 집중되었던 지식에 대한 접근이 일반 대중에게 허락되면서부터다. 이들이 우르르 전면에 나서면서 기술 발전 속도는 빨라졌다. 집단지성의 힘이다. 물론 구글 아라폰의 성공 여부를 점치기에는 아직 이르다.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다만 인터넷과 오픈소스의 만남, 여기에 3D프린터라는 혁신적인 도구까지 더해지면 개발자와 이용자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집단지성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임숙경 전문기자​

 

조회수 : 3,103기사작성일 : 201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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