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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라, 우리 한글!
한글 비즈니스의 현재

  

누가 한글을 촌스럽다고 모함했나? 2004년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신흥호남향우회’라는 글자가 프린트된 초록 원피스를 입고 파파라치 사진에 등장한 이래 한글은 아름답고 독창적인 문자임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 한글은 사용국가 수 5개국에 사용자 수 7,720만 명, 세계 언어순위 13위를 자랑하는 경쟁력 있는 문자다.

한글로 성공할 수 있을까?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1978년 『리더스 다이제스트』 매거진의 한국판 아트디렉터로 일하던 중, 자신의 나라 글자인 한글 서체를 일본에서 전량 수입해 사용하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한글 고유의 서체(폰트) 개발을 위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결정했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지금, 그는 우리나라 대표 폰트 디자인 기업인 산돌커뮤니케이션(이하 산돌)을 이끌고 있다. 그 청년이 바로 산돌의 석금호 대표다.
한글을 이용한 비즈니스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산돌과 석금호 대표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면 된다. 산돌의 한글 폰트는 세계 비(非)라틴 폰트 디자인의 각축장인 ‘그란샨 2014(Granshan 2014)’ 대회에서 한글부문 1, 2위를 모두 석권함은 물론, 전 세계 폰트들이 뜨겁게 경쟁을 벌이는 디스플레이 폰트 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종합 대상(그랑프리)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2014년 4월에 오픈한 ‘산돌구름 서비스’는 지속적으로 매월 10%씩 꾸준히 성장하면서 소비자들이 폰트를 유료로 서비스받는 개념을 대중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또 구글, 애플, 삼성, LG, 네이버, 카카오, 배달의민족 등 국내외 다양한 기업들로부터 의뢰받은 폰트를 제작하는 커스텀 폰트 개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글 비즈니스는 성공한 것일까? 안타깝지만 아직까지는 작은 성공에 불과하다. 이 역시도 산돌의 현 상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2008년, 국내 폰트 시장의 규모는 300억 원까지 성장했었다. 그로부터 7년이나 지난 지금의 시장 규모는? 놀랍게도 아직까지 300억 원이다. 최근 경기 불황의 여파로 전체 폰트 시장의 규모는 오히려 15% 가량 축소됐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 정도다.

한글 디자인이 너무해
한글은 디자인하기에도 까다로운 글자다. 이는 한글이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쓰는 ‘모아쓰기’의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자음과 모음을 모아서 쓴 글꼴을 다양하게 디자인하기가 힘들고, 디자인해야 할 글자 수의 조합도 너무나 많다. 따라서 한글을 디자인하는 데는 전문적인 인력과 시간, 열정, 비용이 상당히 필요하다. 그럼에도 한글 디자인을 하겠다고 지원하는 사람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 교육을 할 때 한글이 아닌 영문 위주의 교재를 활용하여 가르치다 보니 한글 디자인 회사에 지원한 신입 디자이너의 경우,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재교육이 필수적이라는 웃지 못할 뒷이야기도 들린다.
한글 패션이나 상품 디자인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글 디자인 제품 중에 이렇다 할 히트 상품이 없고, 한글만으로 디자인된 상품으로는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을 유발시키기에 역부족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2006년, 디자이너 이상봉이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 소리꾼 장사익의 캘리그래피(멋글씨)를 이용한 의상을 선보여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지만, 지금 우리 중에 이상봉 브랜드의 옷을 마치 명품을 구매하듯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는 이가 없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우리 눈에 한글은 디자인이 아닌 단순한 문자로 인식될 수밖에 없으며, 그 때문에 한글 소재를 기피하고 촌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강한 것이 현실이다.

한글 비즈니스, 가능성은 찾기 나름이다
2014년은 한글 패션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해다. 영화배우 유아인과 디자이너 남노아가 협업을 통해 출시한 브랜드 ‘노앙’의 러브 시티 티셔츠가 완판 신화를 기록하는 대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티셔츠는 옷 자체는 특별한 디자인이 없고, 오직 티셔츠에 새겨져 있는 세련된 글꼴의 조합만으로 이룩한 쾌거이기에 더욱 놀랍다. 디자이너 남노아는 티셔츠에 특별한 문자의 조합을 프린트해 넣었는데, 서울, 도쿄, 밀라노, 파리, 뉴욕 등의 도시명을 흔한 영어 철자 대신 사이사이 한글 자음이나 모음을 하나씩 집어넣어 독특함과 세련미를 살렸다. 서울을 예로 들자면 ‘SEOUL’로 표기한 것이 아니라 ‘ㅅEOUL’로 썼다. 뉴욕의 경우는 더욱 파격적인데, ‘NEW YORK’ 대신 ‘NEㅠ YORK’로 표기해서 멋은 물론 재미까지 느껴지도록 했다. 물론 인기 스타인 유아인의 힘도 있었겠지만, 노앙의 한글 디자인 티셔츠는 티셔츠 자체만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올해도 비슷한 라인의 제품이 계속 제작되면서 가방이나 스카프 등 그 영역이 확장되어 고무적이다.
한글 패션의 선두주자 격인 디자이너 이상봉의 행보도 눈여겨볼 만하다. 남다른 한글 패션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는 이후 유럽, 미국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의류뿐 아니라 도자기, 휴대폰 등 다양한 산업디자인에 한글을 응용한 디자인 작업으로 국내외에 한글의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행남자기와 협업한 도자기 작품을 들 수 있는데,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해외 귀빈들의 선물로 큰 인기를 끌면서 영국의 런던 빅토리아 앤 알버트(Victoria & Albert) 박물관에 영구 전시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외국인들에게 먼저 호응을 얻은 아이디어 한글 제품도 있다. 디자인 온디맨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리엔타입스가 그 주인공으로, 사명인 ‘Orientypes(orient+types)’에서 알 수 있듯이 동양적인 이미지나 한글 타이포그래피 위주의 디자인 템플릿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사용자가 원하는 한글 메시지를 직접 넣거나 이미지의 배치, 크기를 달리해서 작게는 휴대폰 케이스, 크게는 월(wall) 스티커에 이르기까지 직접 꾸미고 구매할 수 있다. 오리엔타입스의 김윤아 대표는 20여 개국을 넘게 여행을 다니면서 외국인들이 동양의 문화에 생각보다 관심이 많은 것을 발견하고 이 같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한글 비즈니스의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인 기업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을 만든 우아한형제들의 사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의민족 출시 당시 자체 폰트인 ‘한나체’를 개발했고, 이를 무료 배포하면서 브랜드의 정서와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소비자들에게 빠르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폰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말도 안되는(?) 거친 디자인이었지만, 소비자들은 한나체 특유의 B급 정서에 열광하면서 우아한형제들의 다양한 사업들도 한층 친근하게 받아들였다. 우아한형제들의 사례에서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한나체 성공 이후의 행보다. 전문 폰트 디자인 기업인 산돌과 손을 잡고 ‘주아체’와 ‘도현체’ 등 개성 있고 위트 넘치는 서체를 속속 발표하면서 소비자들은 물론 주변 기업들에게까지 개성만점 ‘커스텀 폰트’의 필요성을 널리 알렸기 때문이다. 한나체의 미흡한 부분을 보강해서 후일 선보인 ‘한나는 열한 살체’는 그 이름만으로도 듣는 이를 흐뭇하게 한다. 우아한형제들의 이미지가 한층 다정해졌음은 물론이다.

국어사랑은 곧 나를 사랑하는 것
또 한 청년이 있었다. 그의 나이 32세 되던 1908년, 그는 일제에 나라는 빼앗기더라도 글자까지 뺏길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청년학원·공옥학교·이화·기호·숙명·진명·휘문·배재·서북 등 20여 개의 학교와 야학강습소를 동분서주하며 밤낮없이 어린 학생들에게 국어문법을 가르치러 다녔다. 행색이 초라하고 항상 보자기에 책을 잔뜩 넣어 다닌다 해서 별명이 ‘주보퉁이’였던 그는 현재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훌륭한 국어학자이다. 그 청년이 바로 ‘한글의 아버지’ 주시경 선생이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혹하다. 미흡한 제품은 선처 없이 시장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한글 비즈니스는 조금 달라도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글자를 선보이는 사업들이 아닌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소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한글 비즈니스를 응원해야 마땅하다. 마치 주시경 선생이 한글을 사랑했던 그 마음처럼.
‘2014 한글 창의 아이디어 공모전’ 대상 수상자인 최정훈 작가는 한글을 기호로 형상화하고 캐릭터로 재조합하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상품화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돈을 벌겠다는 마음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글의 매력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한다. “외국인 또는 이용자들이 한글의 아름다움, 재미, 우수성을 더 많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디자인했기에 제가 개발한 ‘지어지다’체를 오픈소스 글꼴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궁극적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한글을 알리고, 한글의 이미지를 친근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디자이너 이상봉 역시 한 인터뷰에서 “짝퉁이 나오더라도 많이만 입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글 옷을 입기를 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한글로 비즈니스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글자를 더 넓은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 누가 이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에 돌을 던질 수 있으랴. 한글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우리 소비자들이 스스로 폰트 불법 다운로드를 자제한다거나 한글 디자인 상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등, 한글 비즈니스가 보다 부흥할 수 있도록 제 몫을 찾아볼 때다.
끝으로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도대체 누가 한글을 폄하했나?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대지』의 작가이자 언어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했던 소설가 펄 벅의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the Living Reed)』 서문으로 응수하고 싶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간결한 글자이다. 24개의 부호가 조합될 때 인간의 목청에서 나오는 어떠한 소리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세종대왕은 천부적 재능의 깊이와 다양성에서 충분히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칭할 수 있다.”

박성연 객원기자 사진제공 산돌커뮤니케이션·노앙·오리엔타입스·한글주택

조회수 : 3,918기사작성일 : 201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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