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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비즈니스로 갈아입다
날갯짓하는 한복산업

 

한복이 거리로 나왔다. 전통이라는 거창한 의미도, 문화라는 대단한 이름표도 동행하지 않았다. 오직 패션으로 나왔다. 그래서 더 반갑고, 놀랍다. “개화기 이후 이렇게 한복이 일상생활에서 나타난 적은 없었다”는 김종록 문화국가연구소 소장의 말처럼 요즘 ‘한복’에 경이로운 변화가 물들고 있다. 한복 비즈니스 꽃이 하나둘 피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광화문 도심에서는 무슨 일이?
내심 불안했다. 한복 열풍이 불고 있다지만 현장 취재를 앞두고 이런저런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복을 입고 나들이하는 사람들이 많아봤자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에서부터 과연 한복 관련 숍의 상황은 어떨지, 도심 한복판에서 한복 차림의 인터뷰이를 만날 수는 있을지….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6월 초, 주말에 찾은 삼청동과 광화문 일대는 상상 이상이었다. 색색의 고운 한복을 입고 도심을 거니는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너무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한복 입고 경복궁도 돌아보고, 삼청동에서 브런치도 먹을거예요.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입어보니 소재도 가볍고 시원하면서 편해요. 일찍 나선 덕분에 예쁜 한복을 골라서 기분도 좋구요.”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인근에서 만난 회사원 이수현 씨는 친구와 함께 벼르던 한복 체험에 나섰다며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친구인 백기순 씨 역시 “예전에는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 부끄러워 주저했는데, 요즘에는 한복 차림의 사람들이 많아져서 부담없이 나섰다”고 말한다. 경복궁 인근과 삼청동, 북촌, 인사동 인근에는 자고 나면 한 곳씩 생길 정도로 한복대여점이 성황이다. 주말에는 대여점 대부분이 오전 11시부터 한복을 빌려 입으려는 사람들로 빼곡하며, 예쁜 한복을 빌리려면 몇 시간씩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속출한다. 경복궁 인근의 한복 대여점 ‘삼삼오오’에 들어서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중·고생부터 대학생,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직장인까지 어느 한 세대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세대가 한복을 고르고 있었다.
“약 600여 벌의 한복을 준비하고 있는데, 매일 평균 100여 명의 손님이 옵니다. 주말에는 하루에 200~300여 명이 몰릴 정도죠.”
경복궁 인근과 북촌 두 곳에서 한복 대여점을 운영하고 있는 삼삼오오의 정병훈 대표는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복시장의 열풍을 전했다. 정 대표는 글로벌화·대중화 성공사례로 꼽히는 일본의 기모노 비즈니스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체험형 한복 대여점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사람이다. 당초 해외 관광객을 타깃으로 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내국인에게 더 인기를 끌게 되었다는 게 정 대표의 말이다. 한복 비즈니스의 성공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복 is 핫 비즈니스
혹자는 최근의 한복 붐에 대해 냉혹한 평가를 내린다. 한복 입은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잠깐의 유행이며, 사진 찍기 좋아하는 젊은이들의 일시적인 SNS용 놀이문화라는 것. 이 때문에 한복이 비즈니스의 한 축으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한복의 면면을 따라가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특히 한복으로 비즈니스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단순히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두고 한복 비즈니스의 성공을 운운하며 요란을 떠는 것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한복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 ‘보는 옷’이 아니라 ‘입는 옷’으로 진화되고 있는 한복 패션업계의 흐름, 사회적 강요에 의한 붐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붐, 세계적인 한류 열풍, 다양한 한복 관련 콘텐츠 개발 노력 등 일련의 요소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한복을 활용한 비즈니스는 과연 어디쯤 와 있을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한복이 장롱 속을 뛰쳐나와 거리로 쏟아져나왔다는 점이다. 한복 차림의 10대~20대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은 고궁이 있는 광화문이나 인사동만은 아니다. 홍대입구, 가로수길 역시 평일·주말 할 것 없이 한복 입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전주와 경주에서도 한복차림으로 나들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온라인에서도 한복과 관련된 정보가 넘친다. 한 일간지가 조사한 빅데이터 분석에 의하면, 온라인상에서 한복을 언급한 내용이 올 4월을 기준으로 전년의 경우 96만 건이던 것이 올해는 210만 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인스타그램에도 ‘한복’이란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50만 건에 이르며, 유튜브에도 한복과 관련된 동영상이 빠른 속도로 업데이트되며 내용에 따라 조회수가 27만 건을 넘는 것도 흔하다. 젊은층에서는 ‘한복 입고 해외 배낭여행 가기’를 버킷 리스트로 꼽을 정도다. 실제 권미루 씨는 2014년부터 한복을 입고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해외여행을 다니며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여행기를 올려 큰 인기를 모았다. 이후 한복 여행가들의 온·오프라인 커뮤니티가 속속 생겼다. 이 중 ‘한복놀이단’은 무려 4,000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한복 플래시몹, 한복 패션쇼, 한복 사진전, 거리행진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한복 유통업계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만큼 비즈니스로의 가능성이 희망적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국내 한복시장은 연 1조 원대로 알려져 있다. 이 중 결혼 예복이나 고가의 맞춤 한복시장은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 패션형 한복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내 한복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옥션의 경우 여성한복 매출이 2013년에는 전년대비 12% 줄었으나 2015년에는 14%나 뛰었으며, 남성한복은 매출이 무려 78%나 늘었다. 판매시기도 명절 때보다 나들이 철인 5월에 판매량이 두 배 이상 많다. G마켓 역시 지난해 초부터 판매율이 늘기 시작해 2015년 전체 매출액이 전년대비 23% 성장했으며, 최근에는 패션·캐주얼 한복 카테고리를 별도로 마련했을 정도다.
달라진 한복시장의 위상은 백화점에서도 나타났다. 전통한복 브랜드 ‘담연’이 지난해 3월 롯데백화점 본점에 입점한 것이다. 그간 한복은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 형태로만 판매됐으며, 정식 매장 입점은 전체 백화점을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어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만큼 한복산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는 방증이다.

패션형 한복에서 한복 편집숍까지, 청년 창업자도 늘어
한복 비즈니스에 불을 당긴 것은 한복 대여점이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한복 대여점은 요즘 극성수기를 맞고 있다. 기존에는 결혼식 등 특별한 날에만 빌려 입는 예복 개념의 전통한복 대여점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한복 나들이 열풍이 이어지면서 평상시에도 일정 시간 빌려입고 반납하는 패션·캐주얼 한복 대여점으로 주 비즈니스 모델이 바뀌었다. 이들 대여점은 일반적으로 수백 벌의 한복을 갖추고 있으며, 2~4시간에 1만~1만 5,000원, 하루에 2만 5,000~3만 원 정도의 대여비를 받고 있다. 서울, 전주, 경주 등에서 활황을 맞고 있는데, 특히 전주는 최근 1년여 동안 60여 곳이 새로 생겼을 정도다.
신(新)한복 브랜드의 행보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금까지 한복 소비시장은 유명 디자이너 이름을 넣은 ‘OOO한복’식의 브랜드를 단 고가의 전통한복과 특별한 브랜드가 없는 이른바 시장한복 두 가지가 대세였다.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 젊은 창업자들이 ‘패션 한복’, ‘캐주얼 한복’, ‘데일리 한복’ 등을 콘셉트로 내세운 신한복 브랜드를 속속 선보이고 있어 고무적이다. 가격도 전통한복에 비해 저렴하며, 디자인도 트렌드에 맞게 세련되고, 소재나 색상도 다양해 특별한 전통의류가 아닌 일상 패션의 한 부분으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고 있다.
2014년 첫선을 보인 ‘리슬(LEESLE)’이 대표적인 사례다. 리슬은 ㈜손짱의 황이슬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한복 브랜드다. 치마 길이와 폭을 조정하거나, 소재도 일반 양장에 이용되는 다양한 패턴의 면, 리넨 등을 사용하며, 저고리 깃도 블라우스나 티셔츠처럼 디자인해 젊은층 사이에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전주에서 출발했지만 현대백화점, 합정동 등 수도권 유통매장에서도 팝업 스토어 오픈을 요청할 만큼 반응이 좋다. 최근에는 하이트진로의 복숭아맛 탄산주 ‘이슬톡톡’과 컬래버레이션(협업)을 통해 이슬톡톡 저고리를 선보여 화제다. 덕분에 브랜드를 론칭한 지 2년도 안 돼 매출이 17배가량 뛰었고, 해외시장에도 진출하는가 하면, 1인 창업에서 직원도 6명으로 늘었다.
“한복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해 새로운 스타일의 한복을 개발하고 있어요. 수백만 원대의 전통 고가 한복이나 형편없는 품질의 초저가 한복을 지양하고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는 세련된 한복을 모토로 삼았죠. 예복이나 전통이라는 한정된 틀을 벗어나 10만~30만 원대의 ‘패션’, 즉 ‘옷’으로 접근한 것이 성공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황 대표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신한복 브랜드들은 저렴하고 실용적이면서도 디자인(美)을 입혔다는 게 공통점이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기존의 전통 브랜드 한복에 비해 싸고, 편하고, 예쁘기 때문에 한복을 접하는 데 거부감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것. 이를 증명이나 하듯 현재 신한복 브랜드 업체는 전통한복 브랜드인 ‘김영진 한복’이 선보인 세컨드 브랜드 ‘차이킴’, 돌실나이에서 새롭게 론칭한 ‘꼬마크’ 등 70여 개에 달한다. 몇몇 인기 있는 브랜드는 짝퉁도 등장할 만큼 시장이 뜨겁게 형성돼 있다.
한복 비즈니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분야도 있다. 신개념의 한복 드레스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제작하고 있는 ‘뜰리에 순’, 사극 영화나 드라마에 이용되는 한복 장신구를 제작해 한류문화 상품으로 발돋움한 ‘민휘아트주얼리’, 한복과 관련된 숍들을 모아놓은 국내 최초의 한복 스타일 편집숍 ‘하플리’ 등은 앞으로 한복 비즈니스가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그 미래상을 보여주는 흐뭇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붐을 넘어 시장에 안착하려면
현재까지의 한복시장 성적표는 꽤 긍정적인 편이다. 시장 논리로 볼 때 소위 대박을 터뜨린 것은 아니지만, 죽어 있던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하지만 일시적인 열풍이 아니라 산업으로 꾸준히 이어지려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1990년대 개량한복으로 일컬어지던 이른바 생활한복시장의 아픈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리슬’ 의 황 대표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아직 옷 패턴(옷본)조차 없는 시장이에요. 그러다보니 연매출액의 20~30%를 R&D비용으로 투자하고 있는데,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은 소기업으로서는 큰 부담입니다. 이 같은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뒷받침되어야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 대표는 가격경쟁이나 열풍에 편승해 조악한 제품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1990년대 개량한복처럼 싸구려 이미지로 전락하면서 시장이 다시 주저앉을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다소 투자가 필요하고, 조금 더디더라도 제대로 된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아야 하고, 정부는 이벤트성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실질적인 지원을 하는 식으로 각각 제 몫을 해야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업계는 한복의 사이즈 표준화, 시제품 제작 및 생산 시스템 구축, 유통 및 마케팅 구조 확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개별 기업이 진행하기는 여러가지 면에서 한계가 따르므로 정책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정부는 2014년에 한복진흥센터를 설립해 유통, 연구지원, 한복문화 인프라 조성 등의 활동을 통해 한복산업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또, 각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청년 창업자들이 한복을 소재로 한 다양한 비즈니스에 나설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냉정하게 말해 한복시장은 아직까지는 작은 변화와 작은 결과를 갖춘 모습이다. 한복이 빛나는 성공의 길을 걷게 될지, 다시 장롱 속으로 들어갈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호수 한가운데에 떨어진 작은 돌이 점점 큰 파장을 만들듯, 지금의 이 붐과 관심이 단초가 돼 머지않아 알찬 열매를 맺을 것으로 확신한다. 반짝 인기에 그치고 말았던 1990년대 개량한복의 실패를 보며 ‘뭣이 중한지’를 깨달은 젊은 한복 비즈니스맨들 광화문 일대에서는 한복을 입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열정적으로 뛰고 있기 때문에.

김미경 전문기자 사진 김윤해 객원사진기자​

조회수 : 3,245기사작성일 : 201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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