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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여성 리더들은 어떻게 일할까?
‘APEC 여성 기업 리더스 포럼’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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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100년.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은 「세계 성 격차 보고서」를 통해 지구촌 전체적으로 성 평등이 이루어지려면 100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여성 창업자들은 매년 꾸준히 늘고 있으며, 창업활동 또한 열정적이다. 최근 개최된 ‘APEC 여성 기업 리더스 포럼’을 통해 여성 기업인들의 뜨거운 경영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의 걸음이 하나하나 모이고 많아지면 100년이 80년, 50년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지난달 9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더케이호텔 서울이 이른 아침부터 북적였다. 주한 태국 대사, 주한 필리핀 대사 등 주한 외교사절단을 비롯해 각 나라의 여성정책 실무자와 여성 기업가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국내 여성 기업인들과 여성 예비창업가들까지 속속 모여들면서 3층 크리스탈볼룸이 순식간에 꽉 찼다. 이날은 ‘APEC 여성 기업 리더스 포럼’이 열리는 날.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의 중소기업분야 지원 프로젝트로 채택되어 APEC과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동으로 주관한 포럼이다. ‘4차 산업혁명과 여성 기업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은 4차 산업혁명 이슈와 맞물려 어느 때 보다 관심이 뜨거웠다. 300여 명의 참석자들은 APEC 국가 여성 기업인들이 풀어내는 경영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가 하면, 각 나라의 정책제도를 꼼꼼하게 메모하며 포럼에 빠져들었다.

4차 산업혁명, 여성 기업에 새로운 기회
얼마 전, 국내 대형 유통업체 홈플러스가 신임사장에 임일순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언론매체는 일제히 ‘업계 최초 여성 CEO 탄생’, ‘유리천장 깨다’ 등의 헤드라인을 내세우며 ‘여성’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아시아·태평양지역 주요 20개국 1,557개 상장 기업의 여성 임원 평균 비율은 12.4%이며, 우리나라는 2.4%로 가장 낮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 평등 문화가 정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다. 세계가 비슷한 상황이지만 더욱 척박한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여성 리더들이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이라는 숙제까지 안게 되었으니 이래저래 어깨가 무겁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이날 포럼에 참석한 여성 CEO들은 초청 연사인 싱가포르 여성 기업인 라리사 탠(Larissa Tan)의 강연에 열띤 호응을 보냈다.
라리사 탠은 싱가포르 최초의 슈퍼 전기차 ‘반다 덴드로븀’을 개발한 반다 일렉트릭스의 대표다. 탠은 “자동업계는 남성 리더가 많은 분야라서 여성 CEO가 힘들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CEO라서 겪는 어려움이지 성별의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제를 해결하고 대응하는 능력이다. 여성 CEO들이 성 역할에 집착하지 말고 도전하기를 바란다”고 말해 참석자들로부터 환호성과 박수를 받았다. 창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한 예비창업자는 “여성이 드문 분야의 창업 아이템이라서 고민이 많았는데, 결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어 탠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면서 일하는 방식과 생활환경이 변화할 것이며, 이는 여성 기업인들에게 일과 삶 양쪽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령 유치원이나 학교 수업이 끝날 때가 되면 부모 대신 자율주행 자동차가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픽업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관심을 모았다.

포럼 어땠나요?
확대보기 “글로벌 여성 CEO 이야기, 다르지만 공감 100%”

㈜화인에프티 박순용 대표

포럼을 듣기 위해 충남 공주에서 새벽 6시에 출발했는데, 이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건조가공 방식의 분말식품을 수출하다 보니 해외시장 트렌드에 관심이 많았고, 해외 여성 CEO들은 어떻게 경영을 하는지 궁금했죠. 수출과 여성 기업인이라는 두 가지 공감대가 있어서인지, 어디서도 접하지 못한 생생한 감동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할랄국가와 베트남 여성 기업인들의 강연이 인상 깊었고, 곧 이들 국가에 진출할 예정인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확대보기 “변화 포인트를 찾게 된 계기였죠”

엄마를 부탁해 손근영 대표

APEC 각국의 여성 리더들을 보면서 여성들의 활약으로 많은 부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의 노인돌봄 서비스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변화시킬 아이디어를 착안할 수 있었고, 더 빨리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가족기업을 이어받아 여성 리더의 시각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견하고 성장시킨 타초우 선박회사 CEO의 경영 스토리가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시간이 부족해 각 여성 기업인들의 경영 과정을 깊이있게 듣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APEC 국가 여성 CEO들의 각양각색 경영 이야기
확대보기 ‘4차 산업혁명과 여성 기업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APEC 여성 기업 리더스 포럼’은 4차 산업혁명 이슈와 맞물려 어느 때보다 관심이 뜨거웠다. 이날 포럼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APEC 회원국 여성 CEO들이 풀어놓은 창업 스토리. 강연을 들으러 온 참가자들은 같은 여성 기업가들이다 보니 대부분 “비슷한 처지에 있는 외국 여성 기업가들은 어떤 철학으로 어떻게 기업을 이끌어가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다”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아침 10시부터 시작해 오후 5시까지 이어졌지만, 간간이 전화통화를 하러 나가는 사람 외에는 모두 자리를 지키며 강연에 몰입했다. 강연에 나선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러시아의 여성 기업인들은 다양한 나라만큼이나 업종도 나이도 각양각색이었다. 의류에서부터 가전제품, 선박, IT 등 창업 분야도 다양했으며, 사업 플랫폼도 기존의 오프라인 형태를 넘어 O2O, 다자간 협업 등으로 폭넓었다.
러시아의 아나스타샤 필리포바(Anastasia Filippova)는 장애인의 구직을 돕는 사업 아이템으로 눈길을 끌었다. 필리포바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비즈니스에 대한 사고방식도 전환이 필요하다”며 장애인과 함께하는 비즈니스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시각장애인을 전문 마사지사로 양성해 마사지 서비스를 펼치는 라이트니스사를 창업한 지 7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필리포바는 “국가 지원을 받기 위해 장애인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분야를 개발해 이를 사업화하는 게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흔히 장애인을 고용하거나 장애인과 관련된 기업은 온정주의에 매몰되다 보니 수익성이 떨어지지만, 라이트니스사는 철저히 수익창출형 기업을 지향한다. 핵심 직원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의 월급을 파격적으로 책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장애인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재능 있는 직원이 우리 사업을 발전시킨다’는 것이 경영철학이기 때문에, 월급도 러시아 근로자의 평균임금보다 25%나 많은 700달러를 지급한다. 장애인 관련 기업 활동을 하는 국내 기업들이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대만 선박기업 타초우의 CEO 줄리아 천(Julia Chen)은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은 3세 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을 담담하게 털어놔 관심을 모았다. 남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선박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두려웠지만, 30년째 안정적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는 천은 ‘성실과 변화’를 성공 원동력으로 꼽았다. 가업승계를 앞두고 있는 2세 중소기업 여성 CEO들은 “지속 가능한 경영을 만드는 것은 기본을 지키는 일임을 보여준 사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외에도 트렌드에 따라 적합한 시장맞춤형 판매채널을 다양하게 개발해 회사를 탄탄하게 성장시키고 있는 홍콩 저먼 풀의 이사 캐런 챈(Karen Chan), 혁신적인 디자인의 이슬람 기도복을 만들어 말레이시아 ‘50대 기업 여성 기업인상’을 수상한 시티 카디야 창립자 파드질라(Padzilah) 등이 자신들의 생생한 경영 경험담을 들려줘 감동을 안겼다.

APEC 여성 기업인 미니 인터뷰
“여성 창업지원 프로젝트 SheStarts에 참여하세요”

오스트레일리아 블루칠리 디렉터
니콜라 미셸 헤이즐


확대보기 여성 창원지원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특별히 여성 기업을 지원하는 이유는?
세계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다. 여성 기업의 발전 없이는 글로벌 경제도 성장할 수 없다. 여성들의 비즈니스 기반 확대와 이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세계 경제의 미래를 탄탄하게 만든다고 믿고 있다. 우리가 여성 창원지원 프로젝트 ‘SheStarts’를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성들은 열정과 재능이 뛰어나며, 남성보다 리스크가 많은 환경임에도 경영 능력이 탁월하다. 『포춘(Fortune)』에 의하면 남성 CEO보다 여성 CEO의 기업 수익률이 3배나 높은 것으로 나왔다.

한국 여성 기업도 SheStarts 지원을 받을 수 있나?
SheStarts는 세계 모든 여성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당연히 한국 여성 기업도 참여할 수 있다. 단, 자금은 오스트레일리아에 기반을 둔 기업만 지원받을 수 있으며, 자금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원 가능하다. 지원 업체를 선정할 때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꿰뚫은 독특한 비즈니스 아이템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비즈니스 모델, 경험 등은 다소 거칠고 부족해도 상관없다. 이는 우리가 전문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

평소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직까지 한국 기업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어본 적은 없지만 IT분야 스타트업들이 워낙 뛰어나 관심이 많다. 포럼이 끝난 후에 몇몇 스타트업들과 미팅할 예정이어서 기대가 크다.

이번 포럼에서 ‘스타트업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다양성’이라는 것은 기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업 아이템은 물론 조직 구성원, 기업 문화, 마켓채널 등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에 대해 열린 마인드를 갖고 다양한 부분을 수용해야 한다. 특히 스타트업일수록 다양성을 접목해야 한다. ‘있으면 좋지’가 아니라 ‘당연한’ 경영 요소로 인식해야 성장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회적 가치를 실천해야 지속 성장한다”

필리핀 래그투리치스 대표
테레스 클라런스 페르난데스


확대보기 슬로 패션 소셜벤처를 창업하게 된 동기는?
대학에서 여러 가지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게 평소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여성들이 열악하고 부당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빈민마을 공동체를 방문한 것이 창업 계기가 됐다. 그곳이 창업 터전이자 창업 씨앗이 된 셈이다.

빠르게 성장한 비결이 궁금하다.
아직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창업할 때 염두에 뒀던 기업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굳이 성과를 낸 비결을 찾는다면 소셜벤처지만, 90% 이상을 차지하는 가난한 여성 노동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고 소비자에게 품질 좋은 제품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친환경적인 슬로 패션 가치에 동참하는 디자이너 200여 명과의 협업도 성공의 원동력이 되었다.

기업가 입장에서 한국과 필리핀의 다른 점을 꼽는다면?
한국의 의류기업은 오프라인 매장이 매우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업종 특성상 디자인 감각이 중요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눈여겨보는 편이다. 여성 기업을 포함해 전반적인 창업지원 정책과 제도도 체계적이고 투명하다. 필리핀도 이런 시스템을 벤치마킹했으면 좋겠다.

글로벌 진출을 희망하는 창업가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게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과정을 통해 경영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글로벌 시대일수록 기업의 사회적 가치가 기업 생존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가치란 거창한 게 아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가난한 생산자들의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대량생산이나 아웃소싱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이런 게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김미경 전문기자 사진 김윤해 객원사진기자

조회수 : 4,470기사작성일 : 20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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