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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가 달라졌다
지금은 할매시대

할아버지에겐 미안하지만 지금은 명실상부한 할머니 전성시대다. 할머니는 어떻게 왕좌에 올랐을까? 요즘 사람들이 열광하는 매력 만점 ‘할매’의 말과 멋과 삶.

할매의 ♥

“‘최고’ 그런 말 싫어요. 그냥 다 ‘최중’ 하면 안 돼요? 같이 살면.”
내공이 느껴지는 이 말이 한동안 화제였다. ‘윤며들다(윤여정에 스며들다)’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로 배우 윤여정(74세)의 인기가 뜨거운 것은 그의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이나 기나긴 필모그래피, 예능 대박 등의 부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감추려 애써도 뿜어져나오는 인간적인 매력이 매순간 뼈 때리는 명언으로 재탄생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최중’ 발언도 이제야 빛을 발했지만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외쳐왔던 바다. 그는 항상 ‘최고가 어디 있냐’며 손사래를 쳤었다.

확대보기The Acadaemy 공식 인스타그램ⓒ The Acadaemy 공식 인스타그램

“염병하네. 70대까지 버텨보길 잘했다.”
할매 전성기의 서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대로 죽을 순 없다’며 열혈 정신력을 뽐내는 74세 유튜버 박막례 할매의 말은 한층 더 강력하다. 이제 막 서른이 되고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으로 두려움에 떠는 손녀에게 그는 앞서 소개한 단 두 마디로 응수한다. 일단 칠십까지 살아보고 얘기하자는 취지다. 인생이란 살아갈 수록 얼마나 놀랍고 또 알 수 없는지!

확대보기박막례 인스타그램ⓒ 박막례 인스타그램

할매들이 달라졌다. 정확히는 할매의 말이 달라졌다고 해야 한다. “아이고, 내가 빨리 죽어야지”라거나 매사 “조심하라”던 우리네 할매들이 말을 바꿨다. 죽는 날까지 재미있게 살아보라고 조언한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일단 시작부터 하라고 권한다.
“젊은 사람들에게 이 말 하고 싶어/걱정마라, 죽을 일이 나면 살 일도 생긴다.”(황용현 詩 〈내 속이 시원해요〉 중)
성인문해교실에서 난생처음 한글을 배우고 내친 김에 두 권의 시집까지 출간한 칠곡군 할매들의 이야기는 들을수록 숙연해진다. 긴 세월 동안 가슴속에 숨겨둔 말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와 웃음과 눈물이 묻어나는 힘찬 위로의 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너의 모습을 가장 좋아해.”
경주공업고등학교 외벽에 걸려 있는 칠곡군 권안자 할매(77세)의 손글씨는 할매의 말이 손자·손녀에게 어떻게 힘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할매의 ♥

세련된 그레이시 숏컷, 셔츠원피스에 발랄한 스니커즈를 신거나 버뮤다팬츠에 리넨 재킷을 매치할 줄 아는 멋쟁이 유튜버 밀라논나(69세)의 힙한 감각은 MZ세대가 먼저 ‘리스펙’했다. 블랙룩에 오렌지색 베레모와 머플러로 포인트를 준 러블리 시크 스타일은 흉내 내기 힘든 아우라마저 느껴진다. 한국인 최초로 밀라노 유학을 떠났고 유명 백화점 명품 바이어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지만,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도 밀라논나(밀라노+할매)는 빛이 난다. 놀라운 건 그가 옷만 잘 입는 게 아니라는 사실. 그의 집, 식단 등 라이프 스타일 곳곳에 멋스러움이 가득 묻어난다.

확대보기밀라논나 인스타그램ⓒ 밀라논나 인스타그램

‘10년 더 젊어지는 운동법’을 선보이고 있는 시니어 유튜버 천유조 할매(70세)는 할매라는 호칭이 미안할 정도.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와 건강한 혈색, 검은 단발머리와 레깅스 차림으로는 도저히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젊은 여성도 소화하기 어려운 현란한 색의 운동복이나 블링블링한 비즈 스커트, 가벼운 노출을 즐기는 그는 꾸준한 운동을 통해 70대도 얼마든지 젊고 생생하게 살 수 있음을 증명한다.

확대보기유조소녀 채널ⓒ 유조소녀 채널

요즘은 멋진 할매가 도처에서 출몰한다. 모델, 연기자, 유튜버, 머슬 퀸 등 젊은이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영역에 할매들의 도전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런 모습이 과하거나 억지스럽지 않고 그저 멋지고 멋질 뿐이다. 푸근한 할매는 푸근한 맛으로, 세련된 할매는 세련된 멋으로 영감과 용기를 주며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삶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할매의 ♥

확실히 할매들은 변했다. 할매의 말에는 유머가 넘치고 따뜻함과 혜안이 고루 섞여 있다. 할매의 옷은 더 이상 등산복이나 골프웨어 일색이 아니며, 할매의 라이프 스타일은 심플해지고 더 건강해졌다. 우리네 할매가 달라진 데는 할매의 삶이 변화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드디어 할매들이 행동하기 시작했으니까. 나이 칠십에 지팡이 대신 캐리어를 끌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 여행작가 김원희 할매(71세)의 과감함, 안일한 촬영 현장을 버리고(?) 머나먼 타국에 저예산 독립영화를 찍으러 훌쩍 떠난 배우 윤여정의 도전정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은 몽땅 해버리려는 듯 수많은 시도를 마다않는 유튜버 박막례 할매의 호기심은 젊은 세대들에게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나이 들면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줄만 알았던 다양한 시도들이 늦게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요즘 할매들은 몸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할매는 할매다. 우리가 할매를 애정하는 이유는 특유의 포용력 때문이다.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할아버지들과 달리, 할매는 언제나 내 편이었던 기억이 남아서다. 영화 〈미나리〉 속 할매의 따뜻한 정과 사랑은 전 세계 시청자들마저 감동시켰다고 한다. 어쩌면 할매는 원래부터 씩씩하고 다정했으며 재미있고 쿨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변한 건 ‘저게 진짜 어른’이라고 깨닫게 된 우리의 시선일지도. 할매의 말은 언제나 따뜻했고 이제 우리는 들을 준비가 된 것 같다.

박성연
참고도서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북하우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달)

조회수 : 3,470기사작성일 : 202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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